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색의 공간
답답해서 집밖으로 나온 날이었을 것이다.
늦은 저녁이었는데, 올림픽공원은 다행스럽게도 밤 10시까지는 공원 내를 돌아다닐 수 있기에 그곳으로 갔다.
저녁 늦은 시간 올림픽공원은 여러모로 많은 장점이 있는 곳이다.
조용하고 한산한 거리를 그저 하릴없이 걸어다니며 여러 생각을 하기에 적절하다.
또한 공원 내에서 입마개를 하지 않은 큰 개를 마주치지 않고,
핸드폰을 하면서 공원 주차장으로 돌진하는 차량을 마주칠 확률이 상당히 적기도 하기에 그러하다.
이 날은 내 앞으로의 커리어(현재로는 보잘 것 없지만)와 작은 사업 구상 등 비즈니스적인 생각을 해보았다.
지병과 가족 문제 등, 이 나이대의 유부남이라면 으레 할만한 진지한 생각도 해보았다.
더불어 회사 내에서 내가 왜 인기가 그리도 없는지,
그리고 최근 같이 술자리 한 친구 중 하나가 왜 내게 1/n로 계산한 금액에 대한 돈을 이체해주지 않는지(내가 전체 금액을 우선 계산했다) 생각해 보았다.
진지한 생각부터 별다른 큰 의미가 없는 모든 일들을 찬찬히 돌아보기 좋은 시간이다.
우리는 종종 자기를 돌아볼 시간조차 갖기 힘들만큼 각박한 삶에 매몰되어 있기에,
가끔씩은 '자신'으로 침잠할 수 있는 구체적인 시간과 공간이 필요한 것이다.
지난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시기에 나는 이 시공간을 내 일과 중 충분히 확보할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나는 이 곳에서 두 번의 퇴사와 두 번의 새로운 선택을 결정했다.
한 해에 두 번의 퇴사를 결정하고 실행에 옮겼다는 것 자체가 타자의 관점에서는 무모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겠다.
그러나 나는 오히려 이전의 나보다 훨씬 심사숙고 끝에 가장 합리적인 결정을 내렸다고 믿는다.
새로운 위기와 새로운 기회들.
가끔은 걷고 있는 하나의 선상에서 이탈해서 사고했을 때 올바른 시각을 갖출 수 있다.
아니, 사실 그릇된 생각이어도 상관 없다.
아무렴 내가 이 결정으로 무조건 잘 될 것이라는 보장이 없다는 사실을 모를 일은 없다.
내가 공원에서의 사색에서 가장 만족하는 부분은, 내가 일상에 매몰되지 않게끔 도와줄 장치를 가지게 되었다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생각 끝에 어떤 결정을 분명히 내릴 수 있는 시공간.
집 가까운 곳에 좋은 공원이 있다는 것은 분명 만족스러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