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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ment books Nov 09. 2020

우울증

닿지 못하는 것


5월 초였을 것이다. 


그러니까, 이태원에서 다시금 시작된 "코로나 2차전" 직전, 코로나를 거의 극복해가고 있다는 분위기가 

사회 전반으로 만연해지고 있을 때이다. 


너무나 오랫만에 늦은밤 명동 거리를 통과하게 되었는데, 내가 알던 명동 거리의 모습이 아니었다. 

있어야 할 전체 사람들 중 1/4 정도만이 거리를 '배회'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아무래도 해외에서 관광 차 방문한 외국인들이 거의 없어서일테다. 


거리를 가득 메우던 길거리음식 매대들도 거의 보이지 않아 한결 편안한 발걸음을 옮겨  명동성당을 가보려 했는데, 평소와는 다른 방향으로 성당을 향했다. 


가톨릭회관쪽에서 난 좁은 골목길을 통해 지나가는 길인데, 중세시대 골목길 같은 곳을 은은한 가로등이 내리비추고 있었다. 꺾어진 좁은 계단을 걸어올라가면 성당 측면으로 나있는 길을 따라 성당 앞 넓은 공터로 나아갈 수 있는 구조로 보였다. 


골목길에서 양옆으로 회관 건물과 성당 부속 건축물 사이로 보니 주교좌성당이 우뚝 서 있다. 


반드시 가보고자 열심히 발걸음을 재촉하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닿을 수 없는 곳. 

꿈에서나 어떤 예술 작품의 한 이미지를 통해 접해봤을 바로 그런 상태가 한순간 연상됐다. 


카프카의 <성>의 한 구절이 이러한 현상을 잘 나타내 보여준다. 



마을 큰 길은 성이 있는 산에 가까이 다가가는 듯하다가 마치 일부러 그런 듯 구부러졌다.



닿고 싶으나 닿을 수 없는 것. 

향유하고 누려보고자 하지만 그 욕망을 결코 충족시킬 수 없는 상태. 

그러나, 우리는 그것이 무엇인지를 실체적으로도 알고 있고(눈으로 보고 있고), 느낌으로도 간접적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직접 닿을 수 없기에 온전히 내 것으로 소유한 것도, 향유했다고 말할 수도 없는 것이다. 


닿고자 하지만 닿을 수 없는 상태 또한 우울증을 낳는다. 

내 존재에서 무언가로 채우지 못하는 결여된, 불만족한 상태를 증명한다. 


성당으로 통하는 입구에 도착하니, 이또한 중세시대 수도원 출입문처럼 생긴 철문이 있었고, 잠겨 있었다. 

코로나 때문인지, 아니면 시간 통제 때문에 그런 것인지 몰라도 지금 이 순간에는 문이 닫혀 있었다. 


언제나, 가장 마음이 동해지고 갈급해진 어떤 순간에 가서 닿고자 하는 대상, 목표, 반응, 보상, 

그리고 순간은, 거의 언제나 그 순간에는 닿을 수가 없다.


그래서 우울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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