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로, 또 같이 – 지속가능한 조직의 윤리학
조직에서 갈등이 사라지는 순간은 거의 없다. 다만 갈등을 드러내지 않게 할 수는 있다. 그런 조직은 표면적으로는 매우 평온하지만, 속으로는 서로 다른 언어와 속도로 움직이는 사람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균열이 점차 쌓여간다.
혹 몇몇 조직 구성원은 이런 상태를 ‘안정’이라고 부를지도 모르겠다. 갈등이 없고, 큰 충돌도 없으며, 각자의 역할과 선을 넘지 않는 상태.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이 안정은 변화하지 않는 구조로 굳어버린다. 그리고 어느 순간, 조직은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공익 조직, 특히 운동성과 사업성을 동시에 품은 사회적기업과 같은 곳에서 이 문제는 더욱 복잡하게 나타난다. 수익성과 목적성, 실무와 운동, 사업과 가치, 성과와 신념은 애초에 같은 언어를 쓰지 않는다. 그렇기에 이러한 인식에 대한 '언어적' 갈등은 조직 안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다. 누군가는 사업의 시의성을, 누군가는 가치의 지속성을 먼저 외친다. 이러한 갈등을 봉합하고자 때때로 조직은 그것을 하나의 논리로 통합하려 할 때가 있다.
"이것이 우리의 공통 매뉴얼이야. 서로 조금씩 아쉬워도 이것을 따라야 해."
하지만 통합은 늘 좋은 해답일까. 모든 목소리를 하나로 맞추려는 시도는 갈등을 줄이는 대신 차이를 지워버리는 방식으로 작동하곤 한다. 그 결과 조직은 단일의 언어를 획득하게 되지만, 다양성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가능성은 잃게 된다.
그래서 지속가능한 조직이 먼저 고민해야 할 것은 단순한 통합이 아닌 '공존'이다. 서로 다른 방식이 존재하는 것을 전제로, 그 다름이 충돌하지 않고 같은 미래를 향해 움직이도록 설계하는 일. 이것은 조직 안에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윤리의 문제에 가깝다.
앞선 챕터에서 내가 언급한 바 있는 '양손잡이 조직(ambidextrous organization)'이라는 개념은 한 손으로는 효율과 성과를 붙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가치와 방향을 놓지 않는 조직을 지향한다. 중요한 것은 두 손을 하나로 묶지 않는다는 점이다. 서로 다른 손이 각자의 역할을 수행하되, 같은 몸에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 것. 실무는 실무의 논리로 움직이고, 운동은 운동의 언어로 숨 쉬어야 한다. 사업은 수익과 지속성을 고민하고, 가치는 사회적 방향과 윤리를 붙들어야 한다.
많은 조직에서 갈등은 ‘상대가 내 영역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감정에서 시작된다. 예를 들면 사업부서는 운동 부서를 향해 “현실을 모른다”라고 말하고, 운동부서는 사업부서를 향해 “가치를 잃었다”고 느낀다. 이 감정은 개인의 성격 문제가 아니라 역할이 명확히 구분되지 않은 구조에서 비롯된다.
그래서 공존을 위해 필요한 것은 서로를 설득하는 말이 아니라 역할을 구분하는 설계다. 누가 무엇을 책임지는지, 어떤 판단은 어디에서 내려지는지, 어디까지가 각자의 권한인지가 분명할수록 불필요한 갈등은 줄어든다.
기능 중심의 운영 영역과 과제 중심의 전략·혁신 영역을 구분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운영은 안정성과 효율을 책임지고, 전략은 변화와 실험을 감당한다. 두 영역이 같은 방식으로 평가받으려 할 때 조직은 필연적으로 왜곡된다.
공존의 설계는 평시의 구조뿐 아니라 비상시의 움직임까지 포함한다. 모든 일을 상시 조직 안에서 해결하려는 방식은 변화의 속도를 따라가기 어렵다. 시의성이 필요한 과제에는 프로젝트 단위의 전담팀이 필요하고, 그 역할은 임시적일 수 있어야 한다. 조직이 숨을 고를 수 있는 유연성은 이런 구조에서 나온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역할 기반의 평가와 동기부여다. 같은 기준으로 모든 사람을 평가하려는 순간, 조직은 가장 중요한 것을 놓친다. 역할이 다르면 성과의 형태도 달라야 한다. 사업의 성과와 운동의 성과를 같은 잣대로 재단할 수는 없다. 각 영역이 자신만의 기준으로 인정받을 때 조직은 비로소 서로를 존중할 수 있다. 존중은 말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에 따른 적절한 보상도 함께 이어져야 한다.
이런 조직에서도 역시 갈등 자체는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갈등의 성격이 달라진다. 상대를 부정하는 갈등이 아니라, 방향을 조율하는 갈등으로 바뀐다. 피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관리하고 다뤄야 할 에너지로 전환된다.
그래서 조직의 다양성 확보를 위한 분리적 사고는 단순한 위험이 아니라 자산 확보를 위한 길이다. 다양한 관점, 다른 속도, 상이한 언어는 분열의 씨앗이 아니라 조직을 움직이게 하는 동력이 될 수 있다. 그 에너지를 억누르지 않고 같은 방향으로 흐르게 만드는 것, 그것이 공존을 설계하는 조직의 역할이다.
지속가능성은 하나의 목소리에서 나오지 않는다. 서로 다른 목소리가 서로를 지우지 않고 조화를 이루는 힘에서 나온다. 따로 움직이되, 같은 미래를 바라보는 조직.
그 윤리를 선택할 때 조직은 비로소 오래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