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해철과 절친했던 시인 유하는 넥스트 1집 소개글을 썼다. 당시 그는 뭔가를 혼동했는지 이 앨범을 '그의 3집 앨범'이라고 칭한다. 이처럼 성공적인 솔로 커리어를 거친 신해철의 넥스트를 바라보는 대중의 시선은 넥스트=신해철에 가까웠다.
너 떠나가는 자동차 뒤에는
어릴 적 그 인형의 놓여 있었지
난 하지만 이제는 너의 기사가 될 수 없어
-'인형의 기사' 중에서
넥스트 1집 인형의 기사에서 그는 더 이상 기사가 될 수 없다고 말한다. 남의 여자가 된 너를 더 이상 지켜줄 수 없다는 내용이지만 신해철 전체의 커리어를 생각하면 그는 계속 남들이 원하는 역할(기사)을 배반하는 행보를 이어갔다.
곱상한 아이돌 가수로 인식되던 솔로 생활을 청산하고 넥스트를 통해 아티스트적 자아를 드러냈다.
한창 인기가 좋을 때엔 더 이상 올라갈 곳이 없다며 해체를 선언했다.
소위 음악 마니아층(이발관 이석원이 키보드 워리어 시절 그렇게 신해철을 깠다고)이 백화점식 앨범 구성을 비판해도 꿋꿋이 자신의 음악 스타일을 고수했다.
그는 철저하게 하고 싶은 음악을 하고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했었다. 조금이라도 타협했다면 보다 편하게 살 수 있었을까. 잘 모르겠지만 최소한 자신에 대한 오해는 조금 줄였을 것이다.
넥스트의 음반을 처음 샀을 때부터 1차 해체를 했던 1997년까지 신해철은 나의 영웅이었다. GMV에 기고한 글, 라디오의 인터뷰 등 모두 정말 너무나 멋있었다. 그러나 소년은 성장하고 새로운 영웅을 찾는다.
이후 좋아했던 뮤지션은 넥스트와 정 반대편에 서있었다. 넥스트와 신해철은 극복해야 할 악습처럼 보였다. 어릴 때는 정말 좋아했지만 지금은 아니라고 확고히 선을 그었다.
이후 넥스트는 2004년 재결성 후 개한민국이란 애매한 앨범을 발매했고 내 판단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확신했다.
그리고
2009년 펜타포트에서 넥스트의 공연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눈앞에서 봤다. 그때 썼던 글이다.
저녁을 먹고 넥스트를 보았다. 신해철 보면서 전두환 닮았다고 킥킥거리고 넥스트 공연은 십 년 전에 봤어야 했는데. 하고 비아냥거렸는데 나는 모르는 몇몇 곡이 지나가고, 라젠카 주제가가 울려 퍼지자 눈에서 눈물이 찔끔했다.
초등학교 때 사촌 형이 넥스트 라젠카 테이프 샀다고 자랑했던 기억. 형이랑 돈 모아서 넥스트 정규앨범이랑 라이브 앨범까지 샀던 기억. 그런 기억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안녕 재즈카페 마지막 그대에게 까지.
어쩌면 넥스트를 통해 넥스트를 좋아했던 어린 시절보다 얼마나 더 성장했는지 확인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계속 그들을 주시했다. 어떨 때엔 환호를, 어떨 때엔 고개를 흔들기도 했다. 평가와 별개로 넥스트는 내 안 가장 깊숙한 곳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제 넥스트란 밴드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제는 안다. 어릴 때 좋아했던 밴드의 현재 모습을 보는 게 얼마나 기분 좋은 일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