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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꿈 Jul 09. 2022

‘붕괴'라는 키워드로 바라본 영화 <헤어질 결심>

위기의 시대, 사회자본이 중요한 이유

경제 위기에 대한 소식이 비단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최근 많은 경제 전문가들 사이에서 IMF시기보다 더한 장기 경기침체가 올 것이라는 어두운 전망이 무겁게 오가고 있다. 대통령선거와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이미 마무리되었지만 새 정부의 별다른 대안이 마련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사회적 불안감은 오히려 증폭되고 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최근 다시 주목받고 있는 책이 바로 러시아 출신 공학자 드미트리 오를로프가 쓴 <붕괴의 다섯 단계>이다. 저자는 해당 책을 통해 금융/상업/정치/사회/문화라는 유기적 관계들이 도미노 현상처럼 붕괴할 전조가 늘어가고 있다고 말한다. 2018년도에 나온 책이지만 지금 시점을 기준으로 돌아보면 꼭 관련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이 균열의 현상을 부정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러한 '붕괴'라는 키워드로 함께 살펴볼 영화가 있다. 바로 최근 개봉한 박찬욱 감독의 6년 만의 신작 <헤어질 결심>이다. 영화는 해준(박해일 분)과 서래(탕웨이 분)라는 두 주인공을 내세워 살인사건을 중심으로 맺어지는 개개인의 붕괴를 다룬다. 하지만 이 영화는 악의적 개인이 개입해 파국을 맞는 그러한 단순한 구조의 작품은 아니다. 주인공 해준은 스스로 인정하지 않을지 몰라도 이미 서래를 만나기 전부터 붕괴의 조짐이 있었다. 그는 자신의 현실 생활에 전혀 만족하지 못하고 있으며 유일하게 그가 생기가 돌 때는 살인 사건, 즉 죽은 자를 만날 때뿐이다. 애석하게도 그는 현실을 살아내기 위해 죽은 자를 쫓아야 하고, 반대로 산 사람들 사이에서 죽은 사람처럼 딱딱하고 건조하게 자리 잡은 인간이다.


그렇기에 서래를 만나 붕괴되었다는 해준의 고백은 일종의 핑계에 불과하다는 것을 관객은 알고 있다. 다만 그러한 해준의 붕괴 조짐에도 그의 아내와 동료들은 진정한 문제의 근원을 알지 못하고 전혀 다른 해결책을 제시하며, 기타 외적 요인들에 관심을 가질 뿐이다. 영화를 본 이들은 알 것이다. 몸이 허한 해준을 위해 마련한 '자라'라는 은유적 도구는 철저하게 아내를 중심으로 사용된다(그녀는 해준과 결별하며 다시 자라를 회수한다). 그래서 본격적인 그의 내면 붕괴가 일어날 때 해준이 지탱할 것이라고는 그저 그와 함께 붕괴되어 가는 서래뿐이었던 것이다.


다시 책 이야기로 돌아오자면, 책에서는 지금과 같은 총체적 붕괴의 근원적 요인으로 금융/상업/정치/사회/문화가 '바텀-업'으로 작용하는 것이 아닌 '탑-다운'적으로 기능하는 지배 구조를 꼽았다. 이를 통해 우리가 유추할 수 있는 것은 지금과 같은 위기의 시대에는 우리가 뿌리내리고 있는 생활 근간과 바탕을 다시금 탄탄히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그 무엇보다 '사회자본'일 것이다. 상호신뢰와 상호부조가 무너진 사회에서는 도미노처럼 연이어지는 붕괴를 막아낼 수 없다. 위기 앞에 우리는 그 옛날 홉스가 말했던 서로를 향한 투쟁상태로 회귀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럴 때는 효능을 알 수 없는 '자라'가 아닌 명확한 과학적 진단과 과감한 사전투자가 필요하다.


윤석열 정부는 출범 이후 경제운용을 민간, 기업, 시장 중심으로 전환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와 동시에 사회적경제 영역은 위기의식이 팽배해지고 있다. 사회적경제와 관련된 지원금이 줄거나 회수되어 사회 공공서비스 영역이 점차 민영화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그러나 앞서 살펴본 것처럼 지금과도 같은 위기를 앞둔 시대에는 시장 중심의 정책이 아닌, 오히려 협동조합을 비롯한 다양한 사회적경제 영역을 두텁게 해야 할 때이다. 경제를 손쉽게 시장에 맡기겠다는 정책은 다가오는 붕괴의 조짐을 전혀 알아채지 못한 안일한 대응이다. 오히려 사회, 문화 기반을 탄탄히 다져야 거대한 파도를 이겨낼 수 있는 방파제가 될 수 있다. 붕괴의 조짐을 잘못 읽고 엉뚱한 대안을 운운하면 이미 때는 늦어 버릴 수 있다는 것을 나는 <헤어질 결심> 속 해준을 통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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