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넷(Hamnet), 2025, 자오팅(Zhào Tíng)
https://youtu.be/_Gd96mSMHfI?si=KLTyD46Ro1YZd1rc
오랜만에 개봉 전 부터 기다리던 영화가 있었다. 최근에 만났던 여러 영화들과 다르게 기대치를 100퍼센트 충족 시켜주었다. 영화를 기다린 이유는 위의 음악을 커다란 스크린 앞에서 다시 듣고 싶었던 마음이 컸다. 컨택트(Arrival, 2016, 드니 빌뇌브)에서 첫 장과 마지막 장을 장식해 준 연주는 햄넷의 대미를 장식한다. 슬프면서도 한 줄기 희망을 암시하는 듯한 운율을 따라 제시 버클리의 웃음과 마무리 되는 연기까지, 완벽했다.
브라이드!(Bride!, 2026, 메기 질렌할)의 예고편에서 이 배우를 처음 보았다. 영상 속, 크루엘라 같은 분장 때문에 기운이 남다르게 느껴졌는데, 영화를 보니 본체에서 뿜어지는 힘이 남다른 배우다. 고통스러운 감정, 슬픈 감정, 기쁜 감정 까지 모두 그녀 안에서 깊이 흘러나왔다. 반안면왜소증(hemifacial microsomia)이 오른쪽 얼굴에 있는것 같은데, 덕분에 오른쪽 입꼬리가 평소에도 올라가 가만히 있으면 썩소를 짓는 표정이 인상적이다.
상대 배우인 폴 매스칼은 노멀 피플(Normal people, 2020, BBC) 때도 그랬지만, 잘생기지는 않았는데 마음이 가는 얼굴이다. 배우의 연기도 나쁘지 않았지만, 윌리엄 세익스피어라는 인물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마음에 들었다. 현실에 발 붙이지 못하고 괴로워하는 몽상가 같은 면모를 보여준 것이 좋았다. 예술가적인 그의 성향을 암시하는 링 귀걸이가 시선을 끌었다.
두 주연 배우가 연기를 잘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의외로 가장 좋았던 인물은 햄넷 역의 자코비 주프 였다. 러시아산 마트료시카 인형처럼 오밀조밀하고 귀엽게 생긴데다 오동통한 뱃살까지... 소년을 잃은 모든 가족의 슬픔이 납득이 갔다. "Be brave."라는 대사가 이렇게 마음 아픈 대사 일 줄은... 마지막 연극에서 햄릿을 연기하는 소년이 머리에 노란 염색약을 칠하니 햄넷과 느낌도 비슷하네 생각했는데, 실제 햄넷 배우의 형이라고 한다.
아무래도 OST나 자식을 잃은 슬픔이라는 키워드 때문에 컨택트도 계속 생각이 났지만, 소년이 온다(2014, 한강, 창비)의 마지막 장이 떠올랐다. 그 챕터를 읽으면서 정말 처음부터 끝까지 울었는데, 이런 내용이 특히 내 감정선을 건드리는 내용인듯.
햄넷과 햄릿의 연관성을 보여주고자 하는 장면이나 대사는 약간 부자연스러운 부분도 있었다. 그리고 조 알윈이 제시 버클리의 동생으로 나오는데 계속 테일러 스위프트가 생각나서 집중이 안됐다. 마지막에 제시 버클리가 동생과 극장 들어갈 때 즈음의 장면들은 불편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마지막 하이라이트 장면이 모든 것을 잊게 해준다.
햄릿이라는 연극이 두 부부에게 아들의 죽음에 대한 애도의 도구가 되었듯, 어떤 창작물이든 해석에 따라 경험자에게 위로가 될 수 있다. 가까운 사람이 건네는 사랑의 말도 하나도 닿거나 들리지 않을 때, 나와 같은 슬픔을 느끼고 공감하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만으로 위안을 얻고 치유가 시작된다.
세익스피어의 4대 비극을 어렸을 적 만화책으로만 읽어서 왜 이 극들이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작품으로 칭송 받는 지 이해가 안됐다. 유약한 등장인물들이 오해와 오만으로 잘못된 선택들만 하는 것 같고, 멍청해 보였다. 한 여름밤의 꿈이나 로미오와 줄리엣은 재미라도 있지, 환영이나 보고 정신병에 걸린 것 같은 햄릿은 왜 저렇게 유명한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는데, 그 인물들을 통해 자신의 연약함과 고뇌를 표현하고자 하는 셰익스피어를 표현한 장면들을 보면서 처음으로 햄릿을 자세히 들여다 보고 싶었다.
인물들은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했고, 아들의 죽음 뒤에도 그렇게 하였다. 각자의 삶 속에서 충분히 슬퍼하며 애도를 표했다. 방법이 달라 서로를 이해하지 못했을 뿐. 어떤 죽음도, 이별도 누군가의 잘못은 없다는 걸. 영화를 통해 위로를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