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여름 / 바닷가가 그리워질 때 즈음
그림 작가 온수와 교육단체에서 일하고 있는 물꿈이 함께하는 [너를 통해 나를] 프로젝트입니다.
'엄마'와 '아빠'라는 서로 다른 역할을 맡고 있는 친구가 만나 아이와 함께 성장하는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글과 그림으로 나눕니다. 멀고 깊은 이야기도, 가깝고 가벼운 이야기도 담습니다.
[너를 통해 나를] 프로젝트는 매월 첫째 주, 셋째 주 토요일에 공유됩니다.
내가 처음 바다를 본적이 과연 언제였을까? 갑자기 궁금해 머릿속 오래된 기억의 서랍들을 뒤져 보았지만 잘 떠오르지 않는다. 이제와 나쁜 기억력을 탓해 무엇하랴. 그렇다면 내가 취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당시의 시대 분위기와 우리 집의 가정형편을 적절히 고려해 그 답을 유추해보는 것뿐일 것이다.
일단 1980년대가 되어서야 본격적으로 ‘바캉스’라는 용어가 대중화되고 여름휴가의 개념이 자리 잡혔으니 아마도 아주 어린 시절에 바다를 가보지는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바캉스 문화를 둘러싼 배경에는 노동환경 구조 변화와 대중교통의 발달, 더불어 자가 차량의 확대가 크게 작용했을 터이니 경제 규모나 노동 인구가 버블처럼 확 커지는 티핑 포인트를 분석해야 할 것...
...이지만 그러다간 바다의 기억을 찾는 다소 낭만적인 의도와는 다르게 뭔가 사회학적 논의를 이어가야 할 것만 같아 시작부터 지친다. 다시 논지를 되돌려 우리 가족 이야기를 좀 더 해보면, 아버지는 개인 사업을 하셨기에 그리 시간에 얽매이지는 않았을 텐데 여름철마다 휴가 형태로 가족끼리 어딘가를 함께 이동한 기억은 별로 없다. 뭐 반대로 생각해보면 사업을 하였기에 여행을 가는 것이 더 어려울 수 있을 것도 같지만... 여하튼! 이유를 들자면 방금 전 논의처럼 몇몇 가지를 동시에 꼽을 수 있겠지만, 결국 가장 큰 이유는 경제적인 부분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렇다면 내가 바다를 처음 봤을 확률이 가장 높은 시점은 아버지의 사업이 조금 풀려 처음으로 소형 자동차를 장만한 90년대 초반일 가능성이 가장 높다. 그러니까 다시 말해 내가 십 대에 들어설 즈음에야 나는 바다를 본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내 머릿속에 구체적이고도 실제화된 바다의 인상이 남아 있는 것은 중학교 1학년 즈음 가족 전체가 강릉으로 여행을 갔을 때이다. 당시 나는 비행기가 너무 타보고 싶어 누나들과 함께 부모님을 졸라 서울에서 강릉까지 비행기를 타고 갔다. 지금 생각하면 터무니없지만 그 시절 아버지도 모처럼 자녀들을 위해 무리를 하신 것 같다(IMF 전까지는 다들 비슷하지 않았을까 싶은데).
바다는 좋았다. 무척 좋았다. 바다와 하늘의 경계가 무뎌지는 수평선 끝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어린 나이에도 가슴이 뻥 뚫리는 것만 같았다. 한참 동안 파도가 오가는 모습을 보고 들어도 전혀 질리지가 않았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바닷물에 들어가지는 않았다. 해변 안쪽 깊이 밀려 들어오는 파도에 살짝 발목을 적시는 정도였다.
그렇다. 나는 바다를 좋아하는 만큼 바다를 무서워한다.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다. 어린 시절부터 줄곳 물이 두려웠다. 학교에서 억지로 배워야 하는 수영 시간은 정말이지 한 달 전부터 괴로움에 몸부림 쳤고, 수영장의 먹먹하게 울리는 소리와 묘한 세제 냄새도 싫고, 차갑게 느껴지는 물의 온도도 싫고, 그 차가운 물이 내 가슴 높이까지 차올라 있다는 것도 싫었다. 그런 나에게 바다는 이중적 감정을 전해 준다. 동경하지만 두려운...
그러나 세상의 많은 것들이 다 비슷하지 않은가? 우리의 감정은 대부분 그 사이 어디 즈음에 존재한다.
