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적 자생이 아닌 지속가능한 자립을 향해
한국에서 사회연대경제기본법은 여러 이름으로 10년 넘게 국회 문 앞에서 맴돌기만 하고 있는 법이다. 해당 법안은 최초 19대 국회에서 처음 논의된 이후 여러 차례 발의 및 폐기가 이어지다, 최근 22대 국회와 정부 차원에서 “서둘러 통과시키자”라는 발언이 대두되며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사회연대경제기본법은 ‘사회연대경제 조직 활동에 대한 법적 토대와 정부 지원체계를 마련한다’는 목적 아래 사회적기업, 협동조합, 마을기업 등 관련 조직을 포괄하는 형태로 설계되어 있다. 여당과 정부 차원에서는 이상의 법제화를 통해 양극화·기후위기·지방소멸 등 구조적 문제 해결의 기반을 만들고자 하는 의도를 명확히 했다.
하지만 보기에 따라서 그 유익이 명확해 보이는 사회연대경제기본법이 어떠한 이유로 이처럼 오래 계류되어 있던 것일까? 나름의 복잡한 사정이 있겠지만 해당 쟁점에 대해 간단히 분류해 보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로는 사회적으로나 행정적으로 ‘무엇을 사회연대경제라고 부를 것인가’라는 것이 정리되지 않았다. 예를 들면 영리·비영리의 경계를 어떻게 설정할지, 사회적 가치가 불분명한 조직까지 지원 대상군으로 할지 등, 사회연대경제를 넓게 해석하면 그 포괄성을 정부 지원으로 감당할 수 없다는 의견이다.
둘째로는 컨트롤타워와 부처는 어디로 하고, 그 권한은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 지점이다. 물론 여당, 정부, 대통령실이 참여한 당정대 협의에서는 행안부를 주무부처로 두는 것이 확정적이나, 실제로는 과거 오랫동안 사회적경제 정책은 고용노동부(사회적기업), 행안부(마을기업·지역공동체), 기획재정부(협동조합)로 쪼개져 추진되어 왔기에 부처 간 이해관계·예산 배분 문제 등 실제 권한과 책임이 어떻게 배분될지에 대한 세밀한 논의가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마지막으로는 기존에 적용해 왔던 사회적기업육성법, 협동조합기본법 등의 개별법에 대한 일종의 ‘퍼주기’ 프레임과 충돌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 보수 진영과 언론에서는 해당 기본법을 사회적기업·협동조합에 대한 과도한 특혜, ‘혈세 퍼주기의 법제화’로 비판하며, 국가 재정 건전성을 흩트리고, 시장 경쟁을 왜곡할 우려가 있다고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해당 쟁점 모두 첨예하다고 할 수 있으나, 상대적으로 첫 번째 두 번째 쟁점의 경우에는 행정적으로나 절차적으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영역이다. 하지만 마지막의 프레임 이슈는 결국 정치적·사회적 인식의 틀거리 안에서 오가는 논의이기에 상대적으로 그 조정이 어려운 부분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왜 사회연대경제 이슈는 이처럼 정치화가 되었을까?
일부 보수 진영은 사회연대경제를 ‘시장 자본주의를 대체하는 사회주의적 경제 모델’로 규정하며, 해당 법을 헌법상 자유시장경제 원리에 대한 도전으로 비판해 왔다. 이 과정에서 ‘특정 영역 기업에 대한 특혜’, ‘경제의 사회주의화’, ‘운동권 퍼주기법’ 같은 표현을 반복하며, 법안 전체가 ‘좌파 진영의 세력 확대를 위한 법’이라는 이미지가 굳어졌다.
정치권에서 이런 인식을 여실히 보여준 사례가 과거 오세훈 서울시장의 시정 브리핑 때 언급했던 ‘서울시가 시민단체 ATM기로 전락’했다고 한 표현이다. 시민사회 출신 전 시장의 행적 안에서 과도한 민관협치 자금이 사용되었다는 문제의식은 일정 부분 공감할 수는 있어도, 해당 표현이 다소 과격하고 편견이 덧씌워진 언어임은 틀림없어 보인다.
