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부, 바이올린, 글쓰기 등 우리가 꾸준히 해야하는 것들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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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에서의 삶은 언제나 반복의 연속이다. 출퇴근 시간대에 언제나 차로 가득차 있는 도로, 지하철의 수많은 사람들, 어김없이 북적거리는 금요일과 토요일 저녁의 유흥거리. 너무나 익숙해서 우리는 도시에서의 평일과 주말, 공휴일, 명절의 모습이 어떻게 변모해가는지 거리의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양태만을 살펴봐도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을 정도이다.
물론 혹자는 도시와 대척점에 있는 공간적 대명사라고 할 수 있는 '시골'에서의 삶도 반복의 연속인 것은 다를 바 없다고 할 수도 있겠다. 시골에서 우리가 농사를 짓는다면, 그것은 그 자체가 도시에서 출퇴근하는 사람들의 삶처럼 분명한 고정되고 반복된 '일상'의 하나로 간주해도 무방할 것이다. 하지만 내가 여기서 말하는 도시, 특별히 대한민국의 서울이라는 도시에서의 일상은 이러한 단순한 구분법을 초월하는 특수성을 내포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서울. 앞으로 계속 말하고 싶은 것은 바로 그 서울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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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에서의 삶은 언제나 반복의 연속이다 - 그러나 우리는 이것을 단순히 꾸준함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일상'이라는 말은 적합하다고 할 수 있다. '날마다 반복되는 생활'이라는 일상이라는 단어의 사전적 의미에서 봤을 때 그러하다. '꾸준함'이라는 말에는 어떤 특정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끊임없이 정진한다는 뉘앙스가 부분적으로 내포돼 있다. 목표라는 것은 방향성을 가지고 있다. 사람들은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서 속도를 점점 가속시킬 수 있다. 가속도라는 것 자체가 물리학적으로 방향성을 같이 고려해야 하는 '벡터'라는 물리량이 포함된 개념이다. 방향성을 가지고 꾸준하게 발전시킬 수 있는 힘을 '꾸준함'이라는 단어가 표현하고 있다. 목표 달성을 위해 정진하는 삶, 꾸준히 자신의 목표를 향해 점점 더 나아갈 수 있는 사람, 그러한 종류의 사람은 분명히 사회적으로나 인류학적으로나 훌륭한 사람 등의 긍정적인 범주에 포함시킬 수 있는 종류의 사람일 것이다. 자신의 소박한 영국식 화단에 매일같이 물을 주고 관리해 주는 주부, 경험의 지평을 넓히고자 꾸준히 어학공부에 매진하는 학생, 공모전에 출품할 작품을 위해서 밤샘 작업을 마다하고 글을 쓰고 있는 예비 문인들의 삶 속에서 그러한 종류의 꾸준함을 보이는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우리 주변에서 찾을 수 있다. 누가 그러한 꾸준함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비난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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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에서의 꾸준함은 일상의 늪에 빠져버려 무기력한 행위가 되었다. 우리의 평범하고 소박한 삶에서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가치 있는 일들이 일종의 사치가 되어버리고, 당장의 물질적 생산과 효율성을 보이지 않는 일들은 무의미한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도시에서의 삶에 근본적인 문제가 자리잡고 있다. 현재 하고 있는 일들의 거의 모든 것들이 또 다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항상 수단으로밖에 작용할 수 없는 상황의 연속이다. 많은 서울의 청년들이 도서관이나 학원을 왕래하며 공부를 하고 있지만 그들이 전부 학생이라서 그런 것이 아니다. 소위 '취준생'이라는 범주로 분류될 수 있는 사람들이 실질적으로 가장 많이, 그리고 굉장한 꾸준함으로 책을 들여다보고 있는 사람들이다. 고용 불안정의 영향으로 많은 직장인들이 퇴근 후에도 이직 준비나 창업 준비를 위해 또 다른 기술 연마나 자격 취득을 위해 꾸준히 공부하고 있다. 잠정적인 다음번의 목적을 위한 꾸준함이다.
