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순간들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oment books Oct 26. 2018

숲길 1.

사색의 공간

도망치다. 


답답해서 집밖으로 나온 날이었을 것이다. 

늦은 저녁이었는데, 올림픽공원은 다행스럽게도 밤 10시까지는 공원 내를 돌아다닐 수 있기에 그곳으로 갔다. 


저녁 늦은 시간 올림픽공원은 여러모로 많은 장점이 있는 곳이다. 


조용하고 한산한 거리를 그저 하릴없이 걸어다니며 여러 생각을 하기에 적절하다. 

또한 공원 내에서 입마개를 하지 않은 큰 개를 마주치지 않고, 

핸드폰을 하면서 공원 주차장으로 돌진하는 차량을 마주칠 확률이 상당히 적기도 하기에 그러하다. 


이 날은 내 앞으로의 커리어(현재로는 보잘 것 없지만)와 작은 사업 구상 등 비즈니스적인 생각을 해보았다. 

지병과 가족 문제 등, 이 나이대의 유부남이라면 으레 할만한 진지한 생각도 해보았다. 

더불어 회사 내에서 내가 왜 인기가 그리도 없는지, 

그리고 최근 같이 술자리 한 친구 중 하나가 왜 내게 1/n로 계산한 금액에 대한 돈을 이체해주지 않는지(내가 전체 금액을 우선 계산했다) 생각해 보았다. 

진지한 생각부터 별다른 큰 의미가 없는 모든 일들을 찬찬히 돌아보기 좋은 시간이다. 


우리는 종종 자기를 돌아볼 시간조차 갖기 힘들만큼 각박한 삶에 매몰되어 있기에, 

가끔씩은 '자신'으로 침잠할 수 있는 구체적인 시간과 공간이 필요한 것이다. 


지난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시기에 나는 이 시공간을 내 일과 중 충분히 확보할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나는 이 곳에서 두 번의 퇴사와 두 번의 새로운 선택을 결정했다. 

한 해에 두 번의 퇴사를 결정하고 실행에 옮겼다는 것 자체가 타자의 관점에서는 무모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겠다. 

그러나 나는 오히려 이전의 나보다 훨씬 심사숙고 끝에 가장 합리적인 결정을 내렸다고 믿는다. 


새로운 위기와 새로운 기회들. 

가끔은 걷고 있는 하나의 선상에서 이탈해서 사고했을 때 올바른 시각을 갖출 수 있다. 

아니, 사실 그릇된 생각이어도 상관 없다. 

아무렴 내가 결정으로 무조건 것이라는 보장이 없다는 사실모를 일은 없다. 

내가 공원에서의 사색에서 가장 만족하는 부분은, 내가 일상에 매몰되지 않게끔 도와줄 장치를 가지게 되었다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생각 끝에 어떤 결정을 분명히 내릴 수 있는 시공간. 


집 가까운 곳에 좋은 공원이 있다는 것은 분명 만족스러운 일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순간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