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달 첫날엔 부모님 계시는 추모관에 다녀온다.
매달 첫날도 가고, 또 가고 싶을 때는 무시로 찾아가기도 한다.
집에서 40여 분 남짓 걸리는 거리이니, 부모님 살아계실 때 본가보다도 오히려 가까워진 셈이다.
월요일엔 휴관인 관계로 첫날이 월요일 일 때는 다음날 다녀오기도 한다.
이렇게 모순적일 수가 있을까?
나는 유물론에 가깝다.
살아있는 나는,
나를 포함한 모든 생명체는,
제 명이 다하면 소멸이라고 생각한다.
사후 세계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제사나 고사, 혹은 특정 종교의식 등에 대해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그러한 의식들은, 현실을 살고 있는 사람에 대한 위로일 뿐,
돌아가신 영혼을 위한 행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내가
때마다 돌아가신 부모님 추모관을 찾아간다.
부모님은 돌아가셨다.
무슨 수를 써도 되돌릴 수가 없다.
그걸 잘 알고 있는 내가 추모관을 찾아간다.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고, 꽃을 달아드리고, 눈물을 펑펑 쏟는다.
이렇게 이기적일 수가 있을까?
이 모든 게 사실은 나를 위함이지 않은가.
날 위로하고 내 슬픔을 치유하기 위함이지 않은가.
돌아가신 부모님께서 무슨 위안을 얻으실 수 있단 말인가.
이렇게까지 이기적일 수 있단 말인가.
살아계신 때 잘 했어야지.
이런저런 이유로 잘 찾아뵙지도 못하다가,
아들이 필요할 때 적극적으로 곁에 있어주지도 않다가,
이제 와서,
이제 와서 슬퍼하며 추모한다고 난리를 떤다.
모순적이고, 이기적인 인간.
아이들이 커가는 건 하루가 다르게 눈에 띈다
부모님이 늙어 가시는 건 아이들처럼 눈에 띄지 않는다.
그래도 알고 있었는데...
늙어 가고 계심을,
병들어 허약해져 가심을,
홀로 남아 외롭고 쓸쓸하고 허전하고 그냥 힘들고 미치겠음을,
다 알고 있었는데,
알면서도 돌보질 않았다.
그게 이렇게 가슴에 사무치고 슬픈 후회가 되어,
스스로를 이렇게까지 힘들게 옥죌 줄을
이기적이고 모순적인 나는 몰랐던 것일까.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는 미래를 예견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
그러나 미래를 예측할 수는 있다.
예견보다도 더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다.
다만 알면서 안 했을 뿐이다.
알면서도 하지 않은 죄를 돌아가신 부모님께 용서받을 길은 없다.
그저 그리워하고 슬퍼하며 힘들어할 수밖에...
돌아오는 길,
도롯가에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다.
꽃구경하소서
꽃잎 꺾어 머리에 꽂고
술잔 띄워 즐기소서
그리고 용서하소서
먼 훗날
다시 만나 잘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