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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박달 Feb 09. 2020

하루아침

어제는 청첩장 받으러 신촌 자연별곡에 갔다. 코로나의 여파 때문에 사람이 별로 없었다.

자연별곡 메뉴 구성이 조금 바뀌었다. 삼겹살이나 갈매기살 등 돼지 구이가 많았다. 전보다 먹을 게 더 많아 오래간만에 포식했다. 몇 달 만에 본 누나, 친구들이었다. 함께 독서모임을 하다가 모임이 흐지부지 해체되고 처음 본 건데 반가웠다. 책과 모임, 둘 다 좋아하니 몇 년 동안 죽 독서모임을 했었다. 해보니까 확실히 고전 목록에 있는 책을 하는 게 좋았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할 때엔 잘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대화를 위한 대화를 하기도 했었는데. 여튼간에 어제는 같이 부동산, 스포츠, 영화 등을 나누고 헤어졌다. 너무 배가 불러 홍대역까지 걸어왔다. 평소 토요일 홍대 앞은 정말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는데 어제는 홍대역 근처를 제외하고는 꽤 한산했다. 내가 좋아했던 와우교에서 쌈지스페이스에서 홍대 앞 거리를 정말 오랜만에 거의 십여 년 만에 기분 좋게 걸었다. 호미화방 갈 일 있어서 같이 걷던 형은 십 년 전 홍대가 가장 괜찮았던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나도 그때의 홍대 앞을 기억한다. 동교동에 있던 희망청과 쌈지 스페이스, 추억의 장소는 몇 개 없지만 참 뻔질나게 갔었는데.

일요일 아침엔 일어나자마자 세탁기를 돌리고 청소기를 돌리고 티브이 좀 봤다.

동네 구립도서관이 오늘까지 하고 2주 정도 휴관을 한다고 해서 긴 호흡으로 읽을 책을 빌리러 도서관에 갔다.

구글 스토리, 레이먼드 카버의 대성당, 마지막으로 스위스 작가 로베르트 발저의 단편집. 구글 스토리는 심심풀이로, 카버 책은 이 기회에 한번. 발저의 단편집은 도서관 상주작가의 추천 목록에 끼어 있어 한번 읽어볼까 하고 가져왔다. 사실 평일날엔 가벼운 에세이 정도만 읽기 때문에 이런 책들은 주말에 독파해야 한다. 코로나 때문에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은 가지 않는 지금이 기회는 기회인데... 요새 도통 주말에 책을 펼칠 기회가 없다. 넷플릭스로 지브리 애니 보거나 핸드폰으로 농구 게임하거나 아님 멍때리거나. 아내는 이 기회에 북튜버를 하자고 하는데 난 왜 이렇게 게으르거나 겁이 많을까.

지금은 동네 독서실 1층 커피집이다. 어차피 집 앞이라 마스크를 하지 않았더니 여기 계신 분이 마스크를 주신다. 음... 이 곳은 커피가 싸지만 평일에 오는 아내 말로는 여기서 일하는 분이 하모니카를 불거나 잡담을 너무 시끄럽게 하는 통에 좀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했다. 아내는 어려 보이고 착해 보이는데 그래서 그럴까. 아님 누가 와도 그런식으로 한다면 인정, 아니면 이건 좀 비겁한 일. 그래서인지 주말마다 그분이 없기를 바란다. 오늘은 안 계신다. 퍽 조용한 분위기에 볕 좋은 창밖을 즐기며 아이패드를 갖고 노는 중이다.





내가 사는 아파트 뒷쪽은 본가와 처가가 있는 신설동을 연상시키는 곳이다. 재개발이 부분적으로 이루어지며 문닫은 가게도 많은데 지금은 열지 않는 라이브카페 입간판 뒤로 화환이 보였다. 이미   여기에 뒀는지 몰라도 축하화환과 낡은 라이브카페의 폰트를 보고  보던 황학동-신설동 거리가 생각나 찍었다. 달동네에 살때, 황학동 벼룩시장이  근처에 있을  모두 거기 살지 않는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를 듣고 화가 치밀때가 많았다. 잠시 머무는 사람들이 하는 낭만적인 이야기, 우리에겐 낭만이 아니라 생활이며 그때문에 유입된 사람들의 담배연기, , 여타 보기 싫은 것들을 감당해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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