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나

무슨 일이 있어도, 잃지 않기를.

by 블루나잇

한 가지 생각에 사로잡히면,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다. 나의 경우 이 원리 원칙이 원망스러울 정도로 적중했다. 모든 사고의 회로를 온전히 그것에게 쏟게 만드는 두통의 험한 재능과도 같았다. 여러 가지를 한꺼번에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은, 결국 발목을 묶여버리는 것. 나는 주로 생각을 시작하면 꼬리에 꼬리를 물어 머나먼 우주 세계가 다룰법한 심연의 나락까지 떨어져 버린다. 가끔은 미칠 듯이 기분이 좋지 않고, 가끔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슬퍼지기도 한다.


그렇게 내 안의 또 다른 나를 주체할 수 없을 때, 더 견디지 못하도록 내 사지를 일그러뜨리고, 나를 가만 두지 않는 것 같을 때. 어느 책에서 경험했던 방법을 대입시켜 본다. 멀리 떨어져서 나를 바라보는 일이다. 공감하지 않기로 하지만 자꾸만 나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연민을 쏟게 되는 일이다. 지금 내 감정이 어떤 상태인지, 무슨 이유 때문에 번민과 내적 갈등에 휩싸여 있는지. 머릿속 악의 무리를 순조롭게 내보내기 위해서는 누구의 특효약을 활용해야 하는지. 몇 차례고 운명의 수레바퀴를 회전시킨다.


가만히 들여다보니, 이마저도 그것을 내쫓기 위한 생각이더라. 생각의 셔터를 이만 닫아두고, 생각 그만하기 버튼을 누르는 마지막 출입구까지 도달하기가 내겐 참 쉽지 않았다.


방 안에 홀로 누워 시커먼 공기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서로의 모습을 문지르다가 더 깊숙한 속내로 잠식되기도 한다. 그토록 바라던 잠에, 누구보다도 힘겹게 빠지는 것이다. 놀랍게도 충분한 숙면을 취하고 난 뒤엔 몸과 마음이 전보다 가벼워지는 듯했다. 오래 묵은 연회색 먼지 알갱이를 훌훌 날려버리듯이, 지난밤의 극도로 심각했던 문제를 잊게 해 줄, 작은 솜털 맛 여유를 안을 수 있게 된다. 그들에게 면죄부를 쥐어줄 손톱만큼의 용기가 솔솔 피어오른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잠깐의 폭풍을 참아야 하는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어떤 이들은 행복할 때 약속하지 말고, 화가 났을 때 결정하지 말라고 한다. 행복한 약속이야 그 순간만이라도 좋았다면 모든 것을 잃는 행위는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화났을 때 결정권을 휘두르는 일을 통해서는, 꽤 높은 확률로 뒤탈이 나는 경우를 봐왔다. 물론 스스로도 그에 대한 경험을 갖고 있을 것이다. 그 말인즉슨 화가 났을 때의 나는 내가 아닌 것과도 같다는 것. 그저 어떤 순간의 감정에게 혼을 빼앗겨 내가 나를 가눌 수 없는 상황이 되는 것. 그때의 나를 돌이켜보면, 필름 한 구석이 끊겨버린 듯 드문드문한 기억에, 희고 매서운 소름이 끼쳐온다. 내가 무슨 말을 했었지?


한 때의 순간이며, 곧 흘러가게 될 일말의 느낌에게 휘둘려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내 다음날의 나는 후회 앞에서 눈물의 호소를 벌이게 될 것이니. 기분이 태도가 되지 않도록. 내 앞에서 환히 입동굴을 드러내는, 사랑하는 이의 미소가 한낱 감정 쓰레기통으로 급락하지 않도록. 내가 나를 먼저 알아볼 줄 알아야 한다. 연습해야 한다. 그리하여 새빨간 그 녀석에게 내 몸을 내어주지 않아야 한다. 사랑하는 것들을 지켜내야 하니까.

지나갈 일들에, 떠나갈 감정에

나의 모든 삶을 넘겨줘서는 안 된다.


관계는 때로 단 하나의, 내가 모르는 시간에 의해 결정되기에. 이 글을 보는 모두가, 너무 늦지 않게 알아차릴 수 있길. 지나가고 나서 물밀듯이 밀려오는 부끄러움과 불안함에, 한탄의 고배를 마시지 않길. 이미 저질렀다면 하루라도 빨리 상처를 회복해 나가길. 나조차도 평생을 어려움에 골머리 썩어야 할 애수이지만, 그들은 그들이기에 충분히 멋지게 해내주길. 부디, 소중한 것들을 잃고 아픈 상심을 기억하지 않길. 갓 잉태할 씨앗을 닮은 낱장의 홀연함으로 젖은 깃털 같은 진심을 허공에 날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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