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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박달 Jan 08. 2021

다음 곡은 뭐죠

숨기고 싶은 마음과 드러내고 싶은 마음

지옥 같은 한주가 끝났다. 다음 주도 또 다른 지옥이겠지만 지금은 그런  잠시 잊고 쉬는 중이다.

눈이 많이 내린 그저께 야근을 하고 아홉 시쯤 회사에 나왔다. 눈이 그렇게 많이 내린 줄도 몰랐는데 길가에 소복이 눈이 쌓여있었다. 인스타그램을 보니 조카가 신나게 눈밭을 뛰어다니는 모습이 보였다. 조카를 본지도 벌써 몇 개월째다. 보고 싶은데 코로나 때문에 거리두기 중이다. 구정쯤에는 보고 싶은데 상황이 어떨지 모르겠다.

회사 식당에서 점심을 먹는데 메뉴가 남산왕돈까스였다. 크기는 왕돈까스가 맞는데 튀김옷이며 튀긴 정도가 엉망이었다. 돈까스는 이름때문에라도 입이 침이 고이게 만드는 음식인데. 오늘 점심에 먹은 왕돈까스는 돈까스같지도 않아 슬펐다. 그런데 신기한  기분이 나쁠 땐 아무리 맛있는 음식도, 아무리 맛없는 음식도 그저 무덤덤하게 먹을  있다. 심리적인 압박감 때문에 다른 자극에 무덤덤해진다.  불행이 닥쳤을 때엔 사소한 불행까지 챙길  없는 것과 비슷한 건지도 모르겠다.

집에  지난주에 보다  박하사탕(장항준 송은이의 씨네마운틴에 나와서 본)을 끝까지 봤다. 철길에서의  돌아갈래 외침이 너무 커서, 보지도 않고  척할  있는 영화라 생각했는데,  보고 나선 무엇에 머리를 맞은 것처럼 멍해졌다. 순수했던 청년이 시대의 흐름에 휩쓸려 자신을 잃어가는 모습이 정말 슬펐다. 순임이의 고향인 군산이 나온다. 그리운 군산, 고등학교 때까지 군산에 살았다.  시절 군산에서 영화 혹은 뮤비를 찍는다는 소문을 (8월의 크리스마스, 품행제로, 김현철 러빙유 뮤비 ) 듣고 괜히 으쓱해진 적이 있다. 자신이 사는 곳을 정확히, 관심 있게 보기란 어렵다. 그곳을 떠나고 다시 찾았을  비로소 제대로   있다. 몇 년 만에 군산을 찾았을  그때서야   멋스러운 동네라는  알게 됐다. 자신이 살 때엔  공간에 얽힌 기억이 눈을 가린다. 믿을지 모르겠지만 초등학교 때엔 유치원 때를 떠올리며 쌉싸름한 느낌을 가졌고 중학교 때엔  이전을 떠올리며 마냥 그리워했다. 서른이 훌쩍 넘은 지금은 그리워할게 너무 많아, 엄두가 나지 않아 굳이 뒤돌아보지 않는다. 박하사탕은 계속 되돌아간다. 그게  그렇게도 슬펐는지.

오랜만에 집을 치웠는데 절반쯤 쓰다  몰스킨 다이어리가 나왔다. 다이어리가 예닐곱 개 정도 되니 한두 개 정도는 어디 처박혀 있기 일쑤다. 하지만 빨간 포켓용 몰스킨 다이어리는  좋아하는 사이즈라  많이 썼는데... 아낀다고 자부했던 다이어리마저도 눈에 보이지 않으니 찾지 못했다. 좋아하는 것들, 자주 쓰는  바로바로 찾을  있도록 정리를 해야겠다. 그런 점에서 블로그는 언제 어디서건 찾을  있어서 좋다. 잃어버릴 염려가 없다. 비록 여기다  지질한 글을 숨기고 싶긴 하지만, 숨기고 싶은 마음과 드러내고 싶은 마음이 얽혀서 건강한 블로그 생태계를 이룬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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