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나를 만나는 여행
-여행의 이유를 읽고-

by 한박달




작가는 '여행의 이유'를 위해 자신의 모든 여행 경험을 동원했다고 한다. 한 번의 여행-하나의 여행기 대신 모든 여행 경험과 그에 반응하는 자신을 담아내려는 건 욕심일까. 야심일까.


독립된 에피소드를 모은 김영하의 여행기는 실제 여행과 (시간적, 공간적으로) 떨어져 있는 상태에서 쓴 후일담이다. 자신에게 여행이 어떤 의미였는지 다각도로 분석하고 일종의 깨달음을 전한다.


운동권 학생이었던 시절 환상을 품고 있던 중공 여행 이후 작가가 된 이야기가 나온다. 여행에서의 경험이 어떤 방식으로든 영향을 끼쳐 작가의 삶을 열어줬다는 점이 신기했다.


여행은 반복적으로 호출되어 의미가 재정립된다. 만약 그가 여행을 거치지 않고 작가가 되었다면 그 과정을 스토리로 만들어 떠올리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여행을 통해 여정에 서사가 생기고 여행 전과 후를 비교할 수 있다.


인생을 기억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여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일상을 여행처럼 이란 뻔하디 뻔한 문구가 나왔을까.


김영하는 호텔을 좋아한다. 의무의 공간이자 상처의 공간이라 할 수 있는 집과는 다른 의미로


호텔에서는 기억을 지워 삶이 리셋되는 걸 느낄 수 있다.


공감했다. 과거 똑같은 모텔을 여러 번 간 적 있다. 모텔에 대한 기억이 쌓이며 찝찝한 일상과 별반 차이가 없는 공간이 되었다. 이후 숙박 시설은 무조건 새로운 곳으로 정했다.


기억이 전혀 개입되지 않은 깨끗한 공간, 그곳에서야말로 우리를 괴롭혔던 수많은 문제를 리셋할 수 있다.


'노바디의 여행'에는 외국에 나가 섬바디가 되는, 아니 섬바디라 스스로를 생각하는 상황이 나온다. 2년 전 태국여행이 생각났다. 괜히 어깨에 힘이 팍 들어갔다. 이탈리아나 일본에 갔을 때엔 최대한 여행자 티를 내지 않은 채 노바디가 되길 원했던 나였다.


굉장히 얄팍한 행동이지만 의식하지 못했었는데 김영하의 여행기를 통해 그 행동을 돌아볼 수 있었다. 좋은 글은 기억을 환기한다. 김영하의 여행기를 읽으며 과거의 경험을 계속 떠올렸다.


여행자는 결국 노바디로 움직이게 된다. 또한 타인의 환대에 감사할 때 타인에 대한 존중을 배울 수 있다. 방콕의 마사지 샵에 갔을 때가 생각났다. 목소리 큰 한국 아저씨들이 자신들은 돈이 많다며 팁을 많이 줘야겠다며 시끄럽게 떠들고 있었다. 타인의 환대에 감사하기보다 그들에게 돈을 주는 자신을 감사하게 느끼라는 오만함이 느껴졌다.


책에는 여행의 뜨거운 열기 같은 건 없다.


신작 소설 발표 후 김영하가 미국에서 겪었던 경험은 전형적인 여행과는 결이 많이 다르다.


세상에는 여행이라 말할 수 없는 여행이 더 많다고 생각한다.


내게도 그런 여행(이동)이 있다.


운이 좋아 장학금을 받고 대학에 입학했다. 입학 전 장학생 수상자들을 대상으로 워크숍을 열었다. 처음 군산을 떠나 타지로 가는 길이었다


촌스러움을 티 내면 안 될 텐데 하는 불안의 이면엔 장학생이라는 자부심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불안과 자부심, 정반대의 감정이 나를 지탱했다. 두렵고 떨린 마음에 자꾸 창밖을 바라보았다. 수많은 생각 끝에 도착한 학교 캠퍼스가 생각난다. 그때 내 여행지는 대학 캠퍼스였다.


여행지에선 조력자 또는 친절한 원주민이 필요하다. 원주민들은 쉽게 도움의 손길을 내민다. 앞에서 이야기한 대학으로의 여행은 조력자가 존재하지 않았다.


이 곳에 적응하지 못하면 바보라 생각했다. 만약 조력자가 접근했다면 강하게 뿌려 쳤을 것이다.


만약 스스로 자신의 미숙함을 인정하며 조력자를 찾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훨씬 매끄럽게 흘러갔을 테지만 기억에 남아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여행은 당시의 나를 솔직하게 담는 거울과 같다고 생각한다. 결과가 어떻든 그때의 내가 있으며 그때의 나만이 할 수 있는 경험을 하게 된다.


여행지에서의 나는 거짓말을 할 필요가 없다. 주변 모든 것이 낯설기에 일상에서의 방어 논리가 나타날 여력이 없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여행을 통해 진짜 나를 만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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