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ick 1. 아지트
공간에 대한 투쟁은 우리 모든 현대인들의 고민이다. 아니, 현대 서울에 살고 있는 불행한 청년층들의 고민이다. 조금이라도 더 넓은 방이 있는 곳으로 이사한다면 나만의 작업 공간을 확보하는 일이 가능할 수 있다. 그런데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시간과 노동력을 들여서 돈을 더 빠른 시기 안에 모아야 할 것이다. 시간을 들여서 돈을 더 많이 번다면, 이제는 그 마련된 공간에서 무언가 할 수 있는 시간을 이미 잃어버린 것이 되는 기막힌 기회비용의 마법을 체험하게 된다.
다른 많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나는 ‘자기만의 방’이 필요한 사람이다.
어디를 가든 나만의 아지트를 확보하는 일은 내게 작은 판타지와 같은 일이었다. 회사에서도 일정 기간 독방 사용이 허락되어 나만의 아지트와 같은 공간을 누린 경험이 있다. 내 인생에 그보다 일의 능률과 행복도가 높았던 적이 없었다. 나 같은 사람은 하루에 반나절이라도 외부의 시선이나 간섭이 최소화된 상태에서 하는 작업이 가장 큰 능률을 확보할 수 있었음을 느꼈다.
이런 혜택을 위해, 그렇다고 내가 매우 이기적이게도 다른 직원과의 완전한 단절을 바란 것은 결코 아니었다. 빈번한 회의와 소통의 시간이 있었다. 그 시간은 그 시간대로 효율적으로 보냈다. 내 작은 방을 일부러 내어 미팅룸으로 사용한 경우도 있었다. 어디든 정해진 시간에 직원이나 외부 사람과 만나 회의시간을 잘 보내고 나면 그만인 일이다.
내게 중요한 것은 나만의 공간에서 내 일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만큼 확보될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바로 그 점이 충족될 수 있었기 때문에 나는 행복했다. 솔직히 가끔 멍한 상태로 커피를 마시거나 바깥 창을 내다보며 쓸데없는 망상에 빠져드는 시간도 있었다. 옛 추억을 떠올리거나 미래 청사진을 그려보는 잉여로운 시간을 보낼 때가 종종 있었다.
회사 입장에서는 아니꼬운 일이겠지만, 나는 오히려 그런 시간을 회사에서도 가질 수 있음으로 일의 능률이 더 향상되었다고 믿는 편이다. 여기서 자기만의 방이 주는 진정한 의미는, 자율성이 확보된 인간이 자기만의 방을 가졌을 때, 바로 울프가 말한 그런 식의 자립적인 실존이 빚어내는 아름다움이 실질적인 생산성 또한 보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근무 환경이 아지트화 되었을 때 갖는 가장 큰 장점이 이것이다. 마치 내게 주어진 모든 일들이 ‘내 일’처럼 느껴질 수 있다는 점. 그래서 나는 회사의 일을 하더라도 마치 내 일처럼 능동적이고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불행히도 대부분의 회사에서는 그러한 공간을 줄 만한 여유도 많지 않을 것이며, 그런 공간을 주었을 때의 장점보다는 단점을 먼저 고려할 가능성이 높다. 회사는 혼자 일하는 공간이 아니기에 협업과 소통이 중요하며, 그렇기에 개인과 개인간 벽이 있는 폐쇄적인 공간을 만들 어야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 그것이 자연스럽다.
실험실이나 연구실을 쓰는 사람들은 어떠할까. 모든 사무 공간이 타인에 대해 열려 있는 공간은 아닐 것이다. 한 개인에게 집중적으로 할당된 일을 적절히 수행하게끔 고안된 공간들이 없지는 않다. 실험실이나 연구실 같은 공간들은, 설령 여러 사람들이 쓰는 공간일지라도 어느 정도 개인의 독립적인 활동이 보장된 공간으로 고안되었을 것이다. 자신의 활동이 외부의 간섭 없이 진행되어야 가장 정확하고 올바른 결과가 도출되는 영역들이 있는 법이다.
가끔 몇몇 한적한 동네의 카페에 들렀을 때, 자기만의 아지트와 같이 내부 일부분을 꾸민 카페 사장들의 위트와 센스 가득한 인상적인 공간들을 마주할 때가 있다. 부암동이나 성수동 같은 곳에 있는 카페들 말이다. 이곳 사장님들은 분명 어렸을 적 아지트에 대한 로망을 그대로 지금의 삶에서 실천하는 것의 의미와 즐거움을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들임이 분명하다.
그들은 카페 한편에 자기만의 공간의 정체성과 영역을 은밀하지만 분명하게 표현하고 있다. 자신이 즐겨 읽는 책, 관심 있는 분야와 가치관을 반영한 매거진과 신문, 각종 액세서리와 문양, 다녀온 지역들의 인상적인 모습을 담은 사진이나 지도들, 글귀들.
아마 이런 것들로 하나씩 벽체와 스탠드, 벽장을 채워나가면서 얼마나 큰 뿌듯함을 느낄지 나는 충분히 상상이 간다. 예전에는 지저분한 박스와 신문지로밖에 채울 수 없었던 공간들이, 이제 적당한 경제력을 기반으로 쌓아온 경험들을 대표하는 기호 · 상징물들이 가득한 아지트로 만들어진 것을 감상하는 인생의 즐거움을 만끽하는 것이다.
아지트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결국 자신의 기호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자신이 지닌 개성과 삶의 재미난 것들을 향유하는 즐거움을 아는 사람들이다. 그들에게는 아지트가 필수적이다. 그러한 공간을 확보하여 자신의 물건과 도구들로 채워나가는 과정은 큰 기쁨이다. 수확의 때를 기다리는 농부의 마음과 비슷할 것이다. 농부는 지난 봄부터 고생하여 자신의 밭을 일구어 씨앗을 뿌리고 정성스럽게 물을 주고 가꿔왔다. 수확의 계절이 오면 그 결실을 맛보며 풍요로운 순간을 만끽한다.
‘나다움’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어떤 일을 통해 삶에서의 권태에서 빠져나와 존재에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지는 사실 그리 어려운 문제는 아닐 수 있다. ‘자기 돌아보기’의 시간을 좀 더 갖고, 자신이 사랑하는 일을 선택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선택한 일을 하는 일련의 과정과 결과물에 흠뻑 빠져들어 살아가는 것이다.
우리가 그런 기쁨을 누리지 못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버지니아 울프 시대 대부분의 여성들에 닥쳤던 문제와 크게 다르지 않다. 자기만의 방과 일정한 수입(곧 경제력)의 문제이다. 결국 사회 속에서 생계유지와 평범한 삶의 영위라는 것 자체가 일생에 걸쳐 여러 변수와 함께 해결해나가야 하는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는 실제 삶에서 그것을 매일같이 경험하고 있기에 매우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어떻게든 자기만의 공간을 논하고 그것을 어떻게 만들어가야 할지 고민하고 준비하고 싶다. 준비해야 한다. 그 고민과 준비의 과정은 자신의 실존에 직면하는 작업이다. 그것은 단순히 돌아오는 연휴에 어떤 쇼핑몰에 가고, 누구와 만나 스키를 타고 올 것인지를 고민하는 취미생활 충족을 위한 일상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각자의 주어진 일상을 넘어 보다 풍족한 자기의 삶, 지금 여기서 살아가고 있는 이유와 방향성에 대한 보다 심오한 문제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우리의 브릭을 만들어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