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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꿈 Sep 04. 2023

10. 의식성에서 실천성으로의 전환(2)

행위의 습관화를 기르는 실천적 지혜

 다른 실천성의 예시를 살펴보기 전에 먼저 짚고 넘어가야  것이 있습니다.  챕터에서 언급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실천'에는  가지 층위적 의미가 존재하거든요. 혼동을 줄이기 위해 개념을 잠시 부연하도록 하겠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니코마코스 윤리학』 제6권의 말미인 제12장과 제13장에서 이론지성인 ‘소피아(sophia)’와 실천지성인 ‘프로네시스(phronesis)’의 관계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중 소피아는 행위함과는 무관한 ‘이론적 활동’을 의미하며, 프로네시스는 특정한 상황에서 공익을 위해 최선의 행동을 선택하는 ‘실천적 지혜’를 뜻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론(theoria)과 실천(praxis)을 서로 매개할 수 있는 것을 ‘프로네시스’로 보았습니다. 그는 이런 프로네시스를 “진실을 포착하는 결정적인 마음의 습관(hexis)”이라고 말했는데요, 또한 그것을 “선한 것을 목표로 적절하게 판단하고 행동하는 능력”이라고도 표현했습니다. 즉, 원칙을 다양한 상황에 맞게 판단하고 적용해서 행동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미로 저는 이해했어요.


이런 프로네시스는 변화하는 대상 세계를 경험하면서 이루어지는 이성적인 심의나 숙고와 관련된 활동 영역으로 생산물을 만들어내는 행위인 ‘포이에시스(poiesis)’와 윤리적 실천인 ‘프락시스(praxis)’로 다시 구분된다고 해요. 둘 다 실천과 행위라는 비슷한 개념으로 인식될 수 있으나 이를 구분하자면, 프락시스는 행함 그 자체가 목적인 행위이고 포이에시스는 어떤 목적을 성취하기 위한 행위이며, 목적에 관한 한 프락시스는 포이에시스의 최종 원인(final cause)이라 분리해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노르웨이의 철학자 군나르 시르베크는 ‘프락시스는 그 자체가 목적인 행위인 반면 포이에시스는 그 목적이 그 행위 자체와는 다른 어떤 것인 (특히 그 행위에 의해 창조되는 새로운 것인) 행위를 뜻한다’ 고도 설명했죠. 그래서 이후에는 포이에시스(making)가 어떤 목적을 이루는 행위인 반면 프락시스는 ‘이유 없음(without why)’으로 이해되는 행위라는 여러 학자들의 의견에 따라 실천적/행위적 의미를 프락시스로 인식하고 설명을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다시 실천성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해볼까요?


파울로 프레이리브라질의 교육 사상가인 파울로 프레이리


교육학 내에서도 실천교육에 대한 요청은 지속적으로 이루어져 왔습니다. 브라질의 교육 사상가인 파울로 프레이리(Freire)는 그의 저서 『페다고지 Pedagogy』를 통해 전통적인 교육방식의 억압구조를 학습자의 주체적인 자각을 통해 실천적 앎으로 전 환해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또한 그는 “억눌린 자들은 해방은 우연히 얻는 것이 아니다. 오직 인간해방을 추구하는 그들의 실천(praxis)을 통해서, 또한 이 해방을 쟁취하기 위해 투쟁할 필요성을 인식하는 억눌린 자들의 깨달음을 통해서 쟁취하게 된다”라고 말했죠. 이처럼 프레이리는 실천과 깨달음이 인간 해방으로 가는 구체적인 길임을 강조했습니다.


물론 더 자세히 이야기해보면 프레이리의 프락시스는 앞서 언급한 아리스토텔레스의 프락시스 개념과 아주 동일하다고는 볼 수는 없어요. 그가 말하는 프락시스는 ‘말과 행동이 일치되는 사고와 행동의 총합’에 더 가깝거든요. 프레이리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프락시스의 개념을 역사적 맥락 안에서 재해석하고 현실과 투쟁하는 맑시즘과 접목시켜 ‘역사적 프락시스’로 발전시켜 사용한 것입니다. 실제로 프레이리는 성찰이 없이 행동만 앞설 경우에는 ‘행동주의’로, 실천이 없이 인식만 있을 때에는 ‘탁상공론’이 될 우려가 있다고 지적하며 성찰(이론)과 실천의 통합적 영역에서의 균형감을 강조하였습니다. 그러나 프레이리의 프락시스 이론이 기존의 관념적인 교육학에서 벗어나 학습자의 주체적 실천을 핵심적으로 논의한 것만큼은 틀림이 없습니다.