이러한 꾸준함에는 방향성이란 없다. 당장의 먹고 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현재 수행하고 있는 수단적인 일들에 보이는 꾸준함은 목적을 향한 뚜렷한 방향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렇게 준비하다가 조금 더 나은 일자리에 대한 기회, 고용 시장의 변화, 연봉 재협상 등의 사건이 발생하면 언제라도 그 꾸준함을 포기하고 이리저리 금세라도 선회할 수 있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이러한 태도를 비난할 수는 없을 것이다. 누구든 먹고 사는 문제가 가장 중요한 것이니까. 하지만 한 도시를 구성하는 사람들의 상당한 수의 사람들의 일반적인 삶의 모습이 이러한 것이라면, 이때는 사회적인 문제로 환원시켜서 비판적으로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도시의 실제의 모습이 이러하다. 우리는 항상 열심히 살지만, 단 한 번의 완결도 경험하지 못한다. 항상 또 다른 잠정적이고 일시적인 목적 달성을 위해 철저히 수단적인 성격만을 지닌 학습이나 기술 연마를 계속적으로 반복할 뿐이다. 우리의 일상이 이러하다.
#3
바이올린 위에 샇인 먼지가 너무 심해서 오랜만에 한 번 닦았다. 내 바이올린 실력은 취미로 개인 교습 선생님에게 배우다 결혼 이후 그만두었던 4년 전과 동일하다. 아니, 오히려 퇴보했을 수도 있겠다. 가끔씩 뜬금없는 고상한 것들에 도취되어 여러 가지 내가 그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을 간구하다가 바이올린을 꺼내들고 가장 자신 있는 곡을 연주해 본다. 그러고선 전문가의 냉정한 판단도 아닌 평범한 사람들의 귀를 기준으로 판단했을 때도 결코 훌륭하지 않은 소리를 듣고 적잖이 실망하곤 한다.
나는 최소한 학부 시절에 이미 내 경험과 배움을 통해서 악기를 배우는 일, 다양한 언어를 습득하는 일, 글쓰는 일, 수영이나 테니스 등 평생 스포츠를 하나 배우는 일 등에 있어서 꾸준하게 이어가는 습관을 가지는 일의 중요성과 그 의미를 정확하게 깨우쳤다고 말할 수 있다. 당장의 경제성과 생산성이 없는 일이라도, 우리의 삶에 있어서 진정한 풍요로움과 행복을 위해서 해야하는 일들의 종류와 접근하는 방법을 사람들이 모르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현재의 삶 속에서 당장 해결해야 하는 문제들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선택해야 하는 수단적인 꾸준함을 위해 이 모든 고상한 것들은 그야말로 사치스러운 것들로 전락해버리고 있다. 우리 청년 세대들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경험하고 있는 일이다.
퇴근 이후의 우리의 삶은 너무나 똑같다. 누군가를 만나서 술을 얼마만큼 마시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퇴근 후 직장 동료나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신세 한탄이나 상사 험담을 할 수 있는 자리라면 좋은 안주와 소주 2병, 그게 아니라 혼자서 당장의 비루한 삶에 대해 조용히 고찰해보고 싶다면 국밥과 소주 1병, 이런 식의 조합에서의 차이만 있을 뿐이지 언제나 얼마만큼은 취해있는 것은 똑같다. 어떻게 보면 현재의 고단함과 권태로운 생활에서 느끼는 스트레스를 핑계로 더욱 더 지금 몰입해 있어야 할 꾸준함을 외면하는 것 같기도 하다. 퇴근 후 한국사 교재를 들고 펼 때, 작은 아르바이트가 하나 생겨 늦은 밤까지 처리하고 나름의 뿌듯함으로 다음날 출근을 위해 잠자리에 들 때마다 하나의 생각이 허전한 마음을 훑고 지나간다. '작은 하나의 일이라도 내가 행복할 수 있는 일을 꾸준히 해나가야 한다....' 당장의 생산성은 없지만, 그것이 미래의 내가 무너지지 않게 붙잡아 줄 수 있을 것이다.
#4
오랜만에 바이올린을 들고 연습을 시작했다. 저녁이라고 하기에는 애매한 늦은 오후다. 아내가 시끄럽다고 한다. 옆집에 방해가 될 수도 있다는 이유도 들면서 연습을 막았다. 꾸준함은 당사자의 의지가 생겼다고 해서 반드시 유지되는 것도 아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