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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나잇 Jul 11. 2023

생각의 산책

다치고 싶지 않다고 해서, 다치지 않을 수는 없는 거겠죠.

요 며칠 아침 산책을 나갔다. 마음을 먹은 시기가 하필, 내리는 비 아래로 가만히 서있기만 해도 온몸이 따갑다는 장마 무렵인 것만 빼면 제법 나쁘지 않은 시도였다. 거센 리듬의 빗방울이 아스팔트를 사정없이 때려대서 간혹 맑고 조용한 새벽을 마주하는 날엔 신기루를 영접하는 것만 같았다. 무언가 하기 싫어질 땐 감정에 휘둘리지 말고, 해야 하는 행동에만 집중해야 한다는 말을 본 적 있다. 그런 조언을 듣고 나서 게으름에 잠식당하기 전, 눈이 떠졌을 때 빗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무조건 걸음을 움직이기로 했다. 그런데, 걷는 행위에도 허용되는 자격 조건이 있을까?      


운동이 익숙하지 않았던 나는 첫날 무모하게 슬리퍼를 질질 끌고 나갔고, 걷다 보니 어느새 발과 슬리퍼와 땀이 심각한 부조화를 이루며 발등에 조막만 한 물집이 잡히기 시작했다. 기본조차 되지 않은 사람이 맨땅에 머리를 헤딩하듯 일을 저지르면 이런 불상사가 발생하는 것이다. 누군가는 도전을 응원하는 와중에, 당사자는 그런 본인이 무지하고 한심스러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슬리퍼는 아니구나. 하나를 깨닫고 나서, 다른 날엔 나름의 방화벽을 세웠다. 운동화를 신는 계획이었다.

  

운동화로 발을 칭칭 동여매었던 그날의 산책은 괜찮았을까. 상쾌한 아침 운동의 묘미를 알게 되었나? 꼭 그런 것도 아니었다. 하필이면 발뒤꿈치 중간 언저리를 겉도는 덧신을 신은 탓에 지난 발등의 상처보다 더 쓰라린 뒤꿈치의 상처가 잔뜩 심통 난 나를 들쑤시기 위해서 기어코 누추한 이곳까지 행차했더랬다. 사람들은 벌써 저만치 앞에 나가있었고, 발을 절뚝이며 걸으니 세상이 원망스러웠다. 해는 또 왜 이리 뜨거운 건지. 뭘 해도 항상 모자란 것만 같다는 부정적 생각이 스스로 야금야금 좀먹는 중이었다. 야심 차게 떠났던 산책의 항해는 발등과 발뒤꿈치에 보잘것없는 흉터만 남기고, 철없는 환상을 예고했던 간밤의 꿈처럼 자취를 감추었다.    

  

약이 올랐다. 한다고 했는데, 시도하는 것만으로 다가 아니라는 게. 내키지 않는 기분으로 무언가를 하면 완벽하게 마무리할 수 없다는 사실이 씁쓸했다. 이를테면 누군가 시켜서 억지로 하는 공부라든가. 생활비 유지를 위해 강행하는 출근이라든가. 그래도 싫다고 멈출 수는 없는 노릇. 잘해 보겠다는 마음을 먹는 겉치레도 여간 골치만 아팠다. 진심이 아니라는 이유로 나는 계속 아파야 하나? 사람의 의지가 이렇게나 중요하다. 어떤 황금 같은 일도 원하지 않으니 빈껍데기처럼 느껴지고 머릿속엔 온통 왜 왜 왜. 원치 않는 짜증만 솟구쳤다. 나는 자주 내가 무기력한 사람이라 인정하며 살고 있었다. 남들처럼 즐거운 것도 별로 없고, 때때로 누워만 있고 싶으며 뭘 해도 감흥이 크지 않다. 쾌락은 잠깐이고 도전의식을 가졌다가도 몇 번의 벼랑 끝에 다다르면 금세 몸과 마음을 감추어 버렸다. 안쓰럽게 말해 숨어버리는 것이지, 현실은 도피나 포기와 같다.     


그럼에도, 나는 매일같이 무언가를 한다. 정확히는 하고 싶어 한다. 나는 꾸준함의 결과를 믿는다.  먼지만 한 일도 시간이 흘러서는 반드시 의미를 남겨주었던 것을 알기에. 당장은 무슨 도움이 될까 싶겠지만, 언젠가 운명으로 맞물린 톱니바퀴처럼 내 행동이 쓸모 있어질 순간이 올 거라 믿으며. 티끌을 닮은 작고 소소한 노력이라도, 설령 나만 눈치챌 만큼 손톱만 한 도전이라도. 멈추지 않기로 했다. 어차피 죽는데 왜 열심히 살아야 하나? 라는 부정적인 생각이 우리를 잡고 놓아주지 않는다면, 초점을 돌려야 한다.     


우리 모두 무언가 이루기 위해, 대단하고 어려운 존재가 되기 위해 태어난 게 아니라는 것을. 삶의 목적은 나만의 참된 행복에 두어야 한다. 돈으로 살 수 있고 돈으로 주저앉게 만드는 일시적 물질적 행복이 아닌, 진정으로 마음을 가득 채워주는 그런 행복. 오늘이 있기에 다른 내일이 있다. 다가올 미래를 지켜야 해서 현재의 내가 불행해야 한다면 너무 모순적이지 않은가. 참고 견디기만 하며 불안에 흘려보내는 지금의 현재 또한, 과거엔 내가 행복하길 바라던 미래였다는 것을 알아야만 한다.     


당장 쟁취하기 어려운 하나의 의미에만 집착하기 시작하면 그 의미가 깨지는 순간 나라는 사람의 존재를 잃게 될지도 모른다. 각자의 가치는 하늘에 떠있는 수억 개의 별만큼 개성 있으므로, 누군가의 시선과 기준에 따르고 억지로 끼워 맞춰야 할 이유가 없다. 무엇이 나를 행복하게 해 줄까. 나는 어떤 행동을 할 때 조금이라도 편안함을 느끼는가. 무엇이 나를 온전한 웃음으로 인도해 주고 있나.      


내 앞에 저만치 뛰어가는 사람들보다 나는 뒤처져 있는 것이 아니다. 그저 숨 가쁘게 각자의 길을 걸어가는 것뿐이다. 우리는 힘들 때 잠시 숨을 고르고 물 한 잔 나누며 순간을 위로하는 동료이자 친구가 될 수도 있다. 왜 굳이 서로를 적으로 돌려야만 하나. 세상엔 사람 말고도 우리가 이겨내야 할 가혹한 현실이 너무나 많은데.  


아직도 발이 아프다. 조그마한 상처 때문에 발 전체가 아픈 듯한 느낌도 든다. 길거리를 걸으며 발이 쓰라렸던 순간엔 아프다는 감정 말곤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던 것 같다. 가끔은 작은 것에 기대어 전체의 감정을 잊는 시간도 필요하지 않을까. 너무 많은 고민들은 자신들의 꼬리를 물어 몸덩이를 불려 나가기만 할 텐데, 고민의 법칙을 알면서도 생각을 멈추지 못하는 사람들.


그리하여 나는 떠오르는 생각을 거부하지 않는다. 매일 성실하고 꾸준하게 몇십 년 반복해 온 습관처럼 생각을 생각한다. 생각을 떠올린다. 멈추지 못해서 무의식으로 끌어안고 사는 것도 어쩌면 맞다. 그 터무니없고 무수한 이야기 중에 종국에는 나를 살리는 몇 가지의 묘수들이 존재할 거라 상상하면서. 크고 작은 아픔이 와도 언젠가는, 겸허히 받아들이는 더 큰 내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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