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 다이어리

by 람람

어제 또 교통사고가 났다. 작년 4월에 '주차 중'에 사고, 작년 10월에 '운전 중'에 사고, 올해 연초부터 '주차 차량을 빼면서 생긴 사고' 해서 모두 3 콤보로 사고가 발생했다. 어렸을 적 10살에 보행 중에 차량과 부딪힌 것 까지 합하면 살면서 각양각색의 교통사고는 다 겪은 것 같다. 차주가 아버지 이름으로 되어 있어 사고 관련해서 아버지께도 연락이 갔는데 놀란 마음을 추스리시느라 그런건지, 이제는 그럴 기력도 없으신지 화는 내지 않으시고 "너는 이걸 꼭 다 겪어봐야 아니.."라고 하셨다. 어렸을 적 아빠가 내게 꾸중하실 때 항상 하는 말씀이셨다. 태어났을 때 부터 완벽하신 아빠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나는 항상 겪어 봐야 잘못된 것을 알거나 깨달음을 얻었다.


얼마 전에 유투브에서 한 부부가 서로의 '실패 다이어리'를 작성하고 공유하는 내용을 보았다. '성공도 아니고 실패 다이어리라니 적으면서 우울해 지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미 지나간 일이라서 그런지 즐겁고 유쾌하게 실패한 과거를 나누는 그들의 모습에서 여유가 느껴졌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실패를 기록하지 않으면 그 다음의 발전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나처럼 경험해 보지 않고는 교훈을 얻지 못하는 사람일수록 말이다.


일단 실패는 어떤 걸까? 무언가를 이루고자 했는데 좌절했던 경험들일 것이다. 어렸을 적 내가 겪은 실패는 주로 성적에 관련된 실패였다. 자신있던 수학 시험 때 마지막에 답을 고쳐서 90점을 맞아서 운 기억, 가창시험 때 삑사리가 나서 수행평가 c를 맞은 기억, 과학 시험 때 85점을 맞아서 엄마한테 회초리를 맞았던 기억 등이 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 사소한 실패들에 왜 그렇게 분해하고 속상해 했었는지 모르겠다. 그런 자잘한 실패들 덕분인지는 모르겠지만 최상위권 성적은 아니었음에도 수학특기자 전형으로 가고 싶었던 고등학교에 갈 수 있었다.


고등학교 때는 똑똑한 친구들 사이에서 기를 쓰고 공부해도 모자랄 판에 그렇게 열정적으로 공부하지는 않았어서 내신은 중간 이상의 성적을 받은 적이 한번도 없었다. 성적으로 무언가를 이루고자하는 마음도 없어진 상태였기 때문에 그 때 겪은 일들은 실패라고 이야기 하기에도 애매한 점이 있다. 그러나 수능은 얘기가 좀 달랐다.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의 생활기록부를 살펴본 적이 있는데, 장래희망 칸에 나나 부모님이나 모두 동일하게 단 한번도 바뀌지 않고 '의사' 라는 단어가 적혀 있는 것을 보고 이건 이쯤 되면 광기 같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어렸을 적부터 무슨 생각으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하여튼 거의 맹목적으로 의사가 되고 싶어 했기 때문에 의대가 아닌 곳은 단 한번도 생각한 적이 없었다.


첫 수능은 내 기억으로 고려대 보건과학대학 까지는 들어갈 수 있는 성적이 나왔는데, 그 정도 성적이면 나쁘지 않았지만 스스로에 대한 주제 파악이 덜 된 상태였다.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해 가출도 하고 혼자 서울로 올라와서 재수학원을 돌아다니며 상담을 받은 적이 있었다. 결과적으로 하루만에 다시 집에 돌아가 부모님 앞에서 무릎꿇고 죄송하다고 빌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는 내 성적이나 공부 상태를 돌아볼 생각 없이 재수를 위해 강남대성학원에 바로 들어갔다. 그 때 나는 의대를 들어간다는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감정적인 좌절감은 컸지만 그 상태를 '실패'한 것으로 인지하며 나를 돌아볼 생각은 하지 못했다.


