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언니네 이발관

언니네 이발관_비둘기는 하늘의 쥐

by 한박달


2011년, 수많은 밴드가 공연했던 쌈지 스페이스가 문을 닫았다.


마지막 기념 공연까지 끝난 일요일 밤, 언니네 이발관의 마지막 월요병 공연이 다음날 열린다는 소식이 SNS에 올라왔다. 방금 마지막 공연을 끝낸 쌈지에서? 그것도 바로 내일? 처음엔 유료 공연으로 공지가 떴지만 곧 무료로 정정됐고 선착순 입장으로 정해졌다. 학교 수업을 마치고 바로 뛰어갔지만 줄이 엄청 길었다. 미리 기다려준 친구 덕분에 중간쯤으로 들어갔다. 꽤나 큼직한 쌈지스페이스가 관객으로 꽉꽉 들어찼다. 공연 보는 건 불편했고 사운드도 별로였는데 시간이 갈수록 괜찮아졌다. 이게 음악의 힘인가. 수많은 관객들의 에너지와 이발관의 노래가 평화롭게 공존했다. 그리고 '마지막 월요병'이라는 문구 때문이었을까. 그들을 처음 접한 데뷔 앨범의 노래를 부르는 순간 가슴 한쪽이 찡해졌다.


누구에게나 처음은 특별하다. 초등학교 입학식, 처음 읽었던 하루키 소설, 처음 먹은 짜장면? 등. 언니네 이발관은 처음으로 열광했던 밴드였다. 기억나는 순간이 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학교에서 돌아오니 형이 사둔 테이프가 들어있었다. 틀어보니 뭔가 단순한데 새롭고 마음을 끄는 구석이 있었다. 그 앨범이 언니네 이발관 1집 비둘기는 하늘의 쥐였다.


야자를 마치고 돌아온 형이 어땠냐고 물어봤다. 나는 괜찮다고 했었고 형이 자기는 조금 별로라고 했다. 음악뿐 아니라 음반 재킷도 특이했다. 일본 캐릭터 같은 여자가 가위를 들고 있다니, 언니네 이발관이란 밴드명을 정직하게 이미지화시킨 셈인데 조금 유치하게 느껴지기도 또 신선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기타리스트 정대욱(정바비)은 땡스 투에 처음 파워 코드를 가르쳐준 친구 이름을 적었다. 혹시 기타를 배운 지 얼마 안 되는 사람인가 했는데 역시나 이발관 멤버 모두 연주 경력이 길지 않은 상태로 앨범을 발표했다. 그러나 연주하기 쉬운 음악이 절대 쉬운 음악이 아니듯, 그들의 음악엔 뭔가 있어 보였고 가사는 이때까지 들어본 것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겉은 차가운데 속은 부글부글 끓는 예민한 감성이 가득했다.


오늘은 나의 스무 번째 생일인데
참 이상한 건 멀쩡하던 기분이 왜 이런 날만 되면 갑자기 우울해지는 걸까
난 정말 이런 날 이런 기분 정말 싫어
-생일 기분-


다소 특이하다고 느꼈던 1집을 몇 번 반복해 들으니 하나의 잘 쓴 소설책처럼 내 기분을 대변하는 것 같고 멋지게 느껴졌다. 지금같이 스트리밍으로 좋아하는 음악만 감상한 게 아니라 앨범 전체를 수십 번 반복해서 들었다. 그렇게 들으면 재미있는 습관이 생긴다. 한 곡이 끝나면 다음 곡을 자동적으로 기다리게 되는 것이다. 요새는 그런 앨범이 없지만 이발관 1집은 그렇게 앨범 전체를 제대로 소비한 앨범이었다.


강하게 끌린 첫 밴드라 그랬을까,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막 자랑했다. 뭔가 특이하고 괜찮은 밴드가 나왔다고. 친구들은 별 관심이 없었다. 어쩌면 그런 점에서 나름의 자부심을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이 밴드의 진가는 나만 알고 있어.' 물론 그런 생각은 몇 년이 지나 바뀌었다. 오랜 시간의 휴지기를 마친 후 멤버를 교체해 발표한 꿈의 팝송이 크게 히트한 후 언니네 이발관은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언니네 이발관에 특히 고마운 점? 하나 있다. 그들이 3집 앨범을 내기 전 쿠조와 계약하고 (당시 노브레인이 소속된 레이블로 기억한다.) 앨범 준비를 하며 홈페이지에 이석원이 일기를 게시했다. 가장 힘든 고등학교 시절, 그의 일기를 보며 그야말로 많은 위로를 받았다. 집에 컴퓨터가 없어서 학교 컴퓨터 시간에 그의 일기를 읽었는데 그의 통찰을 읽고 나면 시야가 넓어져 현재의 고민을 헛되게 느끼게 만드는 효과가 있었다.


언니네 이발관에 미안한 점? 참 좋아했던 밴드였지만 어느 순간 좀 재수가 없었다. 이발관의 무료 공연에 간 적 있는데 이석원이 무료로 왔으니 반응 좀 보여달라는 투로 이야기했었다. 자기들도 개런티 받으면서 뭐 그리 생색내나 싶었다. 또 이발관은 음악 자체보다 일종의 후까시로 이득 본 것도 많다고 느껴졌다. 그래서 새 앨범이 나올 때마다 앨범은 샀지만 응원하는 마음은 진작에 사라졌었다.


하지만 이렇게 이발관 1집에 대한 글을 쓰다 보니 이 밴드가 내게 엄청난 의미였구나 싶다. 오늘이나 내일은 코인 노래방에 가서 동경이나 보여줄 순 없겠지 를 부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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