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ick 2. 강의실
참여적인 공간이 된 강의실을 상상해본다. 어찌 됐든 형태적으로 자신이 선택한 주제와 원하는 시간대의 강의를 듣는 기회를 제공받았다는 것, 그 사실은 강의를 듣는 사람 또한 얼마간 주체성을 가지고 참여할 수 있는 권리와 의무를 지녔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강의실에서 좋은 경험을 한 기억을 분명히 가지고 있다. 위트 넘치는 교수의 강의 시간을 떠올려 보자. 강의 시간이 가장 훌륭한 ‘쇼’가 되는 때는, 교수 본인에게서 숨길 수 없는 지적이고 깊은 사유적 과정과 과정들이 교수의 매우 자연스럽고 위트 있는 수사학이라는 매개를 통해 학생들에게 전달되었을 때이다.
묘사하거나 비판하고자 하는 주제에 대한 은유적인 비틀기와 암시, 본인 스스로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능수능란하게 수사학을 펼치는 퍼포먼스가 잘 체득된 사람의 강의에 참여하는 일은 언제나 즐겁다. 그러한 교수는 자신의 퍼포먼스로 강의실의 권태로움을 해소하는 조재이다. 학문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학생들에게 분명히 전달하면서도, 그것을 너무 무겁거나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형태가 되지 않도록 그 섬세함에 감탄하게 된다. 바로 그런 교수들의 강의 내용을 들을 때, 우리는 강의실에서 예상치 못한 활기와 기대감으로 강의에 능동적으로 참여하게 된다.
텍스트의 만연함 속에서, 그것들 중 일부를 선별하여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자신의 개념을 규정하는 작업은 오롯이 능동적으로 강의실에 참여하고 있는 학생의 몫이다. 이것을 나는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흐름 속에서 자신만의 맥락과 의미부여를 만드는 독자의 행위에 비유하고 싶다. 이 작품에서는 의식의 흐름에 따라 이야기의 끝머리를 계속 이어 여러 가지 생각들을 연상하게 만드는데, 독자는 잠깐의 딴생각으로 방향성을 잃고 텍스트의 바다 위를 정처없이 표류하게 된다.
능동적인 독서 참여자는 그 텍스트의 범람 속에서 자신만의 산책로를 찾아낸다.
그리고 개념을 정의한다.
그는 학과 과정과 진로가 이미 정해진 것 마냥 답습하는 학점 로봇같은 권태로운 존재가 아니다. 그는 자유로운 사고의 가능성을 지닌 주체자가 되어, 자신이 뛰어다닐 공간을 규정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가게 된다. 그곳을 둥그런 원형으로 만들지, 아니면 사각형으로 만들지를 결정하는 존재로 말이다.
자유로운 사고의 가능성이 생겨났을 때, 우리는 의외로 생각의 꼬리를 물고 평소에 생각지 못한 소재, 어떤 특정한 행위를 하기 위한 아이디어의 단초를 떠올릴 수 있다. 이것은 강의실이라는 브릭에서 경험할 수 있는 혜택이자 행운이다. 오히려 끝도 없이 적막한 사찰이나 성당, 혹은 아무런 특별한 수사학적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 도서관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강의실만의 공간적 특권이다. 사고의 단초는 교수의 강의에서의 수사와, 교재의 특정 항목과 단락과 텍스트를 짚어주는 행위를 통해 끊임없이 학생에게 제공된다. 학생들은 강의의 흐름을 완전히 놓치지 않고 능동적인 참여와 사유의 적극성을 발휘했을 때, 새 가능성의 지평선을 발견할 수 있다.
강의실이 창의적인 내용으로 가득 채운 재생지가 되기 위해서는, 강의에 참여한 사람들에게서 얼마간 주체성이 발휘되어야 한다. 강의실은 수많은 서로 다른 주제의 강의, 그리고 강의자-참석자에 의해 수차례 다른 옷을 갈아입는 공간이다. 그렇기에 재생지와 같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재생지는 얼마간 다시 새로운 내용으로 작성하는 기회가 허락된 종이이다. 언젠가 다시 누군가의 새로운 이야기를 통해서 채워지기 전까지 자유롭게 새 그림을 그려나갈 수 있다. 강의실은 아직 광활하고 무한대로 뻗어나 있는 공간에서 나의 방향성, 나의 실존적 고민을 위한 사유를 위한 ‘자기만의 공간’의 형태와 범위를 정할 수 있는 공간이다. 내 공간을 직사각형 공간으로 설정하겠다는 바로 그 행위, 그 행위는 강의실에서처럼 능동적으로 자신의 영역과 방향성을 설정하는 행위에 대한 메타포이다.
강의실에서의 권태를 극복하고 능동적으로 자신의 학문을 찾아나선 학생들은, 그 공간에서 대략적인 자기만의 영역의 범위와 형태의 규정을 달성하기만 해도 성공적인 시간을 보냈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물론 자신이 규정한 개념에서 구체적인 뼈대를 구축하고 살을 붙여나가는 작업은 강의실 밖에서 이뤄질 것이다. 어쨌든 이곳 강의실에서는 적극적인 참여를 통한 사유의 행위를 해보자. 막막하고 권태로운 두세 시간의 압박 속에서도 번뜩이는 생각거리를 머릿속에 그려보자. 그렇지 않고 그저 점수만 따고 오는 공간으로 한정 짓는다면, 정말 우리의 대학교 4년은 지난 학창 시절의 악몽 같은 교실 속에서 했던 일을 오히려 비싼 돈을 더 주고 다시 하는 경우밖에 더 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