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밤, 기억나는 순간들

임백천 - 마음에 쓰는 편지

by 한박달



어릴 적 부산 외갓집에 가면 편지를 모아서 묶음으로 만든 책이 있었다.


여고생이 쓰고 여고생이 읽음직한 멋들어진 손글씨에 그들의 꿈과 열정, 사색이 녹아있었다. 어린 마음에도 좀 오그라드는 부분은 있었지만 그 책을 좋아했었다. 앞으로 앞으로만 향하는 세상에서 옆도 보고 웃기도 하는 여유가 편지 속에 있었기 때문이다.


책은 80년대 후반쯤 출간되었으며 이후 비슷한 기획도 본 적이 없다. 그러고 보니 그때는 있었는데 지금은 사라진 것들이 많은데 대표적인 것으로 히트 가요집이 있다. 음악은 사실 들으며 즐기는 건데 악보와 가사를 돈을 주고 산다는 건 누군가에게 불러주고 싶은 마음 때문일 것이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책을 보고 노래를 연습해 들려주는 기쁨, 아무것도 아니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소중한 그런 것들. 그런 유치한 것들을 좋아했었다.


요새 스마트 TV를 통해 유튜브 음악을 틀어놓는다. 8~90년대 음악만 고른다. 아내는 듣기 싫은지 이어폰으로 들으라고 한다. '옛날 음악이 좋은데 낭만을 모르네.'라고 말하지만 사실 노래 자체보다 노래를 들었던 기억을 되돌리고 싶어서 음악을 튼다. 지금보다 선택권이 좁았기에 하나를 제대로 소중히 즐겼던 그때가 가끔 심하게 그리울 때가 있다.


임백천의 '마음에 쓰는 편지'를 들을 때면 어릴 때 읽던 편지 책이 떠오른다. 그때 그 책을 읽으면 90년대 초반으로 잠깐 여행을 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그 책을 볼 수 있더라도 보지 않을 것이다. 가끔 이렇게 그리움에 젖어 환상에 머무는 즐거움이 보다 달콤하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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