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닉스와 우리의 추억

우리의 추억은 마를 틈이 없다

by 한박달

프랑스 출신의 피닉스는 아내 덕분에 좋아하게 된 밴드다.


연애 초기 아내에게 아이팟을 빌렸다. 스마트폰이 주류였지만 난 계속 2G 폰을 쓰고 있었다. 취준생 신분에 돈 낭비를 할 순 없다는 생각이었으나 아내의 아이팟을 잠깐 쓰며 푹 빠졌다. 아내에겐 이미 스마트폰이 있었기에 염치 불구하고 아이팟을 빌렸다.


기계치여서 그런가. 아이팟에 음악 하나 넣는 것도 쉽지 않았다. 한동안 아내가 넣어놓은 음악을 계속 들어야 했다. 기억나는 밴드는 차승우와 리규영이 결성했던 더 하이라이츠, 그리고 피닉스다. 전부터 Listztomania나 1901 같은 노래는 알았지만 대단하게 느껴지진 않았다.


아이팟에 저장된 wolfgang amadeus phoenix 앨범을 들으며 생각이 바뀌었다. 앨범을 들으면 들을수록 춤을 추고 싶었다. 답답한 마음을 댄서블한 리듬에 담아 어딘가로 날려 보내버리고 싶었던 모양이다.


피닉스의 새 앨범이 나올 때마다 아내가 빌려준 아이팟을 떠올렸다.


작년 봄 프랑스 문화원 페이스북에서 피닉스 내한공연 이벤트를 봤다.


‘여자 친구랑 처음 만날 때 친구 아이팟에 있던 피닉스 Wolfgang Amadeus Phoenix 보고, 이 친구랑 뭔가 통하겠다 싶었는데. 이런저런 추억 갖고 같이 공연 보고 싶네요.’


경쟁률이 높았는데 다행히 당첨되었다. 솔직 담백한 사연 때문이었을까.




공연장이 지하라 죽 내려갔는데 계단에 녹음이나 촬영 금지라고 적혀 있었다. 이제 우리나라도 제대로 단속하나 싶어 공연 전 허겁지겁 사진을 찍었다. 그런데 공연 시작하니 1/3이 핸드폰 카메라로 사진을 찍고 있었다. 촬영 금지 뭐지...


참 예쁜 피닉스 로고


예뻐


열정적인 공연


뿌옇다


과거 블러의 내한공연 때 적은 관객수에 비해 분위기가 무척 좋았다고 들었다. 피닉스 공연 또한 아다만 공연장에 좋은 분위기가 이어졌다. 스탠딩석의 관객들은 서로를 침범하는 일 없이 각자 온전히 즐겼다. 피닉스의 곡 대부분 팝송의 문법에 충실한 편이라 바로바로 귀에 꽂혔다.


최고의 순간은 소박하게 연주한 goodbye soleil 가 나온 앙코르였다. 익숙한 듯 낯선 노래가 나오는 순간 아내와 난 그곳이 아닌 다른 곳을 비행하는 기분이었다.


문득 아내에게 아이팟을 빌렸던 때가 떠올랐다. 그때는 우리가 이렇게 많은 일을 함께 겪을지 예상하지 못했다.


아내의 아이팟에서 피닉스를 듣던 시절, 우리는 무척 밀도 높은 시간을 가졌다. 없는 건 돈이요 남는 건 시간이라 무료 공연이나 전시 같은 게 있으면 빠지지 않고 같이 봤다.


어떤 시기에만 가능한 것들이 있다. 우리에겐 20대 후반 열정적으로 이곳저곳을 돌아다닌 시간이 그러하다. 지금은 그렇게 못하기에 더욱 다행스럽고 대견한 시간이다.


티켓 인증샷


어제 아내가 카카오톡으로 피닉스 영상을 보여줬다. 작업하면서 듣는 모양이다.



피닉스의 노래를 오랜만에 들으니 작년의 피닉스 공연이 생각나 글을 시작했다.


우리의 추억은 마를 틈이 없다. 어제도 오늘도 함께 한 시간은 따뜻하게 기억될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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