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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나잇 Feb 11. 2024

간과해서는 안 되나 간과하게 되는 것들

털레털레 빈 공터를 떠도는 목선. 의사는 목을 타고 흐르는 울렁임에 자주 멀미를 느낀다. 그가 만드는 목각 인형은 입이 없다. 미연에 벌어질 악성을 방지하기 위한 대비책이라고 말하며 없는 입꼬리를 끌어올려 웃는 모습도 이따금 내비친다. 기억하지 않아도 됐으나 끔찍한 생각이 들 때마다 기억하게 될 일이다.      


글을 빠르게 읽고 싶다면 대각선으로 읽는 계단 방식을 연구해 봐. 방향은 아무래도 좋지. 모조리 삼키는 게 목적이라면 추천하지 않을게. 그래도 어디 가서 안다고 자랑이나 할 수 있잖아. 우리들은 기껏해야 해본 줄 아는 걸 자부심 삼아 거짓에 빗대어 살아가는 사람들 아니었나.     


날마다 쓰는 게 귀찮아서 일기를 다음으로 미룬 일. 삼일에 한 번씩 입 맞추다가 신물이 나고 질려서 억지로 그것을 흘겨본 일. 발로 조금 밟은 뒤 상처가 났나 한심하게 다시 들여다본 일. 모두를 위한 방법이라며 일주일에 한 번만 품에 안기로 계획을 바꿨지. 한동안 잘 지켰어. 그마저도 권태라 여겨지기 전까지는 말이야. 변하지 않음도 결국은 변한다는 교훈. 너, 그분을 참 좋아했잖아. 어린 네가 머물던 적적한 교실에 걸어두는 건 어떨까?


나는 이제 그것의 인생을 연구하지 않기로 했다. 삼켜지는 기분이 싫어. 휘둘리지 않기 위해서, 도태되지 않기 위해서.     


(변명을 하고 있구나 나는, 열어보기 않을 오늘을 흐려지는 오후의 갈색 잎사귀 앞에 기록해 두고)   

  

방 안에 가두었으니 촌스러운 걸 남에게 들키진 않겠다고 안심하면서.     


그렇게 사는 게 좋아? 라고 내가 물으면, 대답할 멜로디를 상상하며 목젖을 가져본 적 없는 목각 인형을 떠올렸다. 선생님을 찾아가 볼까. 창조의 어머니 앞에서 무쓸모인 혓바닥도 참회를 꿈꿀 수 있지 않을까.      


참외, 그건 과일이야. 아니면 참 외로운 거니.

시시껄렁한 농담을 주고받다 보면 바닥이 둘로 갈라진다. 고개를 구십 도로 꺾어야만 노을이 보인다.


우리 이제 헤어져야 해.


도로 한복판을 맨발로 걸으며 무언가 크게 외치는 회색의 나이테들. 손을 놓아야 할 순간임을 고래고래 타이른다. "뭐라고 하는 거야, 귀가 찢어질 것 같아." 듣기 싫어서 더 귀 기울이게 되는 이상한 추론. 집중시키고 싶다면 아주 작게 말해 보렴.


요즘에는 사람을 만나기 싫어해서 출근하는 길에 안경을 버리고 동굴로 들어간다. 고양이 발톱이 이렇게 무서울 줄이야. 어느 길이나 찍혀있는 무시무시한 발자국을 보며 몰래 숨죽여 울기도 했는데. 칠이 벗겨진 벽돌을 마주할 때는 이름표 없이 뭉친 과거가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것 같다. 나쁜 생각을 삶의 하수구로 흘려보내는 연습은 벼랑 끝에서도 잊지 않으려 몇 번이고 되뇐다. 잠시 넋을 놓으면 돌연 해가 저물고, 우리는 350시간인 하루를 살아가면서 시간이 참 짧다는 후회를 뱉는다. 놓치고 싶지 않은 밤 속의 꿈을 두 번 세 번 연거푸 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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