내가 이 모양 이 꼴(?)이기에 적어도 나의 아이들의 첫 바다 경험은 꼭 기억하고 싶었다. 그래서 아이들이 자라 비슷한 질문을 던지면 척척 말해주고 싶었다. 큰 아이는 돌을 지나 제주도에 놀러 갔을 때 바다를 처음 보았다. 내심 화사한 기억으로 남기고 싶었으나 파도가 찰랑이는 해변가에 아이를 내려놓으니 대뜸 아주 기겁을 하며 울어버리는 것이 아닌가. 때문에 즐기지도 못하고 아쉬운 마음으로 서둘러 해변을 벗어났던 기억이 있다. 이후의 몇 차례 경험에도 큰 아이는 물을 무서워했다. 유전인가 싶었다. 둘째 아이의 첫 바다 경험도 제주도였는데 다행스럽게 크게 물을 두려워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그만큼 좋아하는 것 같지도 않아 보였다. 얕은 물가를 골라 튜브에 앉혀 놓으면 한참 동안 미동도 없이 먼 수평선만을 조망하고 있는 것이었다. 가까이 다가가 바라보면 둘째 아이는 이미 인생을 다 아는 눈빛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우연한 계기로 큰 아이에게 변화가 일어났다. 작년에 가족들과 강릉으로 여행을 갔을 때의 일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물놀이에 별로 흥미가 없는 우리는 그저 멀찍이 바다를 바라 볼 생각으로 아무런 준비물을 챙겨 오지 않았는데, 함께 간 처제는 바닷 놀이에 익숙한지 구명조끼며 오리발 등등을 들고 왔다. 처음에 큰 아이는 구명조끼를 입고 물 위에 둥둥 떠 있는 이모가 부러운 듯 쳐다보고 있다가 '한 번 해보겠느냐'는 이모의 제안에 용기를 내었다. 안타깝게도 그 용기가 얼마 못 간 아이는 구명조끼를 입고도 혹여나 물에 빠질까 있는 힘껏 곁에 서 있는 나의 옷깃을 잡았다. 이미 초등학생이라 본인 허리밖에 오지 않는 깊이인데도 겁을 내며 몸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그렇게 허우적대던 어느 순간, 아이는 두 발 자전거로 처음 혼자 달리는 경험처럼 아무런 의지 없이도 물 위에 뜰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유레카! 그러자 오히려 완전히 빠져들어 몇 시간이고 혼자 물 위에 떠 있으려 하는 것이 아닌가. 오히려 한 술을 더 떠 파도가 거세어 잡아줄려치면 뿌리치고, 다음 날에는 점 점 더 바다 안쪽 깊은 곳으로 가려는 것을 겨우 겨우 악다구니하며 말려야 할 정도까지 급격한 변화가 일어났다.
두려움이 사라지고 익숙함이 찾아오니 아이는 그 안에서 오히려 자유함과 편안함을 누렸나 보다. 부모로서 아이들에게 새로운 경험과 도전의 기회를 제공해야 하는데 ‘이 아이는 나를 닮아 그런 아이’라고 쉽게 규정한 것이 잘 못이었다. 아이들은 그저 나와는 다른 '또 다른' 아이들이었다. 문득 반성을 하며 그 와중에 부모의 역할은 다른 것이 아닌 이런 구명조끼와도 같은 역할이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것만 있으면 안전하다는 믿음. 안전함과 안정감의 제공. 그 속에서 아이들은 도전의 발판을 마련하고 다음 단계로 나아갈 준비를 하게 되는 것이다. 세발자전거를 타다가 두 발 자전거에 익숙해지면 다시는 세발자전거를 탈 수 없는 것처럼, 아이들은 자라 어느 순간 지금의 '구명조끼'마저 불필요하게 느낄 것이다. 일정 시점이 되면 물 밖이 아닌 물속(내면의식과 자기 정체성)의 새로운 세계에 눈을 뜨게 될 것이고 그때는 구명조끼가 아닌 또 다른 잠수 도구와 장비가 필요할 것이다. 아마 아이들은 그때에 맞는 선생과 친구들을 자연스럽게 찾아 나서겠지...
구명조끼를 입고 튜브에 올라타 물 위에 둥둥 떠있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이런저런 생각을 이어가다 보니 문득 나는 먼 미래까지 훑고 돌아온 듯 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그때는 또 그때이고 이번 여름이 다가오면 지금 이 순간을 단순히 즐김이 마땅하다. 바다는 항상 같은 모습으로 밀려오고 밀려갈 테니까. 그런 의미에서 내가 처음 본 바다는 눈 앞에 펼쳐 있는 '바로 지금 이 순간'의 바다가 아닐까?
'온수'의 다음 이야기는 8월 15일에 공유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