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tract
공간은 실존의 필요충분조건이다. ‘없음’은 어떠한 형태로든 구체적 공간에 실존적으로 존재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그렇기에 우리 모두의 이야기는 어떤 공간을 규정하는 일에서부터 시작된다.
인간은 아주 일찍부터 공간의 중요성을 깨달았을 것이다. 구석기 시대에 선조들은 움집이나 동굴 내부와 같이 외부의 위협과 혹독한 날씨로부터 몸을 보호할 수 있는 공간을 찾아 그곳에 거주했다. 아일랜드식 식탁이나 고급스러운 조형물을 전시한 캐비닛이 있는 그런 현대적인 공간은 아니겠지만, 당시에는 그 나름의 안락함과 편의성을 확보한 공간이었을 것이다.
모든 인간의 실존은 자기인식을 했을 때부터 시작된다. 이 자기인식은 외부로부터 위협을 받지 않는 자기만의 공간이 확보되었을 때부터 급격한 발전을 이뤘을 것이다. 자기인식을 하는 존재는 풍부한 상상력의 전개와 지적인 사고의 발전 기회를 누릴 수 있었다. 모든 아이디어는 어떤 독립된 공간에서 잉여의 시간을 보내며 사유하고 있는 어느 평범한 사람들로부터 나오기 시작했다.
사유적 공간이 존재한다는 것은, 당장의 삶의 치열함과 생사의 갈림길에서 잠시간은 벗어나 차근차근 지난 시간의 사건들을 정리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시간이 없이 사는 것은 동일한 일들의 반복에서 경험하는 권태와 매너리즘에 불과하다. 표면적으로 그러한 삶과 다른 생물들과의 삶과 비교했을 때 근본적인 차이를 발견하기 힘들다. 인간답게 살 수 있다는 것은, 그에게 사유의 정리를 할 수 있는 공간이 주어져 있고 그것을 향유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바로 그 공간을 이야기하는 것이 내가 여기서 하고자 하는 일이다.
나는 머릿속에서 공간 하나를 떠올려 보았다. 이런 작업은 내가 잠자리에 들기 전에, 혹은 기차를 타고 가는 중 창가에 턱을 괴고 앉아서 하는 행동이기도 하다. 나만의 공간을 만들어보는 일은 언제나 즐겁다. 비록 10억 원 이상은 있어야 구할 수 있는 서울 내 그럴싸한 아파트를 소유하여 그곳에 살지는 못하지만, 상상 속에서 나만의 공간을 이리저리 만드는 일이야 얼마든지 해볼 수 있는 일이다. 그 공간을 만들기 위해, 기초부터 완성된 공간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들을 찬찬히 살펴보기로 했다.
기초를 위한 작업에서, 우선 이 공간이 공공의 용도인지 개인적인 용도인지를 우선 결정하기로 했다. 사유를 위한 ‘나만의 공간’으로서의 의미가 중요하기에, 외부인에게는 출입이 허용되지 않은 그런 개인적인 용도의 공간이어야 할 것 같다. 이것은 버지니아 울프식 표현으로 ‘자기만의 방’이 될 것이다.
울프가 그의 에세이 『자기만의 방』에서 20세기 초 여성의 자립적인 삶을 위해서 제시한 필수불가결한 조건 두 개는 일정한 수입과 자신만 점유하여 사용할 수 있는 그런 독립적인 공간이었다. 자기만의 방은 원시인이든 현대인이든 실존을 영위하는 개별적인 인간 모두에게 필수적인 공간이다. 자기만의 방에서 인간은 성실하고 꾸준한 사고의 배양 작업을 이어간다. 인간의 머릿속에 있는 잠재적인 사고는 아직 발아되지 않은 씨앗으로 존재한다. 이제는 사라져 버린, 옛 통일호 열차로 서울에서 부산을 왕복하는 것처럼 아주 지루한 속도로 진행되는 것이긴 하지만, 발아되기 시작한 작은 아이디어는 조금씩 자기만의 방에서 생장을 거듭하고 어느새 그것의 목적지가 되는 형태까지 도달할 것이다.
너무나 익숙하고 편안한 자기 방에서의 과정이기 때문에 그 성장의 속도가 매우 더디게 느껴질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느리지만 견고하고 원숙한 형태로 수렴할 것이다. 자기만의 방은 외부의 간섭과 위협을 방어하는 요새와 같은 온실이다.
이 안전한 온실에서 자라날 식물의 최종적인 형태는 결국 나 자신이 지향하는 모습의 결정체가 될 것이다. 그것은 곧 나의 분신이다. 이 공간은 ‘나다움’이 무엇인지를 사유한 나에게, 내 실존의 지금까지의 궤적의 추적과 앞으로의 청사진을 만드는 기회를 제공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