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강명 <5년 만에 신혼여행>이 내게 준 영향

by 한박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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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읽어본 신혼여행기로는 두 번째다. 첫 번째는 이우일 선현경의 신혼여행기로

대학교 1학년 때쯤 읽은 그 책은 그냥 팬의 마음으로 읽었다.


이번엔 좀 달랐다. 장강명 작가의 책은 한 번도 읽은 적 없지만 '5년만' 이란 단어가 호기심을 자극했고 한 달 전에 갔던 신혼여행이 생각났다.


사실 신혼여행이라치면 (이우일, 선현경 부부처럼) 정말 오래가지 않는 이상 출판사에서 책으로 나오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기념으로 혹은 자기만족으로 200권 정도 인쇄하는 형태라면 몰라도.


5년 만에 신혼여행은 3박 5일 보라카이 여행을 책으로 담는 데 성공했는데 둘의 만남부터 결혼, 5년 만에 신혼여행을 떠나는 우여곡절 등에 가족, 사회에 대한 작가의 생각과 여행지에서의 사건이 함께 섞여있다. '신혼여행기'라기보다 '나는 왜 혹은 어떻게 5년 만에 신혼여행을 갔는가'에 대한 대답일 정도로 작가는 자신의 이야기를 길고 짧게 또 침착하게 털어놓는다.


우리는 신혼여행지를 고를 때 휴양지는 전혀 후보에 없었기 때문에 그곳이 어떠리라는 생각도 하지 않았었다. 예쁜 바다와 독서, 색다른 경험일 테지만 딱히 할 일 없는 곳이라 생각할 뿐이었다. 장강명의 책은 어 이건 이래서 고생했지만 이런 점은 재밌겠네. 만약 우리라면 여기서 어땠을까 하고 처음 휴양지에서의 여행을 상상하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내겐 꽤 기억에 남을 책이 될 것 같다.


이 책은 여행기도 재미있지만 그가 자신의 부모님과 아내, 사회에 대해 이런저런 의견을 털어놓는 게 무척 인상적이다. 누구나 부모님이 있고 비슷비슷한 관계 속에서 힘들어하지만 문장으로 이건 이렇습니다 하고 이야기하긴 어려운 노릇이다. 무엇보다 어떤 사안에 대해 그렇게 깊이 생각하는 건 시간이나 에너지 상에서 무척 비효율적인 일이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손쉽게 이런 책을 읽고 그런 기분이라도 맛보는 건 아닐까.


나와 부모님은 서로 데면데면하다. 부모님은 나를 사랑하신다. 나도 그들을 사랑한다. 그러나 우리의 궁합은 매우 안 좋다. 부모님과 나는 어떤 점은 놀랄 정도로 닮았고, 어떤 점은 매우 다르다. 고집스러움, 오만함, 독선적인 태도는 비슷하다. 반면 성공에 대한 기준이라든가, 야심이라든가,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하는 문제에서는 서로 생각이 극과 극에 있다. 성격은 비슷하고 가치관이 다르다. 최악의 조합이다.
5년 만에 신혼여행 p32.



특히 부모님에 대한 서술에선 내가 왜 그렇게 부모님과 맞지 않았는지, 왜 우리는 어떤 부분은 그렇게 비슷한데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나 했더니 작가는 한마디로 요약한다. 성격은 비슷하고 가치관은 다르다. 고.


내가 강력히 추천하는 여행용 서적은 제임스 조이스의 <더블린 사람들>이다. 얇은데 정말 더럽게 지루하다. 여행 중에 이 소설을 읽으면 여행의 재미가 틀림없이 배가된다. '내가 어디에 있건 더블린에 있는 것보다는 낫겠지' 하는 마음이 절로 드니까.
5년 만에 신혼여행 p55.


예전에 독서모임이었나, 더블린 사람들을 읽었는데 정말 더럽게 재미가 없었다. 공감도 안되고 멋은 잔뜩 부린 건 알겠는데 잘 넘어가지도 않고. 거기서 맘에 안 드는 애가 있었는데 이 책을 엄청 극찬하길래 앞으로도 이 책은 절대 좋아하는 일이 없겠구나 싶었는데, 더블린 사람들의 효용을 여기서 발견했다. 여행지에 들고 갈 책으로.


HJ가 가져온 <여행의 기술>을 조금 읽었다. 이 책은 망한 영화 잡지 <키노>나 합정동의 고만고만한 카페들, 고도로 계산된 포즈로 털털한 척하는 인디 여가수와 비슷했다. 알랭 드 보통도 베르나르 베르베르와 좀 닮았다. 한국에서 아이돌 취급받는 거 하며, 시원하게 까진 대머리 하며, 스스로 대단한 깊이와 통찰을 지니고 있다고 믿는 자부심 하며.
5년 만에 신혼여행 p69.


알랭 드 보통 책은 꼭 한 번쯤 읽어봐야 하지 않나 싶은 생각을 했는데, 그 아저씨에 대해 별다른 감정이 없지만 이런 평은 참 재미있다. 나는 어떤 것에 대해 강한 편견을 갖고 있어야 다른 것을 열렬히 사랑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내 편견을 인정하고 또 어떤 쪽으론 사랑하기까지 하다. 알랭 드 보통보다 합정동 카페와 털털한 척하는 인디에 대해선 무슨 말인지 확실히 알 것 같아 고개를 끄덕였다.


여행기 내내 발췌한 것과 같은 작가의 생각이 이어진다. 가령 다이빙을 하고 신세계를 발견하는 것에 대해 2~3페이지 정도 할애해 죽 이야기한다. 만약 이게 코드가 맞지 않는다면 그냥 책을 덮는 게 현명하겠지만 나는 작가의 생각에 대해 아 그렇구나 하고 계속 생각했다. 마치 작가가 술자리에서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다는 식으로 좀 길게 이야기하는 걸 듣는데 그게 싫지 않고 계속 듣고 싶은 그런 기분이 계속 이어졌다.


사실 여행기는 별게 없었다. 비행기가 연착되어 오후에나 나왔고 동남아 여행객들처럼 (잘은 모르지만 비슷하겠지?) 다이빙을 즐기고 수영을 하고 밥을 먹고 등등. 그런데 모든 비슷해 보이는 것들도 바로 옆에서 관찰하면 모두 조금씩 다르듯이, 그들만의 경험과 생각이 이어지는 여행기를 죽 읽고 있으려니 1달 전 갔던 이탈리아 여행기가 쓰고 싶어 졌다. 언젠가부터 나는 나를 위한 게 아니라, 읽는 사람을 늘 생각하며 뭔가를 썼던 것 같다. 내가 무슨 소설가도 아닌데 또 내가 그렇게 친절하게 생겨먹은 사람도 아닌데. 그러다 보니 뭘 쓰고 싶은 욕구는 있는데 시원하게 쓰기 힘들어서 한두 문장을 수첩에 끄적이다 덮은 적이 많다. 이 책은 나한테 조금 용기를 줬다. 작가의 이야기는 어떻게 보면 공격받을 부분도 많고, 또 이해가 안 되는 부분도 있을 것 같다. 그런데 그는 어쨌든 썼다. 작가는 한 방송에서 소설을 쓰는 게 힘들고 그런데 이런 글은 쓰면서 오히려 힘을 받는 것 같아 쓴다고 했다. 나도 나 자신을 위한 글을 쓰고 싶었다. 그게 어떤 행태든지 너무 늦지 않는 시간에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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