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깥은 아직 겨울의 으름장이 가시지 않은 채였다. 매서운 강풍이 창문을 가격하며 위풍당당한 기세를 자랑하고 있었다. 그와 다른 체급을 지닌 경량의 내 방은 오직 살아남아야 한다는 일념 하나로, 보일러의 곰살궂은 조력을 받아 근근이 생명을 유지해 나갔다. 얼마 있지 않아 훈훈한 온기가 금세 들어차며 공기 속의 열기들이 서로를 껴안아대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봄이 찾아온 것 같았다. 손바닥 크기로 빛을 내는 한 뼘의 찬란한 계절. 꿈에서만큼은 드넓을 나의 개나리색 초원.
나는 그런 내 봄에 가족이 아닌 이들을 들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철저한 나만의 아지트 속에 파묻혀있다가, 가끔 세상 구경이 하고 싶을 때면 고개만 슬쩍 내밀어 창밖을 두리번거리는 식이었다.
그러다가 나에게 호기심을 건네는 이들에게는, 황급히 자취를 감추며 경계선 이후로 넘어오지 못하게 하였다. 치밀한 기준은 모르겠으나 가족이 아니면 안 되었다. 그것은 옛 연인에게도 해당되는 일이었다. 타인의 감정을 돌보는 것보다, 나를 지키는 것이 먼저였기에. 누군가 이곳에 밀물이 되어 들어올 때, 내가 쌓은 모래성이 처참히 무너져 내릴까 봐 겁이 났다. 내부의 침대와 화장대와 책들이 그리 답하였다. 내가 과분한 희망을 품으려 할 때마다 자신들을 내팽개치지 말아 달라 호소했다. 그렇게 덮친 그리움의 파도는 나를 더 멀리 밀어냈다. 되돌아올 수 없을 만큼 흘러가서 말하는 것들과 점점 더 멀어지게 만들었다.
이유 모를 두려움을 가진 사람에게는, 고민이 뻗어 나오는 샘물이 있다. 그 안에 수그리고 있는 생각들은 밤하늘의 별보다도 무수하다. 내 공간에 들어온 타인을 떠올리면, 어쩐지 분류되지 않는 반감에 무거운 부담까지 깡그리 묶여 안겨지곤 했다. 몇 평 되지 않는 이곳은, 그저 혼자만의 공간. 무엇도 나를 긴장시킬 수 없는. 그리하여 모든 순간을 이완시키는 나만의 방공호였다. 괜스레 먼지 쌓인 서랍장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마음속 이방인을 밀어낼 때마다 나체의 부끄러움이 영혼을 휘감으며 본래의 나를 철저히 감추어댔다.
주변에 나와 비슷한 이가 있었다. 그이도 집에 사람을 들이지 않는다고 했다. 우리는 비슷한 종족. 친해지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서로의 치부를 모두 알고 있으므로. 나와 비슷한 사람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이유도 그것이었다. 내가 너무 싫어하는 내 모습이 자꾸 아른거려서. 그게 계속해서 두려워서. 하염없이 서글픈데 그럼에도 웃어야 하기에. 상처를 옮겨서는 안 되는 타인이니까.
공감의 손때가 묻어나는 그의 말을 받아내며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가끔 스스로의 유별남을 직관할 때가 있다. 사람 없이는 살 수 없는 이곳에서, 사람 없이 살려하는 내 모습과 마주칠 때마다 고개가 내저어 진다. 금기의 나쁜 짓을 저지른 기분이 든다. 아담과 이브의 속사정이 슬퍼지듯이. 세상 모든 눈동자가 나를 노려보는 것 같을 때가 있다. 알고 보면 그들은 전부 나다. 내가 나를 외면하고 미워하고 버리려 하는 것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주위 모든 곳의 스위치를 끄고 조그마한 방으로 들어갔다. 직사각형 모양의 햇살이 넘실거리는 봄 속으로. 산수유 꽃잎이 돋아나고, 초록빛 새싹이 움트고, 자주색 나비가 팔랑대며 불완전한 나를 쓰다듬는 아지랑이 틈 안으로. 그곳에 밀려 들어간 영혼은 자신을 둘러싼 몸짓과 언어들을 허공에 뿌리며 군더더기를 털어내기 시작한다. 마침내 홀가분함으로 가벼워진 것이 조심스럽게 품에 들어오자, 나는 그것을 안고 웅크린 채 누웠다. 남은 손으로 마음을 매만지니 뜨겁게 울렁인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울고 싶어서 운다. 들키고 싶지 않아 속으로 삭인다. 누가 알지 못했으면 좋겠다가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한참을 맨 몸으로 서성거리다 보면, 이방인은 다시 웃는 얼굴로 나에게 다가왔다. 괜찮다고 말하며. 나를 도와주겠다고, 믿어 의심치 말라한다. 물안개 같은 아득한 미소가 출처 불분명한 곳으로 나를 끌어당겼다. 섣불리 당신의 손을 잡아도 되는 걸까. 또 무심코 버림받는 것은 아닐까.
나는 이따금씩 세상 밖으로 나가는 법을 잊어버리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