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중에 계엄령이 떨어지고 국회에서 계엄령 해제 요구안이 가결될 때까지 긴장감이 너무 심해 자고 일어나니 어깨와 목이 뻐근했다. 새벽 3시가 넘어 잠이 들었는데, 퇴근 시간인 오전 7시가 조금 넘어 눈이 저절로 떠졌고 인터넷 포털사이트 뉴스를 보니 대통령이 계엄령 해제를 선언했다는 기사가 올라 왔다. 아침 퇴근길에 전날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출근 및 등교를 하느라 바쁜 사람들의 발걸음이 보였다. 집에 돌아와 침대에 가만히 앉아 있는데, 계엄령 해제가 되지 않았다면 '처단' 대상이 될 수도 있었다는 생각에 등골이 오싹했다. 더불어 울적한 기분이 들어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우울한 기분을 낫게 해주려면 음식을 잘 해먹어야 한다. 양배추를 썰고 식초와 소금을 넣어 깨소금, 마늘까지 뿌려 양배추 무침을 만들었다. 시장에서 5천원 주고 싸게 산 돼지고기 전지 일부를 잘게 썰고, 양파, 대파, 감자를 썰어 된장국을 만들었다. 마지막으로 두부를 꺼내 일부는 된장국에 넣고, 일부는 구워서 두부구이를 하였다. 3첩 반상이라니 1인 가구에게는 흔치 않은 일이다. 피곤했고 지친 기분이 들었지만 놀란 나의 마음을 추스리고 위로 해주고 싶었다. 요즘 나의 목표 중 하나는 음식을 꼭꼭 씹어 천천히 먹는 것이다. 병원에서 수술 중간 중간 비는 짧은 시간동안 식사를 하는 것이 버릇이 되어 나의 점심 식사는 빠르면 2분, 느리면 5분 내로 끝나고는 했다. 덕분에 술, 담배도 잘 하지 않는데 역류성식도염을 달고 살았다. 이제 그렇게 급하게 먹을 필요가 없으니 천천히 먹는 것을 습관으로 하기로 했다. 15분 동안 먹는 것이 목표인데 오늘은 10분이 걸렸다. 아직 좀 더 천천히 먹는 것을 연습해야겠다.
어제 대통령 브리핑과 계엄사령부 포고령으로 인해 폭발하던 카톡창은 잠잠해졌고, '꿈꾼 것 같다. 일어나니 어제랑 그대로야.'라는 친구들의 대화가 보였다. 신경외과에서 일하는 친구는 전일 새벽 4시 까지 뜬 눈으로 밤새우다 주사 맞으러 병원에 와서 자는 환자들이 많이 있었다고 한다. 밥을 먹고 부모님께 전화를 드리니 두분 다 대통령이 계엄령 해제 발표를 하기 전까지 주무시지 못했다고 한다. 괜히 사직 전공의의 부모라는 이유 만으로 두 분께 큰 염려를 끼쳐 잠도 못 이루게 한것 같아 불효녀가 된 기분이었다. '다들 살아야 하니 어쩔 수 없이 오늘의 일상을 살아내지만 많은 걱정으로 잠 못 이룬 하루였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밥을 많이 먹고 배가 부른 상태에서 책을 읽다가 땅바닥에서 스르르 잠이 들었다. 몇 시간이 지났을까, 핸드폰은 오후 4시를 알리고 있었고 운동 유투브 영상을 따라 덤벨 운동을 하고 저녁 약속이 있어 밖으로 나갔다. 기온이 많이 차고 추워 엘리베이터를 타고 다시 올라가 롱패딩을 껴입고 밖으로 나왔다. 지금은 2차병원에서 일하시는, 이전 병원에서 같이 일하던 외과 선생님과 식사를 했는데 전일 거의 잠을 주무시지 못하셨는지 두 눈이 빨갛게 충혈되어 있으셨다. 나라에 대한 걱정과 의료 현장과 사직 전공의들에 대한 걱정, 전날 있었던 일이 현실이 맞는지에 대한 의문 등등 여러 이야기를 나누고 헤어졌다. 집에 돌아오니 전일 계엄령이 선포된 오후 10시 반이었고, 전날과는 매우 다른 기분이 들었다.
이전 글의 제목과 같이 한 달 동안은 불안감이 지속된 나날이었고, 전날은 두려움과 긴장감이 온몸을 휩쓸었다. 오늘은 계엄령이 해제된 후 밀려 온 안도감과 함께 허탈한 기분이 들었다. 나의 상황이 누군가의 말 한마디로 바닥으로 떨어졌다 다시 올라갈 수도 있다는 생각에 무력감이 들기도 한다. 앞으로 또 어떤 일이 일어날 지 한치 앞도 예상할 수가 없다. 한시적이었지만 누군가에게 '처단'할 대상이 된다는 것은 큰 공포감으로 다가왔다. 나의 두려움이 나와 다른 상황인 타인에 대한 공격으로 삐뚤어지지 않고 같은 처지의 누군가에게 위로를 건넬 수 있는 동기가 되길 바란다.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했듯 또 일상을 살아내야지. 그러면서 상처받고 놀랐을 서로를 보듬어 주고 위로 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