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력함

by 람람

한동안 글을 쓸 의욕이 사라지고, 계획을 짜거나 어떤 일을 시작할 마음도 없어져서 어떤 것 때문일까 고민이 들었다. 가끔은 그 답이 생리적인 이유일 때도 있다. 인간이기에, 호르몬의 노예이기 때문에 쳐지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너무 오랜 시간 그런 기분에 사로 잡혀 있었기에 그 때문만은 아닌 듯 하였다. 또는 시기적인 이유로, 연말인데 내가 이루어 낸 일이 많지 않아서 그런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기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올해 내내 괜찮았는데 갑자기 12월에만 이런다는 것이 이상했다. 유투브만 한없이 들여다 보며 먹방 채널만 주구장창 보다가 어느 순간 그 원인을 깨달았다. 나는 사람에게 실망하거나 더 이상 타인에게 기대할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면 무기력함을 느끼게 된다.


2달 전 쯤에 의국 내에 어떤 교수님이 자기 대신에 단기 해외 봉사 활동에 참가하고 싶은 사직 전공의가 있는지 물어보았다. 학부 때 요르단에 있는 시리아 난민 캠프에서 단기 의료 선교를 갔던 경험이 있고, 나중에도 꼭 의료 선교를 지속하고 싶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기에 이렇게 일하지 않는 지금이 봉사를 가기에 최적의 시간이라고 생각이 들어 연락을 드렸다. 사실 다른 동기들은 이 시기에 무슨 의료 봉사냐며 교수님을 이상하게 생각하는 분위기가 대다수였기에, 이를 신청하는 내가 이상한 건지 잠시 고민했지만,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하여 자원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 이후, 봉사 활동에 대해 인계를 받게 되었는데 그때 하신 이야기가 나에게는 조금 상처가 되는 이야기 였다.


교수님은 한참을 본인 이야기를 늘어 놓으신 후, '지금 너한테 이 인계들을 하는건 내가 더 이상 여기 단체의 봉사활동에 참여하고 싶지 않아서 그런 것이다.', '너도 여기서 빠져 나가려면 다른 전공의들을 내가 너한테 했던 것처럼 꼬셔서 여기 데려다 놓고 불참해라.' 등의 뉘앙스로 말씀하셨다. 나로서는 굉장히 용기를 갖고 심지어 100만원 이상의 거액을 들여 참가하는 봉사였기에 이런식으로 말씀하시는 것이 기분이 나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 교수님이 그런 생각으로 전공의를 부른 것을 대충 예상하고 있었기 때문에 표면적으로는 웃으면서 어떤 뜻인지 알고 있다고 수긍하듯 대답했다. 그러면서 처음에 자원하게 되었던 나의 동기는 사라지고 이 단체에 발목 잡히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래서 그 이후에 참여하게 된 봉사활동 전 모임들에서도 편한 마음으로 같은 팀원들을 대하는 것이 아니라 이번 봉사활동에만 잠깐 만나게 될 사람들이라는 생각으로 사람들을 대하게 되었다.


또한 교수님을 대신해서 하게 된 물품 지원 요청 등의 일들이 잘 진행이 되지 않았고, 봉사활동 센터의 사무국장을 통해서도 질책 아닌 질책 같은 뉘앙스로 연락을 받게 되어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러면서 더욱 내가 할 활동에 대한 기대감이나 설렘은 점차 없어졌다. 다른 팀원들은 지원 받지 못한 물품들을 대신할 다른 물품들을 다른 회사에서 지원받을 수 있는지 등등 여러가지를 알아 보고 있었다. 나는 그것들을 지켜보고 겉으로는 응원하며 나 또한 다른 도움이 되는 일들을 할 것 같이 이야기 했지만, 사실은 앞으로 행할 봉사활동에 대한 기대가 거의 사라진 상태였다.


하지만 교수님이 아무리 그런식으로 이야기를 한다고 했더라도, 내가 하는 일에 대한 결과나 그 가치는 내가 결정하는 것이다. 그 행위에 얼마나 열정적으로 참여하고 실천할 것인지 고민하며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나의 몫이다. 누군가가 이제는 자신에게 필요없는 일이라고 떠넘기는 일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을 어떻게 생각하고 사용할지는 나의 생각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라는 것을 잊지 않길 바란다. 무엇보다도 타인에 대한 실망을 나에 대한 실망으로 까지 이어지지 않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올 한해도 얼마 남지 않은 12월 중순의 한겨울이다. 타인이 한말에 휘둘린 채로 무기력하게 이 날들을 보내기 보다는 내가 앞으로 그려갈 일들이 어떨지 기대하며 무기력의 늪에서 벗어나 한발짝 걸어 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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