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에 대하여_김혜진

by 한박달


표지를 보고 뭔가 굉장히 익숙하다 싶었다. 생각해보니 82년생 김지영과 같은 시리즈였다. 민음사 젊은 작가 시리즈로 읽은 건 딸에 대하여가 처음이다. 82년생 김지영의 표지를 얼마나 많이 접했으면 연관시켜 생각했을까. 이래 저래 김지영의 존재감을 확인했다.


화자는 딸을 둔 어머니다. 시간강사 딸이 동성애인과 같이 집으로 들어온다. 모든 관계엔 일정의 거리가 필요한데 어머니와 딸의 물리적 거리가 가까워지며 갈등이 고조된다.


어머니는 딸의 성적 취향을 부정하지만 딸과 동성애인의 존재를 확인할 때면 회피하고 도망갈 수 없다.


딸과 어머니, 딸과 동성애인 등은 나와 교집합이 없는 이야기 같았지만 자세히 읽어보니 서로 이해하지 못하고 소통이 되지 않는 모든 관계로 확장이 가능한 이야기였다.


어머니와 딸은 서로에 대해 이해하지 못한 채 계속 평행선을 긋는다. 보통 이럴 때엔 힘의 논리가 적용된다. 딸이 어릴 때엔 엄마가 힘으로 눌렀고, 딸이 성장한 후엔 딸이 어머니를 착취한다.


어머니가 딸을 이해하게 된 건 하나의 사건 때문이었다.


딸은 강연을 나가는 대학에서,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강사에서 쫓겨난 사람들을 돕는다. 어머니는 어쩔 수 없이 이번에는 딸을 제대로 관찰한다.


전까지 어머니는 딸에 대한 편견이 있었다.


남자를 만나고 자식을 낳는 등의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을, 무책임한 일, 삶의 고단함을 100퍼센트 이해하지 못하고 주변부를 맴돌며 그저 편하게 산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대학 동료의 어려움을 돕는 딸을 보며 어떻게 됐건 자신의 진심을 담아 행동하는 딸을 보며, 딸과 딸의 애인 모두 100퍼센트 애를 쓰며 살고 있다는 이해로 발전한다.


누군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상대를 자세히 관찰해야 한다.


요양보호사인 어머니가 돌보는 젠이란 할머니가 나온다. 훌륭한 일을 많이 했고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인물이었지만 결혼하지 않았기에 무연고로 요양병원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중이다.


어머니는 젠을 보며 자신의 딸을 생각한 건 아닐까. 사회가 승인하는 결혼- 출산 등으로 가족을 만들지 않으면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는 것을 예감한 것이다.


자신과 딸을 돕는 심정이었을까. 치매 증상이 더 심각해지자 전문 치매병원으로 옮겨진 젠을, 어머니는 자신의 집으로 옮긴다.


젠, 딸, 딸의 파트너, 어머니. 이렇게 넷이서 살아가는 모습, 이건 너무나 예상 가능한 결말을 뒤집는 풍경이지만 또 어떻게 보면 꽤나 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족끼리도 불통이지만 혈연을 넘어선 결합을 통해 우리 모두 행복하다는 건 너무나 전형적인 전개이기 때문에, 제발 그건 아니길 바랬다.


하지만 이런 생각도 들었다. 이게 아니면 어떻게 풀 거란 말인가. 전형적인 가족의 문제를 풀기 위한 해결책이 뻔한 게 뭐 그렇게 문제가 된단 말인가.


딸에 대하여 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어머니의 생각과 말이었다. 어떻게 보면 우리 어머니와 비슷한 연배이다.


어머니 나이 대의 사람들은 나와 다를 거라 생각했었다. 나보다 훨씬 오래 살아온 사람들 단단하나 유연하지 못한 그들과 나 사이의 공통점은 없을 것 같았다.


딸에 대하여의 어머니는 고민하고 생각하고 어떻게 보면 합리적인 결론을, 또 뜨거운 가슴을 가진 사람이었다.


얼마 전 결혼했다. 당연히 해야 할 것으로 기대되는 걸 하기도 하고, 또 어기기도 한다. 물론 우리의 선택대로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죄책감이란 게 생긴다. 마땅히 해야 하는 책임을 다 하지 않나 하는 몹쓸 죄책감. 그것의 근원은 남들도 다 하니까 우리도 한다는 데 기인하지 않을까. 어쩌면 결혼하기 전엔 A에서 Z까지 모두 내팽개쳤기 때문에 생각도 하지 않았다면, 결혼 후엔 D까지 왔는데 보통은 F까지 가니까, 우리도 할까 말까에서 이런저런 몹쓸 감정이 생기는 것 같다.


필요 없는 죄책감은 버리고 타인을 자세히 관찰하는 가슴을 갖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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