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의 작품을 처음 접한 건 초등학교 시절 도서관에서였다. 하루키라는 이름과 상실의 시대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러나 상실의 시대 표지의 실루엣이 우울해 보여 고민하던 차에 고른 게 밤의 거미원숭이였다. 안자이 미즈마루 삽화, 무라카미 하루키 글. 이름이 특이해 한참을 불러봤다. 안자이 미즈마루. 안자이 미즈마루. 그 후 하루키에 대해 이야기할 때 하루키의 파트너는 안자이 미즈마루지. 하고 몇 번이나 아는 척을 했었다. (사람들이 인자이? 마즈마루? 하고 꾸물거릴 때 자신 있게 풀네임을 외쳤다.)
2014년 안자이 미즈마루의 별세 소식을 들었다. 하루키의 소년스러움이 가장 잘 드러난 캐릭터를 그린 안자이 미즈마루였기 때문이었을까. 죽음이란 단어가 어색했다.
몇 개의 그림과 하루키가 에세이에서 안자이 씨는... 하고 썼던 게 내가 아는 안자이 마즈마루의 전부였다. 이제 그의 새로운 그림을 못 본다는 생각을 하니(굳이 찾아본 것도 아니지만) 그가 그린 그림들을 보고 싶었다. 그때 마침 산 책이 바로 안자이 미즈마루-마음을 다해 대충 그린 그림이다.
안자이 미즈마루가 그린 삽화, 그의 책, 인터뷰, 그에 대한 대담 등이 풍성하게 실린 책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하루키의 삽화가로 인식되지만 독자적으로 소설과 그림책을 내는 작가라는 걸 책을 통해 알 수 있었다.
미즈마루는 자신의 화풍을 확고히 이루어낸 작가였다. 독특하면서 사람들의 취향에서 너무 떨어져 있지 않은 삽화들을 보니 하루가 즐거웠다. 공감과 환기가 동시에 이루어지는 그림이었다.
책에 실린 작품 중 가로로 긴 POST CARD와 작가가 뽑은 베스트 워크, 이 두 개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작가가 뽑은 베스트 워크에는 하루키와의 작업 중 마음에 드는 삽화를 꼽았는데 익숙한 듯 새로운 그림은 하루키의 팬들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하다. 그중 1위는 잡지 브루투스의 표지로 그린 하루키다.
처음엔 이게 왜 1등이지 했는데 몇 번 들여다보니 하루키의 에세이 중 한 구절이 떠올랐다.
마라톤 후반부엔 너무 힘들어서 맥주 맥주 하면서 들어온다.
앙 다문 입과 긴장된 하루키의 눈썹을 보니 그 에세이가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그림은 보니 러닝화를 동여매고 밖으로 나가고 싶다. (이것이 그림의 힘인가)
가로로 긴 POST CARD는 가로로 길게 그날 있었던 일을 그림과 함께 남긴 건데 담담한 일상의 스케치를 통해 안자이 마즈마루가 어떤 사람인지 정확히 알 수 있다.
한 사람의 별세 소식을 전하는 한 부분을 발췌해본다.
p268. 히시가타 다쓰미라고 하면, 무조건 강렬한 이미지밖에 없어서 만나는 것이 몹시 무서웠지만, 실제로 히시가타 씨는 눈이 아주 선해 보이는 사람이었다. 명복을 빈다.
겉으로 보이는 것 이면의 것을 탐구하는 사람이 작가라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안자이 미즈마루는 글과 그림을 통해 사물과 사람 이면의 것을 조명했다. '대충'을 끝까지 밀고 나가 '심오'한 단계에 진입했다고 할까.
그의 글은 대부분 유쾌하다. 그 글을 한번 음미해보기 바란다.
p90. 표지는 서점에서 눈에 띄게 되기 때문에 사양할 때가 있습니다. 흥미 없는 사람에게도 보이니까, 좀...(웃음) 눈에 띄지 않는 일을 하는 편이 좋더군요.
p113. 일러스트레이터란 약간의 색 차이는 재미있네 하고 생각하지 못하면 하지 못 할 일이죠.
p238. 게다가 배우의 초상화가 닮지 않아서 미치겠다. 내 초상화는 사심을 갖고 보지 않으면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