이러한 인식을 공유하는 윤석열 정부에서 사회연대경제기본법의 입법화는 진행되기 어려웠고, 문재인 정부 말 2천억 원 안팎 정도로 편성되던 지원금도 ‘자생력 강화’ 기조로 2024년 800억 원 안팎, 2025년에는 284억 원 수준으로까지 줄어들었다. 자연스럽게 사회연대경제 영역은 큰 시련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그 어느 때보다 새롭게 임기를 시작한 이재명 정부에 대한 사회연대경제 구성원들의 기대감은 높았다. 실제로 이재명 정부가 편성한 2026년도 고용노동부 사회적기업 예산은 약 1,180억 원으로, 2025년의 예산 대비 4배 이상 규모로 증액·복원되었다. 물론 이는 삭감 이전인 2023년 예산의 절반을 조금 넘는 것으로, 윤석열 정부 때 급감한 것을 상당 부분 되돌린 것이지 문재인 정부 시기까지 포함한 과거 최고 수준으로 완전히 회복한 것은 아니다. 그러하기에 더더욱 사회연대경제 구성원들은 지금의 상황을 일종의 ‘한숨 돌리는 시기’로만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사회연대경제기본법의 법제화를 통해 장기적인 꿈을 꾸어갈 수 있는 발전의 시간으로 인식해야 할 것이다.
결국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격’이라는 사회연대경제에 대한 편견의 프레임을 넘어설 방법은 결과와 사례이다. 과거 정부 안에서 이뤄진 관련 예산 삭감은 기본적으로 시장주의적 관점에서 출발했다. 생태 경쟁 속에서 스스로 살아남는 것만을 인정하려 하고, 살아남은 존재를 생존력·효율성·건강성의 증거로 취급하는 것이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외부 개입을 최소화하거나 지원의 정당성을 축소하는 방향으로 그 흐름이 이어질 수밖에 없다. 결국 이러한 ‘자생’의 관점은 사회연대경제에 대한 몰이해 혹은 부정성에서 출발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동시에 사회연대경제 영역 또한 이러한 인식을 일정 부분 받아들여 조직의 지속가능성을 꾀하는 ‘ 자립’에 함께 포커스를 맞출 필요가 있다. 자립은 경쟁의 결과가 아니라 과정적·관계적 성장을 전제한다. 즉, 존재가 살아남을 수 있도록 초기 조건을 마련해주고, 일정한 역량·기반·관계를 함께 구축해 나가며, 일정 시점 이후에는 스스로 설 수 있게 한다는 의미이다.
이와 같은 ‘자생’과 ‘자립’에 대한 상호 인식을 분류해 보면, 자생은 결과 중심(살아남은 것)이지만 자립은 과정 중심(살아남을 수 있도록 함께 만드는 것), 자생은 방치적(살아남으면 생존력 있다고 보는 관점), 자립은 재배적·성장적(환경을 조성해주는 관점), 자생은 ‘경쟁의 자연스러운 결과’, 자립은 ‘성장을 가능하게 하는 관계적 과정’으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사회연대경제 구성원이라면 이 시기 단순히 법제화만 붙들고 있는 것이 아니라, 또다시 다가올 수 있는 추운 계절을 앞두고 스스로 온전히 서는 자립을 준비해야 한다. 지금과 같은 훈풍에 기대는 낙관적 사고도 좋으나, 시장이라는 현실을 조금 더 냉정히 바라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정부 지원을 염두에 두고 사업을 의존적으로 설계하다 보면 재차 흔들릴 수밖에 없다. 이와 같은 법제화는 커다란 밑그림일 수는 있지만, 세부적인 채색은 개별 사회연대경제 영역들이 나서 채워야만 하기 때문이다.
사회연대경제는 자립해야 한다. 뿌리 깊은 나무가 바람에 아니 흔들리는 것처럼, 사회연대경제 안의 모든 기관이 흔들림 없이 우리 사회 안에 굳건히 자리 잡아 다시는 정치화·쟁점화되지 않도록 해야 하는 것이 그 속한 모든 조직원들이 해야 할 일이다. 이제는 그 자립의 결과와 사례를 만들어 갈 때이다.
2026년, 앞으로의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해 사회연대경제 구성원 모두 조금 더 부지런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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