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나의 순정 이영희
이영희 기자의 글은 재미있다. 덕질을 해 본 사람이라 음악, 영화, 책 등에 대한 애정이 있으며 그의 글에는 그것에 대한 사랑과 존중이 묻어난다. 한마디로 솔직하게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털어놓는다.
안녕 나의 순정은 그녀가 좋아하는 순정만화에 대한 헌사다. 정확히 이야기하면 그 만화를 읽던 과거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도 만만치 않게 포함되어 있지만 그 중심축엔 순정만화가 있다. 이 만화들 정말 하나도 모른다. 오디션 정도만 두세권 읽어봤을 뿐 이름만 들어본 만화다. 80년대 후반~90년대 중반 만화가 주를 이루는데 그 시기 난 보물섬, 아이큐 점프가 읽는 만화의 전부였고 편협한 시절이었으니. 순정만화는 이해할 수 없는 것. 이렇게 치부해버리고 말았다.
그래도 한 가지 부러운 게 있다. 이영희 작가는 자기가 읽고 싶은 만화를 마음껏 읽을 수 있다는 것. 나는 유별난 어머니 덕분에 만화 잡지 하나 사는 것도 사정사정해야 했다. 초등학교 2학년 때는 생일 때 만화 잡지 보물섬을 받았었는데 커서 다른 놈들에게 물어보니 주마다 아이큐 점프 사는 놈들도 있더라. 무슨. 이게.
그래도 엄마의 이해할 수 없는 본인이 인정하지 않는 것에는 엄청 돈을 쓰지 않던 철학 때문에 기억나는 추억도 많다. 함께 보수동 헌책방에 가서 만화책을 보는데. 서태지와 아이들이 일본 진출하는 걸 그린 쪼가리 만화책이 있었다. 마치 만화 주간지의 별책부록 같은 정도의 사이즈였는데. 엄마한테 사달라고 졸랐었다. 엄마는 책방 주인아저씨와 몇 번 흥정하더니 비싸다고 집에 왔다. 아이큐 점프는 1년에 2~3번 샀었나. 왜냐하면 안 사줬으니까. 대신 외갓집에 갔을 때 친척형이 산 아이큐 점프를 같이 보거나 사촌 집에 있던 보물섬을 읽는 게 그나마 행복이었다.
엄마의 철학이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덕분에 난 이야기에 대한 집착이 생겼고 도서관에서 책을 읽는 게 취미생활이 되었다. 다만 엄마가 TV 보는 것, 나쁜 음식(라면 같은 것) 도 금지했는데 그러한 조치에 대한 반항심 때문인지 대학 들어가서 매일 라면 먹고 틈만 나면 티브이 보면서 낄낄댔었다. 아내랑도 이야기하는데 어릴 때 하지 말라고 하는 것들은 커서 2배, 3배로 하게 된다. 뭔가 뒤틀어진 어린 시절에 대한 보상심리 때문이겠지.
그나마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 약간의 자유가 생겼고 집 근처 책 대여점에서 만화책을 빌려 읽었다. 당시 가장 재미있게 읽은 건 헝그리 베스트 5. (슬램덩크 아류라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농구대통령, 닥터 JJ 같은 명명이 유쾌했었다.) 이후 재밌게 봤던 만화책은... 가면 속의 수수께끼, 엘리트 건달, 천재 유교수의 생활, 멋지다 마사루 등?
음, 안녕 나의 순정에 대한 리뷰를 쓰는데 자연스럽게 내가 읽은 만화책에 대한 추억 여행이 된다. 어쩌면 이 책의 효용은 그런 점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작가의 추억과 책 속의 원본 극화를 보다 보면 내가 읽은 만화책에 대해 막 떠들고 싶어 지거든. 가령 마사루에서 미역 교장선생님이 불량 청소년을 교화하기 위해 힘으로 학교를 움직인 감동적인 이야기?
소년중앙, 학생과학, 아이큐 점프, 소년챔프, 영챔프 등 나를 거쳐간 수많은 만화잡지, 그 후 스트리트 잡지 시절 Na에 실린 만화, 씨네 21에서 펴낸 팝툰, 마영신을 처음 본 sal 등등. 만화+잡지를 생각하니 기분이 이상해진다. 이제는 볼 수 없고 다시 볼 일 없기에 더욱 그리운 잡지들. 안녕 나의 순정을 읽고 3분 정도 그때 생각을 했다. 만화책에 대한 엄마에 대한 원망조차도 달콤한 추억이 된다면, 그때는 진짜 내가 나이 먹었다고 느낄지도 모르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