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를 아우르는 규칙

Brick 3. 미술관

by moment books

Brick 3. 미술관



전체를 아우르는 규칙


각자가 선호하는 삶의 방식이 있을 것이다. 무조건적인 방임을 원하는 사람이 있다. 어떤 사람은 일의 순서라는 것이 명확한 사람이어서, 그 순서에서 벗어나 충동적인 어떤 시도가 개입되는 것을 못 견디는 사람이 있다. 이런 칸트적인 사람은 규칙이라는 것이 삶의 매우 중요한 작동 방식이자 원칙이 된다.


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큰 틀에서의 엄정한 규칙을 세우기 좋아하고, 그것의 테두리 안에서는 여러 융통성이 적용될 수 있는 방식을 선호하고 이렇게 살아가는 형태에 익숙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삶에 있어서 그것이 법적인 것이든 양심에의 호소이든, 반드시 지켜야 할 규칙은 있다. 그것은 개인의 신념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고 그것이 크게 어긋나지 않고 법에 저촉되지 않은 범위 내에서 개인의 자율성은 보장되어야 할 것이다. 개인의 신념은 하나의 정언명령이자 삶의 의미가 무너지지 않게 든든히 지탱해줄 만한 큰 기둥과 같은 것이다. 이것은 살아갈 때 우리가 마주하는 여러 국면에서 우리에게 암묵적으로 어찌어찌해야 함을 안내하고 감독하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개인의 신념이라는 것이 모든 세세한 일들을 프로그램화시켜 통제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힘들 것이다. 삶에서는 다양한 변수를 경험하고 자연스럽게 흘러가듯 지나치는 단순한 일들이 많다. 우리의 삶의 구체적인 부분들은 우리의 자유의지에 따라 순간적인 판단에 의해 실행되는 일들이 많다. 오늘 어떤 교통수단을 타고 목적지에 도착할 것인지, 오늘 점심에는 무엇을 먹을 것인지, 친한 친구의 다가오는 생일에는 어떤 선물을 할 것인지에 대한 것 등을 말이다. 이러한 단순한 일들에 대해 우리는 큰 고민 없이 선택하고 행동한다. 물론 당연히 그러하다. 많은 일들은, 마치 신체의 자율신경처럼 대뇌의 직접적인 통제를 받지 않고 스스로 몸의 항상성 유지를 위해 작동하는 방식처럼 일어나고 지나갈 것이다. 우리의 행동 중에서도 단순반복적인 행동에 가까울수록 그것과 비슷한 방식으로 일어날 것이다.


나는 여기서 좀 더 우리의 인지적 사고에 의한 행동에 관련된 부분에 주목하고 싶다. “사람에게 진실해야 한다”는 ‘정언명령’을 생각해보자. 어느 날 업무를 위해 만난 사람에게 새로운 사업건을 이야기해야 할 때, 어떤 이는 자신과 같이 일했을 경우의 이점을 말할 때 굉장히 과장된 이야기로 거짓된 정보를 덧붙여 상대방을 설득하려 들 수 있다.


반면 어떤 이는 위 정언명령을 철두철미하게 지키려는 사람이라고 해보자. 똑같이 자신과 일했을 경우 얻을 수 있는 이점을 말한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자신이 가진 것을 효과적으로 더 돋보이게 한다는 취지에서 거짓말하려 들지 않을 것이다. 그는 자신이 말하고자 바의 정확한 범위를 설정하고 이야기를 풀어가고자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다.


간단해 보이는 의사결정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사람은 알게 모르게 자신의 신념에 맞는 행동을 일관성 있게 행동으로 옮기며 살아가고 있다. 오히려 그러한 범주에서 벗어날 때 한 개인은 내면의 혼란을 겪게 된다. 이것인 자연스러운 우리들의 모습이다. 사고 체계에 있어서 ‘개인의 신념’은 하나의 의사결정의 사용설명서이자 보이지 않는 감독자가 된다. 그리고 우리는 자신이 엄격하게 정해놓은 규칙에서 아주 외면하지 않은 범위 내에서의 융통성과 자유를 발휘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작품이 배치되는 규칙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미술관의 공간 개념이다. 미술관은 큐레이터가 설정해 놓은 가장 큰 대주제에 의해 일차적인 작품의 취사선택이 이뤄진다. 이번 전시의 주제가 <후기인상주의자가 바라본 세계>라면, 모네와 르누아르의 수도 없이 덧칠해진 온갖 종류의 색채보다는, 고흐와 고갱의 명료하면서도 자신이 바라본 세계를 재해석한 특정 색채들로 완성된 작품이 주로 선택될 것임을 우선 예측해볼 수 있다. 전시 주제에 맞추어 작품 구성을 한다는 전제에서 말이다.


예술가의 작품은 하나하나 독립적인 의미와 배경을 지니고 있다. 고흐가 생 레미에서 그린 작품들의 화풍과 노란색 물감의 적극적 활용은, 그의 당시 정신 상태와 세계를 바라보는 그의 관점을 반영하고 있다. 각각의 그림들은 각각의 스토리텔링이 가능하다. 그것은 예술가가 작품과 완전히 독립적이거나 별개일 수는 없다는 관점에서 그러하다(현대미술에서는 예술의 절대화라는 시도가 있기도 했지만). 이것은 작가의 배경과 작품이라는 불가분의 관계를 고려하여 공간을 구성해야 한다는 하나의 정언명령이 된다.


개별적인 작품들은, 미술관에서 작품에 새로운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고 공간을 디자인하는 사람들에 의해 또 다른 옷을 입고 관람객 앞에 등장할 때가 있다. 그 극적인 변모는 전시 기획자, 큐레이터, 전시 디자이너와 같은 전시관 주요 구성원들의 작업에 의해 이뤄진다. 어떤 특정 시기의 배경 속에서 탄생한 작품들은 전시 구성원들의 전시 구성 작업을 통해 새로운 맥락(Context) 속에서 새롭게 해석된다. 모네의 수많은 명작 가운데 20세기 초반 백내장 당시에 그렸던 작품들이 추상미술이나 초현실주의적 미술의 관점에서 다뤄질 수 있고, 프리다 칼로의 작품들을 멕시코 역사, 심리학, 순수 채색 기법이라는 서로 다른 주제에 따라 서로 다른 공간에 새롭게 분류되어 전시될 수 있다.


지금 우리 시대의 ‘이슈’가 무엇이며 어떤 담론을 통해 관람객과 소통할 수 있을까 하는 점이 전시 구성원들의 주된 고민거리이다. 작가는 작품의 창조자로서, 그리고 전시 구성원들은 작품의 ‘전시’ 작업의 적절성을 위해 하나의 작품을 둘러싸고 고민하는 것이다.



브릭 3. 미술관.jpg <원본 이미지 출처: Shutterst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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