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ick 3. 미술관
그림을 감상하는 것은 어느 정도 인내력이 필요한 일이다. 벽면에 걸려 있는 미술 작품을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하는 일은 굉장히 지루하고 얼마간 수고스러움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사람이 없어도 없는 대로 힘이 들었다. 넓은 미술관 공간에서 정처 없이 이리저리로 왔다갔다 하며 표류하듯이 움직이곤 하기 때문이다.
어렸을 적에 국립중앙박물관에 갔던 기억이 난다. 넓은 전시 공간에서 알기 어려운 그림이나 유물, 그리고 읽어도 잘 이해가 되지 않은 글씨들을 접했을 때의 당혹감은 어린 시절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고구려, 백제, 신라는 볼 때마다 어느 나라가 어느 나라인지 헷갈렸다. 별 특징 없어 보이는 여러 종류의 토기가 수십 개씩 진열되어 있는 것을 보는 일은 항상 지루하기 그지없었다.
미술 감상이 재밌으려면, 작가와 작품에 대한 기본적인 배경 지식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다 커서야 깨달았다. 이것은 베토벤 같은 클래식 음악이나, 코엔 형제와 같은 작가주의 영화를 보기 전에 준비해야 할 자세와 거의 비슷한 개념이다. 미술사조를 어느 정도 배운 상태에서야, 혹은 최소한 그 작가가 누구이고 어떤 특징을 지니고 있는지 미리 살펴본 후에야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이다.
또 어린 시절에는 미술관 특유의 적막함이 답답했다. 대학 시절까지만 해도 나는 클래식 음악 감상보다도 미술관 작품 감상이 더 지루하게 느껴졌다. 지루함의 정도로만 따지자면 국립중앙박물관 선사시대 코너에 비견될 수 있는 오페라 <외투>나 그레고리안 성가조차 내게는 오히려 덜 지루한 대상이었다. 최소한 그곳에는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고, 그 음악을 만들어내는 여러 사람들의 ‘퍼포먼스’를 보는 재미가 있기 때문이다. 나는 미술관이 그만큼의 역동성은 부재한 공간이라고 생각했다.
미술관이라는 공간에 매력을 느끼게 된 시기는 내가 전시기획사에서 근무한 이후부터이다. 전시관 내에서 작품을 설명하는 역할부터 근무를 시작한 나는, 차츰 전시 내 공간과 콘텐츠를 구성하고 큐레이션하는 일에 참여하고 실무를 배워나가게 되었다. 전문적인 학예사는 결코 아니지만, 나름의 미술관 전시 기획에 대한 주관을 정리해볼 수 있게 되었다. 일을 하면서 많은 국내 전시관을 돌아다녀 보았고, 해외 여행 중에도 항상 주요 도시 내 위치한 미술관이나 박물관을 방문하면서 경험과 감상의 노하우를 쌓아갔다.
미술에서 말하는 가치, 혹은 그것을 풀이하는 방법론 자체는 인문학적 사고의 매카니즘과 닮았다. 미술과 미학에서 정의하는 세계는, 내가 전공한 인문학적 배경에서 논한 많은 이론과 개념들에서 차용한 것이라는 점에서도 미술 장르에 금세 친근해질 수 있었다. 미술사조에서 작가들이 ‘미술을 통해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가’ 하는 점은 시대에 따라 변모해왔다. 그 환경과 맥락 속에서 작품을 분석하고 주제의식을 부여하는 것. 그것이 미술관에서 하는 주된 작업 가운데 하나이다.
미술사조에 대한 학습은 내 전공이었던 서양사학과의 학문 소재에 대한 향수마저 불러일으켰다. 미술은 여러모로 당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적 삶에 깊게 관여했다. 어떤 시절에는 종교적인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 미술이 활용되었다. 중세 미술이 대표적일 것이다. 어떤 시절에는 왕권이나 정권의 절대성을 강조하기 위해 미술이 쓰였다. 고대 이집트나 바로크 시대를 생각하면 된다. 어떤 시절에는 유미주의적 미술이, 어떤 시절에는 사회적인 담론을 표출하는 흐름 속에서, 미술은 그 작가의 생각을 각 시대의 미술 양식에 맞추어 드러내 보이는 ‘디스플레이’가 되었다.
예술이라는 것은 그 자체적인 미학성만으로 영롱한 빛을 발한다. 예술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선사하거나 번뜩이는 영감을 선사하는 방식으로 계몽하고 아이디어를 제공한다. 그러나 동시에 예술은 어떤 맥락에서 어떻게 다뤄지냐에 따라 또 다른 의미와 기능을 부여 받아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 예술은 절대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상황과 맥락에 따라 다르게 수용되고 해석되는 상대적인 대상인 경우가 많다.
그런 차원에서 미술 작품이 어떤 공간에서 읽히느냐도 중요한 문제가 될 수 있다. 음악이 어떤 역사와 문화적 가치를 지닌 콘서트홀에서 연주되는지에 따라 그 의미가 다르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미술과 같이 정적으로 존재하며 특정 물리적 공간에 고정되어 위치한 예술 장르 같은 경우 공간과의 연계성으로 발생하는 의미가 더욱 중요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