실패를 인지 하지 못하고 준비한 시험은 더 큰 실패로 돌아온다는 것을 재수를 마치고 깨달았다. 결론적으로는 현역 때 친 수능보다 성적은 좋지 못했고, 간신히 한의대에 진학했다. 한의대 공부는 사실 재미있었고 흥미로운 점도 많았지만 대학생활을 하다 보니 정말 하고 싶은 것을 이루어야 겠다는 생각이 강해져서 휴학이 아니라 아예 자퇴를 하고 삼반수를 시작했다. '실패'를 인지하고 준비하는 시험은 조금 달랐다. 그동안 내 문제풀이 과정에서 어떤 부분에 문제가 있었는지 고민하면서 공부하니 빠짐없이 머리속을 채운 채로 시험에 응시할 수 있었고 운이 좋게 수능은 2번의 실패로 끝날 수 있었다.


서문을 차 사고라는 3번의 실패로 문을 열었는데, 사실 운전 미숙의 징조는 운전 면허를 딸 때 부터 있었다. 아버지의 부추김으로 대학 새내기 였을 때 2종이 아닌 1종 보통 면허를 준비했는데, 그때도 수능과 마찬가지로 2번의 실패를 겪고야 면허를 딸 수 있었다. 덕분에 시험 준비만으로 100만원이 넘는 돈을 소비했고, 10년간의 장롱면허로 운전면허를 명맥만 지켜왔다. 지금의 차 사고들이 그 때 제대로 인지 하지 못한 '실패'의 여파가 아닌가 생각이 든다.


의대 진학 후에는 사실 성형외과 전문의만 되면 된다는 생각에 학점을 열심히 챙기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때도 학점이 좋지 않으면 국가고시 성적이라도 좋아야 성형외과를 지원할 수가 있는데, 국시에 정말 대 '실패'를 했다. 국시 직전에 연애하던 사람과 헤어지면서 그로 인한 후유증도 있었고, 시험 자체에 대한 불안감도 겹쳐서 정말 생각지도 못한 성적을 받았다. 처참한 시험성적을 가지고 인턴으로 지원한 병원에서도 떨어질까 조마조마한 마음이 있었는데 다행히 붙었다. 인턴 과정은 정말 재밌었고, 운이 좋게 쉬운 파트들만 맡게 되어서 전공의 시험 준비는 국시 준비보다 꼼꼼하게 할 수 있었고, 훌륭한 성적은 아니지만 성형외과에 합격할 정도로는 성적을 받을 수 있었다.


성형외과 전공의가 이후로는 일에 대해서 매번 실패하는 삶을 살았던 것 같다. 시니어나 교수님들 오더 수행하는 것만으로도 매일을 허덕였고, 환자한테도 같이 일하는 선후배나 교수님들에게도 신뢰를 주지 못했다. 비몽사몽으로 지내던 1년차 때에는 큰 사고 없이 넘어갔지만, 2년차 때 처방 오류로 인해 큰 실수를 저지른 적이 있어 이 직업이 나랑 맞는 직업이 맞는지 오래 고민했던 적이 있다. 다신 그런 사고가 되풀이 되지 않도록 처방과 차팅에 있어서는 훨씬 더 꼼꼼하게 수행하게 되었지만, 의료 현장에서의 실패는 정말 큰 사고로 되돌아 올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날들이었다.


돌아보니 부끄러운 날들이 참 많았지만, '실패'를 깨닫고는 같은 행위를 더 반복하지는 않았구나 생각이 들어 이번 사고에 대해서도 후회는 되지만 한편으로는 안심이 된다. 나도 실패 없이 성공하는 완벽한 사람이고 싶지만, 이런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그건 참 어려운 일이다. 위에 사례들 이외에도 내 삶에서는 알게 모르게 여러 실패들이 지나갔을 것이고, 그 실패를 인지하고 뒤따른 성찰이 모여 지금의 내가 만들어졌다. 한편으로는 내가 적극적으로 시도한 것들이 많지 않아 그만큼 실패가 적었던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앞으로 나는 또 어떤 실패를 할까? 실패로 인해 좌절감이 들고 움츠러 들어도 꺾이지 않고 다시 걸어나갈 수 있는 당당한 마음이 생겨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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