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고 싶은 길
길 위에서, 널 만날 수 있다면.
살아가며 유독 알아보고 싶은 길이 생겼을 때, 궁금증을 해결하는 좋은 방법이 있다. 각종 추측은 넣어 두고 일단 걸어보는 것이다. 오래도록 고민만 하는 것은 이따금 옳은 결정을 유보시킬 뿐, 실제로 그 길을 파악하는 데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대부분의 도전을 고민과 갈등 사이에서, 하루아침의 꿈으로 그치게 만들 확률이 높다. 때로는 엉망이라고 생각했던 길과 타의적으로 부딪힌 적이 있었다. 그러나, 막상 서로의 속내를 알고 난 뒤, 그 길은 나에게 몹시 사랑스러운 추억이 돼 주었다.
지금보다도 어렸을 무렵, 사내 행사와 관련된 협업에 참여하던 때였다. 기존 회사 건물이 아닌 외부의 야외 공간에서 활동이 진행된다고 했다. 야외라고 해서 온전히 나들이의 기분을 띠는 것은 아니었다. 일은 그야말로 일이었기에. 장소를 고지받자마자 인터넷 초록창의 재능을 빌려 나의 집을 출발지로 설정하고, 그날의 행사장을 도착지로 가리킨 뒤 경로에 대한 도움을 청했다.
아주 먼 거리라고는 할 수 없었지만, 한눈에 보기에도 상당히 까다로운 여러 갈래의 줄기들이 눈앞에 드러났다. 온통 연둣빛 웅덩이를 사이에 끼고 도착지가 찍히는 것을 보니, 아마도 공원가 주변에 위치한 듯 보였다. 자취를 얼마나 꼭꼭 감췄는지, 차로 이동하고 난 후에도 도보로 이십 분이 넘는 거리를 걸어야 다다를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주어진 결과를 받아들이려 하니 급격히 치고 들어온 난감이라는 감정이 머릿속을 가득 메웠다.
산책을 좋아하는 나였지만, 평소 길 찾기에 약한 기운을 안고 있었기에, 마음에 근심과 걱정이 들어차기 시작했다. 중요한 날이면 생기는 변수들도 쉽게 넘길 수가 없었다. 예민한 초행길에 헛발질을 날릴까 두려웠던 나는, 아직 펼쳐지지도 않은 경우의 길을 몇 번씩이나 눈으로 따라 걷고 또 걸었다. 혼자만의 노력이라도 꺼내어, 그곳과의 관계를 미리 두텁게 쌓아 놓아야 심적으로 편해질 것 같았다.
남들은 모를 시름으로 며칠을 흘려보내고, 곧이어 행사 당일이 되었다. 긴장되는 마음을 뒤로하고 야심찬 길을 보다 노련하게 걷기 위하여 그토록 연습했으나, 인생이란 것은 실전과는 또 다른 문제였다. 내 마음을 모르는 그것은 우여곡절의 절망을 심어주었다. 역시 타고난 무지함은 어쩔 도리가 없는 걸까. 요리 걷고 조리 걸어도 그저 초면인 낯선 공간이 펼쳐졌다. 계속되는 난관에 혼을 빼앗기지 않으려, 속으로 수많은 물음표들을 되뇌었다. 일찍 나왔길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몸이 바보스러우면, 그나마 깨어있는 머리를 활용해서라도 위기 대처를 위한 2안을 준비해야만 했기에.
그렇게 헤매고 헤매다 보니 하늘도 나의 진심 어린 노고를 알아주었는지, 점차 바른 길로 가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걸어가는 앞길마다 생기의 아지랑이가 하나둘씩 피어나는 것 같았다. 손바닥만 한 전자 기기에 몸체를 의지하고, 연둣빛 풀숲을 지나 굽이굽이 좁은 골목들을 섬세히 톺아보는 일. 이윽고 다다른 고지가 정답의 끝을 제시하는 듯했을 때. 몸은 곧은 직선을 이겨내어 유연한 반대편 곡선의 추임새로 접어들었다. 마침내 만난 나의 길은, 드넓고 광활한 호수를 그리며 눈동자 속으로, 품 안으로 켜켜이 밀려 들어왔다. 가슴이 탁 트이는 광경에 깊고도 짙은 탄성을 내지를 수밖에 없었다.
시간적 여유가 많지는 않았지만, 서둘러 핸드폰이 지닌 미니카메라를 그곳의 풍경에 바짝 들이댔다. 사진으로 남기지 않고서는 못 배길 푸른 화폭의 아름다움이었다. 어느 깨끗한 바닷가의 에메랄드 빛이 눈부신 모양새까지는 아니었으나, 그 물가는 내가 고생 끝에 만난 소중한 결과와도 다름없는 것이었다. 희끗한 쌀알 색을 띤 안개는 하늘 위를 잔뜩 덮은 채로 물이 가진 영의 신비스러움을 한층 높여주었다. 문득 주위를 둘러보니 많은 이들이 산책을 즐기며 은은한 각자의 기억들로 그곳의 길을 잔뜩 물들이고 있었다. 내가 늘상 기피했던 길이 다른 누구에게는 더없이 평화로운 상념의 공간이었다.
어쩌면, 나는 매사에 그런 식이었다. 그저 늦으면 안 된다는, 서둘러 끝마치고 다음 순서로 넘어가야 한다는 불안한 사명 같은 것에 휩싸여 있었다. 마음에 찾아온 불청객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해서, 그 시간이 아니면 다시 돌아오지 않을 소중하고도 고귀한 장면들을 놓칠 뻔했던 것이다. 하나에 사로잡히면 다른 무엇에 주의를 살피지 못하는 성향 상, 깨닫지 못하고 지나쳐 보내는 사정들이 꽤 잦았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잠시 곁을 둘러본다고 해서 천지가 흔들리고 지구가 멸망하는 것도 아닌데, 나는 많은 일을 심각하고 불온전하게 생각해 왔다. 한없이 모자란 생을 걷고 있는 내게, 그날 마주친 물은 이런 말을 건네주었다.
괜찮아, 가끔은 돌아서 가도.
꼭 거닐어 보고 싶은 길이 있다. 생각지도 못했는데 막상 마주쳐 보니 생각보다 더 좋은 길도 있다. 나를 걷게 만든 길이 만약 좋은 길이었다면 평온한 추억으로 남기면 되는 것이고, 좋지 않은 길이었다면 비슷한 길을 만났을 때 그를 발판 삼아 피해 갈 경험으로 삼으면 될 것이다. 세상에는 수없이 비슷하고 다른 길들이 존재하니까. 이토록 다채로운 감정들의 원천은 비로소 맞닿아보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는 사실을, 나는 기억해 두려 한다.
예기치 못한 물과 태양과 바람이 훗날의 나를, 또 우리를 어느 행운의 물살까지 밀어내줄지 모르니. 큰 위험이 도사리는 길이 아니라면, 혹여나 그 도전이 나를 잃지 않을 정도의 위험이며 내 확신이 그 길을 걸어보라 말한다면. 망설임은 잠시 접어 두고 씩씩하게 걸어보는 편이, 나를 훨씬 성장시켜 줄 선택일 거라 마음 깊이 되새겨 본다. 호기심으로 끝장을 봤으니 뒤따르는 후회 또한 적을 것이다.
혹시 모르지 않을까. 어렴풋이 마주한 그 길이 당신에게 이런 인사를 건넬지도.
괜찮아, 가끔은 돌아서 가도.
네 최선의 선택을 스스로 존중해 줘.
만약 아니었다면, 다른 길을 찾아보면 되는 거야.
무수한 별의 길들이 너에게 닿기 위해 기다리고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