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를 시작하기 위해 필요한 것.
그리스신화에는 미궁 속에 사는 미노타우르스 이야기가 나옵니다. 잘 알려진 것처럼 미노타우르스는 인간의 몸에 황소의 얼굴을 가진 괴물이에요. 그 괴물을 없애기 위해 영웅 테세우스는 미로를 뚫고 들어가 승리를 거머쥡니다. 저는 글쓰기가 바로 테세우스의 그 미로 찾기와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백지를 앞에 두면 누구라도 ‘과연 무엇을 어떻게 시작해야 하나’ 막막한 마음이 들기 마련이죠. 그럴 때는 일단 망설이지 말고 미로 속으로 한 발 내디디시라 말씀드리고 싶어요. 즉, 글의 전체 구성에 너무 개의치 말고 일단 첫 문장을 백지 위에 ‘쾅’ 박아 놓는 것이죠. 어떠한 문장도 상관없습니다. 사실 정작 중요한 것은 그 첫 문장이 아니라, 바로 뒤에 이어지는 문장들이니까요.
자, 이제부터 본격적인 ‘미로 찾기’가 시작됩니다. 단순하게 생각해 보죠. 지금은 도착 지점(글의 완성)따위는 생각할 필요 없이 눈앞의 갈라진 길 앞에 최선의 선택지를 찾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첫 문장이 완성되면, 그 뒤에 또 다른 문장, 그리고 그다음 문장… 이렇게 벽을 하나하나 더듬어 걸어가 보는 것이에요. 물론 운 좋게 계속 열린 길을 마주할 수도 있습니다. 글이 술술 써지는 경험, 한 번쯤은 있으시죠?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는 미로 속 막힌 벽과 마주하게 될 때가 그보다는 훨씬 더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럴 때는 어떻게 하느냐고요? 이 또한 단순합니다. 바로 왔던 길을 되돌아가는 것입니다. 쉽게 풀이하면 지금껏 자신이 쓴 미완의 글을 반복적으로 다시 읽어보는 것이에요. 그전의 문장(길)을 반복해서 읽어보면, 확언컨대 지금껏 자신이 작성해 놓은 글 가운데 다음 선택지의 힌트가 반드시 들어있을 것입니다. 믿어보세요. 우리보다 우리의 글이 훨씬 더 지혜로우니까요.
그렇다면 과연 미로의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무시무시한 미노타우르스가 으르렁거리며 기다리고 있을까요? 안심해도 됩니다. 미노타우르스는 ‘글쓰기란 어렵다’는 현학적 작문을 이야기하는 이들이 만들어낸 환상의 생물에 불과하니까요. 그 험난했던 미로의 끝에 우리가 취할 수 있는 보상은 결국 하나의 목적성과 흐름을 타고 온 자신만의 글에 대한 ‘지도’입니다. 그 지도 덕분에 이제 앞으로는 비슷한 미로 속에서도 덜 헤맬 수 있게 되는 것이죠.
하지만 이러한 길 찾기에 대한 강박을 너무 지나치게 가질 필요는 없습니다. 여기까지 제 글을 따라오셨다면 약간은 배신감을 느끼실 수도 있겠지만, 사실 제가 좋아하는 글은 그 길에서 살짝 벗어난 글들이거든요. 앞의 내용을 소급해서 설명하자면, 미로의 벽을 마주할 때 길을 되돌아가는 방법도 있지만, 동시에 벽을 부수고 나아가는 방법도 있습니다. 벽을 뚫을만한 힘은 우리의 확신에 따라 달려있고, 독자는 우리(작가이자 동시에 영웅인) 뒤를 쫓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 길의 ‘옳음’을 그들에게 설명하고 제시해야 해요.
그렇기에 글쓰기의 출발은 바로 ‘용기’입니다. 내가 미로의 끝에 도달해 기어코 미노타우르스를 이겨낼 수 있다는 그러한 용기 말이에요. 그러니 자신을 믿고 아무 이야기나 한 줄만 써보세요. 아마 그 문장이 마법처럼 당신을 또 이끌 것이니까요. 흰색의 미궁이 당신의 놀이터가 될 때까지 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