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되면 항상 생각나는 날이 있다. 오랫동안 너를 그리다 마주한 날. 너는 해맑게 웃으며 케잌을 내밀었고 "늦었지만 생일 축하해." 라고 이야기 했다. 아닌가, 다른 말들이었나. 이제는 10년도 넘어버린 그 시간의 장면들이 파편만 떠오른다. 추운 날씨보다 따뜻했고 핫팩이 따로 필요 없던 네 손의 온도만 기억에 남아있다. 너는 그 날 네가 아끼는 브로그가 있는 구두를 신고 왔다. 성실한 너가 학교 수업을 빼먹을 리가 없는데 수업을 째고 대구에서 와서 나를 마중 나왔다는 사실이 정말 고마웠다. 나는 그 이후로 누군가에게 그런 사랑을 전달하려고 한 적은 있었지만 그만큼의 사랑을 받은 기억은 없다. 너가 나에게 주었던 추억들이 너무 깊게 남아서 다른 이가 전해 주는 온기가 크게 와닿지 못했던 것 같다.
너의 플레이리스트 속에 있던 김동률의 'replay'를 헤어진 뒤 반복해서 들었다.
[짧았던 우리 기억에 나의 바람들이 더해져, 막 뒤엉켜지지]
내 뇌는 오랜 시간동안 같은 장면을 반복하면서 기억을 왜곡하기도 하고 편집시키기도 하면서 그날의 추억들을 되새겼다. 몇 년 간은 그 과정을 무의식적으로 행했고, 그럴수록 돌아올 수 없는 시간에 대한 상처가 깊어졌다. 오랜시간 의식적으로 잊으려고 노력하기도 하였고, 시간이 약이 되어 이제는 점차 그 때를 떠올려도 무덤덤해질 수 있게 되었다.
그래도 누군가가 수능이야기를 하면 저절로 그 날이 떠오른다. 전날 꼴딱 밤을 새고 하나님, 부처님, 알라신, 조상신 모든 신들에게 기도를 하였던 점심시간과 제대로 밥도 먹지 못하고 치뤘던 영어 시험 시간, 그리고 마지막 과학 탐구 시험 까지. 끝내고 나오니 동생이 교문에서 날 기다리고 있었다. 집에서 거리가 있던 고사장이라 기진맥진 해진 채로 집에 돌아왔다. 어머니는 하루종일 산 속의 절에서 열심히 기도하다 하산하는 중이었고, 아버지도 회사에서 근무하면서도 온 신경은 나의 수능에 쏠려 양 어깨에 긴장이 뭉쳐 풀리지 않았다고 했다. 동생은 너에게 한번 연락해보지 않겠냐고 물어보았고 그제서야 나의 수능 준비로 반년간 연인의 얼굴 한번도 보지 못했던 너가 생각났다.
통화 수신 벨소리가 그리 길지 않게 울렸고 너는 기다렸다는 듯 연락을 받았다. 너는 나의 예전에 살던 집주소만 알고 있었기에 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고 했다. 너무 지쳐서 그곳으로 갈수는 없어 현재 집의 주소를 다시 알려주었고 금새 그 앞으로 도착한 너를 아파트 복도 창문을 통해 바로 찾아 냈던 그 시간을 기억한다. 내가 '다시 수능 준비해야할 것 같다.' 라고 할까봐 너무 걱정했다고 하던 투정 어린 너의 말까지도. 또 다시 한동안 수시 논술 준비로 서울로 상경한 나와 그걸 기다려 준 너. 오랜 시간 기다려준 너에게 나는 어떤 존재였을까. 재회한 지 1년도 되지 않아 우리는 헤어졌고, 너에게 대한 감사함과 나의 행동에 대한 후회들 덕분에 나는 너를 만난 시간 보다 훨씬 오래 너를 기억하게 되었다.
이제는 너무 오랜 시간 떨어져 너가 어떤 사람인지 알수도 없게 되었고, 너가 나에 대한 어떤 생각이 남아 있을지 추측할 수도 없게 되었다. 내가 10년간 많이 변했듯 너 역시 그렇겠지. 영영 다른 길을 걷고 있는 너에게, 항상 너의 앞에 행복이 가득하길 바라는 기도를 하곤해. 건강하고 행복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