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2월 / 아직은 작은 방의 온기가 좋은 시기
그림 작가 온수와 교육단체에서 일하고 있는 물꿈이 함께하는 [너를 통해 나를] 프로젝트입니다.
'엄마'와 '아빠'라는 서로 다른 역할을 맡고 있는 친구가 만나 아이와 함께 성장하는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글과 그림으로 나눕니다. 멀고 깊은 이야기도, 가깝고 가벼운 이야기도 담습니다.
[너를 통해 나를] 프로젝트는 매월 첫째 주, 셋째 주 토요일에 공유됩니다.
어린 시절부터 성향이 너무 명확해서 그랬는지 나는 라디오나 티브이 시청을 별로 좋아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왜냐하면 그 매체들은 나의 선택권을 반영할 수 없기 때문이다. 라디오 DJ가 틀어주는 음악만 들어야 하고, 방송사가 편성한 프로그램만을 수용하는 것이 별로 내키지 않았다. 나는 그 시간에 내가 좋아하는 레코드를 듣고, 내가 좋아하는 영화 비디오를 빌려보는 것을 더 선호했다. 그러나 자라면서 생각보다 라디오와 티브이를 사람들이 많이 듣고 본다는 것을 알게 되어 제법 놀랐다. 문제는 그렇게 되다 보니 친구들 사이의 공통 화제 속에 나는 거의 끼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돌아보니 나의 대중 감각 결여는 꽤나 역사가 긴 편인 듯하다.
이런 나의 성향 탓인지는 모르겠으나 아내와 아이 둘과 살고 있는 지금 우리 가정에서도 라디오나 티브이 시청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아이들도 시간이 나면 티브이 프로그램을 시청하기 보기보다는 유튜브로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찾아보는 편이다.
그러던 중 최근 갑자기 아이들이 한 예능 프로그램에 빠졌다. 그것은 무명의 가수들이 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를 주는 모 방송사의 경연 프로그램이었다. 아이들이 소파에 붙어 앉아 방송에 집중하는 모습이 낯설고 신기하다. 나는 솔직히 경연 프로그램을 질색하는 사람이라서(쓰다 보니 계속 싫다는 말만 해서 엄청 까탈스러운 인간처럼 보이지만...) 다른 재미있는 것도 많을 텐데 왜 이런 것을 보나 싶었다.
하지만 아이들은 방송이 끝나면 자기들끼리 이런저런 노래에 대한 평론을 하고, 노래를 흥얼거리고, 유튜브로 검색해 노래를 다시 듣는다. 나는 예술은 상품과는 다르며, 노래 부르기는 기예가 아니고, 누군가가 누군가를 어떠한 권력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평가하는 것은 예술을 즐기는 것이 아닌 소비하는 형태라고 말... 하지는 않고, 그냥 '와~ 잘하네'라고(다소 영혼 없이) 곁에서 말할 뿐이었다.
잠시 흥미 있다 말겠지 했는데 아이들은 꾸준히 그 실방송 시간이 기다려지나 보다. 아내의 말로는 아이들이 그 시간대에 티브이를 보기 위해 안 하던 공부와 숙제를 하더란다...... 이건 진심이다!
아이들은 그중 한 인물에 팬이 되었는지 입에 침이 마르도록 그를 칭찬을 하고 한 번은 나를 억지로 소파에 앉혀 유튜브로 경연 노래를 찾아 시청하게 하였다. 물론 그는 굉장히 잘했다. 하지만 나는 음악가란 커버곡을 얼마큼 완벽히 소화하느냐나 편곡의 특출함이 아닌 자신의 개성적인 송라이팅을 곡 안에서 어떻게 구현하느냐가 더 중요한 것이라고 말... 하지는 않고, 그냥 '와~ 진~짜 잘하네'라고(다소 영혼 없이2) 곁에서 말할 뿐이었다.
"너희는 이 프로그램이 왜 재미있어?"
"응, 다들 잘하잖아. 열심히 하잖아."
문득 회사 점심시간에 앉아 밥을 먹는데 이상의 아이와의 대화 중 '열심'이라는 단어가 머리에 맴돌았다. 음식을 먹다 말고 아이들이 응원하는 가수의 이름을 검색해 찾아들었다. 영상 속에는 무대가 간절했던 사람들이 자신의 음악을 기꺼이 들어주는 사람들 앞에서 열정을 바쳐 자신을 전달하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나는 경연이라는 것을 '심사'에 포커싱을 두고 있었는데, 아이들은 '스토리텔링'으로 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만의 서사가 음악을 통해 어떻게 확장되어가는지, 심사위원들의 동의를 통해 계속 그 서사가 이어질 수 있는지에 대한 과정을 아이들은 고스란히 따라가고 있었다. 편협한 나와는 다르게 아이들은 개인과 노래를 매개로 하여 그 '관계'를 이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노래의 기능은 무엇일까. 언어가 완벽하다면 노래는 필요 없을 것이라고, 언어로는 진의를 전달하지 못하기 때문에 감정의 언어인 음악이 필요한 것이라고, 예전에 어디선가에서 읽었던 기억이 있다. 그렇게 시청하는 아이들뿐만 아니라 참가하는 이들이 모두 다 '진심!'이었던 것이다. 마음을 전달하고 싶었기에 사람과 무대가 필요했던 것이다. 누구에게나 나 자신의 정체성을 타인에게 전달할 수 있는 소통의 공간이 필요하다. 그렇게 따지면 대중 감각이란 천박함과는 거리가 먼, 함께 이야기하고 싶은 사람들의 일반적이고도 공통적인 감수성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덕분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티브이 시청 시간을 늘려야겠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이를 통해 나 또한 티브이 앞 소파라는 공통적인 소통의 공간을 새로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대화를 통해 마음은 또 이어질 것이다.
"네가 좋은 것은 나도 좋아(영혼과 진심을 담아서)."
좋아하는 사람에게 할 수 있는 참 좋은 말이다.
'온수'의 다음 이야기는 2월 20일에 공유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