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에게
끝도 없는 완벽함을 추구한다는 것.
딱딱하기만 한 인생은 툭 부러지기 쉽고, 유들유들한 인생은 휘둘리기 십상이란다.
굳세게 딱딱하지도 실오라기처럼 연약하지도 않은 삶은 어떻게 사는 삶일까? 이따금 여기저기서 치이고 어려운 고민을 띄울 때면, 소란스러운 내면 안으로 끌려들어가 없는 문제까지 헤집어 꺼내곤 했다. 그리고 이렇게 결론을 내는 거다. 노력해 보자고, 잘해보자고. 조금만 참아보자고. 아직은 때가 아닌 거라고. 그러나 실상은 나만 노력하고 잘하고 참는다고 모든 일이 해결되지 않는다. 더러 끝끝내 해결되지 못하고 가시로 변질되어 심장 정 가운데에 꽂히는 일들도 있다. 그렇게 나 혼자 상처받으면 끝나는 일들이 있다. 그렇다면 이런 억울하고 파렴치한 상황으로 마무리되는 유약한 끝맺음조차 결국 내 탓이 되는 건가? 몫을 제대로 지켜내지 못해 벼랑 끝자락에 서게 된 내가 문제인 건가?
기어이 살아보겠다고 발버둥 치다가 구석까지 몰아세워진 자신을, 더 잘게 부수지 말아야 한다. 왜 그것밖에 못하냐며 미워해서는 안 된다. 눈물로 호소하기 이전에, 곧은 어휘를 통해 부당함을 어필할 수 있는 재주를 길러야 한다. 어떻게든 잘 살려고 하기보다, 타인의 절대적인 장점과 비교하기보다, 가끔 그 누구라도 저지를 수 있는 실수와 훗날 자연스레 잊힐 작은 후회의 조각들을 감싸 안을 수 있는 힘부터 기르는 것이 좋겠다. 스스로 타박하는 슬픈 습관에서 벗어나는 게 좋겠다. 물에 잔뜩 젖어 불어난 마음부터 가벼이 먹고, 짙은 부담감을 내려놓았으면 좋겠다.
나를 잃으면서까지 치열하게 이겨내지 않아도
우리는 모두 나름대로의 영역에서,
충분히 열정적이고 옳은 삶을 살아내는 중이다.
잊지 말자. 모두가 아니라고 할 때, 나를 믿어줄 가장 든든한 사람은 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라는 것을. 내가 나를 안아주지 못한다면, 광활하고도 두려운 세상에서 나를 온전히 이해해 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