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서, 무엇을
어느 순간부터 나는,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가르치는 듯한 어투로 이런 표현을 쓰기 시작했다.
"최소한 초등학생 때에는 헤르만 헤세를 읽어야 합니다(예를 들면 <데미안> 정도는 말이죠). 중고학생 정도가 되었는데 괴테를 모른다면 그것은 이상한 일이죠. 그리고 대학생이 되었다면 당연히 도스토예프스키를 읽고 있어야 합니다."
지금 이런 식의 '전형적인 순서'를 따질 생각은 없다.
좀 더 나이가 들어서 보니, 위 인용한 작품들도 상황과 맥락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로 읽히는 경험을 하게 된 것이다.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모든 것들.
프루스트가 아침 식사 때의 한 순간을 '영원한 무엇'처럼 만들었는데,
사실 우리 모두 (표현의 세심함의 차이는 물론 있겠지만) 그 순간들을 경험하고 있다.
그리고 그 순간들은 의미를 부여하는 주체에 따라 언제나 가장 좋은 순간들이 될 수 있다.
가장 좋은 순간들이라 함은 희극과 비극 양 극단을 모두 포괄하면서,
미처 다 채우지 못한 이야기의 부분들은 '아이러니'가 채우고 있는 순간에 마주하게 될 것이다.
물론, 이런 이야기들은 다른 사람들의 흥미를 유도하지 못할 때도 있을 것이다.
Blur의 <Best Days>의 가사처럼 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