또한 1980년대부터 포스트모더니즘을 비롯한 다양한 노선의 사회철학적 접근 영향 하에 교육철학의 성격을 새롭게 규정하려는 흐름이 있어 왔습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교육철학을 ‘이론철학(theoretical philosophy)’이 아니라 ‘실천철학(practical philosophy)’으로 재정의하며 교육 실천을 강조한 움직임들입니다.


그중 카(Carr)는 이제까지 교육 현실을 지배해 온 교육의 개념은 하나의 ‘실천(a practice)’으로서의 교육이 아니라 근대적 제도 혹은 하나의 ‘체제 (a system)’로서의 교육이며, 여기에서 교육실천가들인 교사들은 학교 교육을 통해 재생산되는 이러한 체제로서의 교육의 효율성을 높이는 일에 공헌하도록 요구되어 왔다며 기존의 교육 방법론을 비판하였습니다. 그는 교육철학의 학문적 전통을 새롭게 해석하며 아리스토텔레스의 포이에시스의 개념에 기초한 실천철학으로서의 교육철학을 정립하고자 하였습니다.


이러한 실천적 지식은 아리스토텔레스의 구분에서 보듯이 이론적 지식에서 파생되거나 그것의 단순한 적용이 아니었죠. 실천적 지식이란 실천 ‘안에서’, 그 실천을 ‘위하여’ 작용하는 지적 숙고와 성찰로서 그 실천을 ‘통하여’ 성취되는 것이죠.


이상과도 같이 아리스토텔레스나 프레이리, 카가 말하는 ‘도덕적 행위자’를 위한 교육은 말을 통한 지식 전수 형태의 가르침(teaching)이 아닙니다. 물론 전통적 지식의 전수 방식이 전적으로 옳지 않은 교육 형태라 치부할 수는 없죠. 인식 영역에 있는 학문은 가르침을 통해 배울 수 있는 종류들입니다.


그러나 도덕적 행위자가 되는 것은 학문적 인식을 통한 것이 아니라 프로네시스라는 실천적인 지혜가 필요한 것이고, 도덕적 품성 상태가 길러져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말을 통한 가르침으로는 도덕적 행위자를 길러내기는 어렵다는 의미입이다. 그래서 교수자는 개별적으로 부여된 상황 속에서 학습자가 직접 행동을 해보도록 하고 이러한 행동이 습관화되도록 안내해야 할 것입니다.


해당 의견은 현재의 세계시민교육 커리큘럼 안에서 동일한 맥락으로 받아들일 수 있으며, 실천의 습관화를 강조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덕 윤리학과 프레이리와 카가 언급한 학습자 주도적인 실천교육학은 도덕적 지식이 나열되어 전달되는 경향이 있는 현재의 세계시민교육 방법론에 주는 시사점이 적지 않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실천을 위해 전제되어야 할 고려사항이 있습니다. 덕성의 개념은 지속적인 습관 형성을 통해 체화되고 내면화되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자신과 다른 의견을 가진 타자를 이해하고 자신의 입장을 성찰할 수 있는 계기인 타자와의 만남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만남을 통해 인지적이고 정서적인 태도 변화의 경험이 가능한 것이죠. 이런 만남과 관계는 이론적으로 설명하기는 무척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이론은 그것이 암묵적이든 명시적이든 간에 언제나 일련의 일반적 신념인데 반해 실천은 항상 특수한 상황에서 행동을 수행하는 것과 관련되기 때문입니다. 이에 특수성의 개념을 동일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다음 챕터에는 이러한 ‘특수성’에 대해 좀 더 이야기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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