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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람람 Oct 21. 2024

옆에 있어주는 것

저번주 주말에 고등학교 친구 결혼식을 가다가 강남 한복판에서 교통사고를 당했다. 큰 사고는 아니었고, 사실 부딪힌 지도 몰랐는데 상대방이 계속 쫓아오길래 갓길에 차를 대고 확인해 보니 뒷 문이 꽤 많이 긁혀 있었다. 문제는 두 차 모두 블랙박스가 없는 상태였고, 내 기억으로는 내가 2차선에서 3차선으로 차선 변경을 하고 있을 때 상대방이 뒤에서 1차선에서 2차선으로 차선변경을 하면서 나와 부딪힌 상황이었는데, 상대방은 내가 3차선에서 2차선으로 차선변경을 하는 상황이었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그럼 과실 비중이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에 억울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내 보험회사는 출동은 빨랐지만 내 말보다는 상대방 진술이 더 그럴 듯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고, 두 차 모두 블랙박스가 없어서 진술만 의존해서 보고서를 작성해야 한다는 말만 되풀이 하는 중이었다.


CCTV를 확인하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출동한 보험회사 직원에게 물으니 강남경찰서로 가야한다고 해서 도착했더니, 경찰서에서는 사고 현장 주변에 있는 CCTV 를 관할 하는 지구대로 가야한다고 알려줬다. 그날 삼성, LG 플옵 마지막 경기가 있는 날이라 잠실운동장 건너편인 강남경찰서까지 응원소리가 귀청이 떨어질 듯이 크게 들렸는데, 더불어 막히는 길 속에서 사고난 차를 끌고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하랴 정신이 혼미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이미 결혼식 참석은 한참 물 건너 갔고, 결혼식에서 만나기로 한 친한 친구에게 도착했는지 연락이 와서 교통사고가 나서 못 갈 것 같아 얼굴은 못보겠다고 아쉽다고 카톡을 보냈는데, 지금 어디냐고 연락이 왔다. 그날 결혼식에서 만나자고 연락한 친구들은 몇 명 있었는데, 사고가 났다고 하니 거기로 갈지 바로 물어봐주는 친구는 그 친구 밖에 없었어서 무한 감동을 먹었다. 물론 사고 처리는 혼자 해결 해야하는 일들이지만, 가능하면 와줄 수 있는지 물어보았다. 경찰서 앞에서 친구를 기다리는데, 원래 얌전하고 뛰는 것을 거의 본 적이 없는 친구인데 저 멀리서 뛰어 오는 모습을 보니 고마워져 울컥하는 기분이 들었다.


친구를 옆자리에 모시고 역삼지구대로 향했는데 오늘은 주말이라 CCTV 확인은 불가능하고 신청서는 작성 가능하며, 월요일이 되면 담당자에게 연락이 올 것이라고 알려주었다. 친구는 강남에서 본가인 파주로 가는 길이었어서 데려다 주겠다고 했지만 한사코 거절해서 파주로 가는 버스가 오는 논현역 앞에서 친구를 내려주고 아쉽지만 작별인사를 고했다. 첫 사고라 당황스럽기도 하고 해결된 것은 없었지만 강남에서 인천까지 돌아오는 길이 생각보다 힘들지는 않았다. 이전에 '같이 외로움' 이라는 글에서, 비가 올때 우산을 건네 주는 것보다 비를 같이 맞아 주는 것이 가장 큰 위로가 된다는 '담론' 이라는 책에서의 고 신영복 선생님의 문장을 소개한 적이 있는데, 그걸 직접 몸소 체험한 날이었다.


집에 돌아와 곰곰히 생각해 보니 인생에 그런 고난의 순간들이 있을 때, 결정적인 순간마다 날 찾아와 주었던 친구들이 있었다. 전 남자친구한테 헤어지고 다시 연락 했다가 바로 까여서 친구에게 전화해 펑펑 우니 친구가 나를 끌고 강릉 여행을 같이 가준 적이 있었다. 국시를 쫄딱 망치고 정신이 혼미해져 있는데, 친구 2명이 찾아와서 제정신 아닌 나를 밥먹이고 기숙사 방 짐들도 모두 정리하고 빼주었던 적도 있었다. 내가 위기의 순간들일 때는 항상 그들이 옆에 있어 줬는데, 나는 그들의 위기 상황 속에서 옆에 있어준 적이 있었는지 되돌아 보니 그러지 못했던 것 같다. 하지만 내가 그 옆에 있어줌을 받아들인 것만으로도 나와 그들의 관계는 훨씬 돈독해 질 수 있었고, 지금까지 친분을 유지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옆에 있어주기를 제안하는 마음과 이를 거절하지 않고 수용하는 마음이 맞닿으면 모든 관계는 더 깊고 감사하는 관계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한걸음 더 나아가 내가 언젠가 그들 옆에 또 서 있을 수 있게 된다면, 그 관계는 또 얼마나 깊은 유대 관계로 이어질 수 있을지 많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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