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듬을 체화해 읽기
다소 지루해 보이는 취미이지만, 책 읽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대한민국 성인 평균 독서량보다는 내가 조금(?) 웃돌 것이다.
때로는 좋든 싫든 많은 텍스트를 소화해야 할 때도 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빠르게 글을 읽어야 할 상황이 적지 않았다.
세상에는 별도의 '속독법'이라는 기술이 있던데
나는 그러한 것을 배운 적이 없기에(아마 앞으로도 없을), 나 나름대로 체화한 '텍스트 빨리 읽는 법(더 정확히는 나만의 독서법)'을 한번 정리해 본다.
먼저 글을 빨리 읽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 글이 속독을 해도 되는 텍스트인지 숙독을 해야 하는 텍스트인지 분류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에세이랑 논문이랑 단순 비교하면 아무래도 목적성 때문에라도 후자가 더 숙독을 요할 것이다.
'가중정보'라는 것이 있다. 텍스트가 가진 정보량들이 지속적으로 축적을 전제로 할 때, 전달하고 있는 정보를 전 단계에서 놓치면 다음의 진행을 할 수 없어진다.
그렇다면 당연히 그 텍스트들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숙독이 필요할 것이다. 반대로 그것이 현저히 적은 글들은 제법 속도감을 낼 수 있다.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두 분류 가운데 하나로 결정되었더라도, 그 안에서 또 한 번 속독과 숙독을 재분류하는 것이다. 온전히 숙독만을 요하거나 속독만을 요하는 텍스트는 없을 것이다(경전이나 만화도 똑같이 그렇다).
소설을 한 예로 들자면 핵심적인 서사가 그려지거나 구체적으로 인물의 성격들이 나열될 때는 문장들과 함께 깊이 그 사건이나 캐릭터를 짚어갈 필요가 있다.
하지만 단순 대담들이 나열될 때(물론 그 안에서 결정적인 복선이 있는 경우는 피해)나 가중정보량이 낮을 때는 드러나는 다양한 정보의 각주까지 일일이 들여다보며 진을 뺄 필요는 없다(특히 이런 문제는 고전소설류에 많이 등장한다).
이럴 때는 부스터를 올려 속도를 높일 필요가 있다. 사실 나는 잘하지 않는 방법이지만, 덩어리 채로 스킵하는 이들도 꽤 많다고 하던데 필요에 따라(글의 성격에 따라) 선택할 수 있다고는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권하고 싶은 것은, 단순히 시간을 아끼기 위한 별도의 축약형 텍스트들은 가급적 피하라는 것이다. 예를 들면 <한 권으로 읽는 000>류이다. 그것을 보고 자신이 000을 봤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그것은 실제 하지 않는 정보이다.
단순히 생각해 보면 어떤 음악가가 악장들을 세분화하여 곡을 만들었는데 한 장을 쏙 빼고 연주한다든지, 5분짜리 노래가 길다고 생각해 브릿지 부분을 통으로 들어낸다면 그것은 이미 그 작품이 아닌 것이다.
이처럼 단순히 빨리 읽는 방법은 유효하지 않다. 요즘 같은 때에 수량적으로 책을 많이 읽는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으랴. 책 한 권이라도 깊이 읽고 자신의 것을 만드는 것이 훨씬 나은 방법이다.
해서 빨리 읽는다는 것보다 나름의 리듬을 체화해 효율적이게 읽는 것이 텍스트를 가장 빨리(?) 읽는 방법이 아닐까 싶다. 요행은 곧 바닥이 드러나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