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총의 '듣기의 말들'을 읽고
나는 5살 때까지 말을 못했다. 엄마는 아이가 언어 장애가 있는지 의심해 가까운 소아과에 데려가기도 했다. 의사 선생님은 특별히 문제가 없다고 했다. 말을 하기 싫어서 하지 않는 것이라고. 그러다 어느 날부터 간판을 읽으면서 말이 트였다. 읽기와 말하기를 같이 시작 하면서 첫째 아이가 바보는 아닌 것 같아 엄마는 한시름 놨다. 말하기를 거부하던 나는 어떤 세상 속에 있었을까. 주변의 여러 이야기들을 흡수하고 있었겠지. 엄마의 말과 할머니의 이야기, 그리고 여러 동화책의 속삭임을 들으며 지금보다 많은 것들을 듣고 있던 모습이 그려진다.
말문이 트이면서 아는 것을 뽐내기 좋아하는 아이가 되었다. 발표 시간이 되면 맨 먼저 손을 들어 단상으로 뛰쳐 나갔다.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아는 내용과 다른 이야기를 하면 참지 않고 지적해 주의를 요하는 학생이 되었다. 직업을 가진 후에는 별 볼일 없는 실력을 감추려는 듯 변변찮은 지식을 알릴 수 있는 기회가 생기면 늘어놓으려고 애썼다. 그렇게 하면 조금이라도 내 존재감이 드러날까 싶어서. 오죽하면 교수님이 ‘람람이는 성형외과 지식 빼고 다른 것들은 다 아네.’ 라고 하셨을까.
작년 2월에 전공의 근무 중단으로 병원을 나온 뒤로 이와 관련한 뉴스의 댓글창에 욕설이 가득한 것을 보았다. 의대 증원 정책에 어떤 문제가 있고 왜 우리가 병원을 나오게 되었는지, 이제 어떤 말을 해도 사람들은 듣지 않겠구나 싶었다. 의사가 아닌 사람들과 대화할 공간이 생기면 직업을 숨기거나 말을 줄였다.
새로 찾은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목장 나눔 시간에 처음 참석해 입을 닫고 있었다. 말을 아끼니 사람들의 이야기가 들렸다. 어쩌면 수술방에서 교수님들과 선배들이 시시덕 거리며 하는 '새로 나온 벤츠 신상'에 대한 이야기나 '서울의 어느 지역 부동산이 시세가 올랐다더라' 하는 말들이 아니어서 흥미로웠는지 모르겠다. 당시 주 이슈였던 ‘필리핀인 가사도우미’ 에서 대화가 번져 가사도우미에 대한 태도에 관한 논쟁으로 이어졌다. 인권에 대한 고민과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현실적인 상황이 충돌했다. ‘돌봄’에 대한 여성 인권적인 차원에서의 해석까지 뻗어 갔다. 귀 기울이며 그 주제에 대해 다양한 방향으로 고심할 수 있었다.
생산적인 고민을 하는 또래 친구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후, 매주 시간이 허락하는 한 빠지지 않고 차로 1시간 거리인 교회에 출석했다. 듣고만 있어도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깨달았다. 운이 좋게 같은 목장에 의료계 종사자들이 있었고 의료 보험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자매님도 있었다. 그들은 내 상황을 이해했고 내 생각을 궁금해 했다. 듣는 사람들이 있다는 편안함 속에 이야기를 하나 둘 씩 꺼내놓았다. 병원을 나오게 된 이야기부터 교회 안에서 나의 고민, 성소수자들에 대한 생각 들을 조금씩 펼쳐 놓을 수 있었다.
목장 나눔 후에 한 형제님이 ‘람람님은 사람 말을 잘 들어주네요.’ 라고 했다. 성인이 되어 오랜만에 듣는 칭찬이었다. 뿌듯함보다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원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걸 스스로 잘 알기 때문이다. 가까운 주변 사람의 이야기는 잘 듣고 있는지 돌아보았다. 엄마나 아빠, 동생의 이야기를. 부모님의 말을 듣는 것은 그나마 쉽지만 동생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는 것은 어렵다. 계속해서 시덥잖은 조언이 입에서 튀어나온다. 동생도 어엿한 성인이고 결혼도 했으니 어느 면에 있어서 훨씬 인생 선배인데 아직까지도 내 눈에는 동그란 얼굴에 눈을 찡긋 거리며 웃는 5살 아기같다.
들어 주는 것은 결국 기다리는 것이라는 책 속 문장이 기억에 남는다. 사람의 짐을 나누어 들어 주는 것은 어렵다. 상대방이 원하지 않을 수도 있고 그가 성장할 기회를 빼앗는 일이 될 수도 있다. 진 짐을 효율적으로 짊어지라고 훈계하기 보다는 ‘참 무거웠겠다.’ 라고 위로해주거나, 별거 아닌 짐이라면 ‘괜찮아. 나도 그랬어.’ 라며 안심시켜주고 싶다. 우리에게는 조금 다른 '들어 줌'이 필요하다. 사람들이 열린 귀 앞에서 편안한 마음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펼쳐 놓을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