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ick 3. 미술관
미술관은 잘 구획된 공간 속 작품들을 감상하는 공간이다. 잘 기획된 미술관을 방문할 때마다 이 전시가 만들어진 과정에 궁금증을 가지게 된다. 이 전시의 기획자, 그리고 큐레이터는 이 전시의 기획을 어디에서 출발했을까.
잘 될만한 전시를 만든다는 마케팅적인 측면이 그 시작점일 수 있다. 만약 일반적인 상업전시라서 매출 발생이 가장 중요한 목표가 된다면, 요즘 타깃이 될 관람객들에게 호소할 수 있는 세련된 전시를 목표로 기획을 시작했을 것이다. 또 소속되어 있는 기관의 연간 계획에 따라 어떤 정해진 주제의 전시를 개관할 시점이 되어서 기획할 수 있다. <OO 100주년 기념 전시>와 같은 제목과 함께 말이다. 전시가 기획되는 시점에서는 그 목적성과 방향성이 가장 중요할 것이다.
전시의 성격(기획전의 목적과 제목, 그리고 작가의 작품 선정)이 정해졌으면 이제 그것을 구체적인 공간에 채워 넣는 작업이 진행되어야 한다. 이 장에서 관심 있게 다루고자 하는 부분이다. 어떤 목적성으로 이 미술관이라는 브릭을 채워 넣을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어떤 방법으로 수행할 것인가.
전시기획사에서 근무하게 된 계기로 여러 미술관과 박물관을 거의 의무적으로 방문하는 습관이 생겼다. 각 전시관의 구성과 주제 관찰을 통해 나름의 분석을 노트에 기록하는 습관을 갖게 되었다. 나름의 미술관 구성에 대한 주관을 키워나가는 중이다. 가장 정석적인 방법은, 아무래도 전시 기획의 주제와 작가에 따라 공간을 구성하고 작품을 그에 맞게 배치하는 방법일 것이다. 이 작업은 소박해 보이지만 장엄함이 꽤나 서린 창조행위이다.
공간 배치 이전에 개별적인 작품 분석을 통해 이 작품들이 어떤 배경 속에서 탄생했고 어떤 메시지를 말하고 있는지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큐레이터는 그러한 분석을 바탕으로 일차적인 작품 분류를 시도할 것이다. 사실 많은 전시에서의 작가들의 작품 분류와 공간 구성은 시대적인 분류법에 따른 것이다. 작가가 부여한 기본적인 작품 개념과 배경, 그리고 작가 개인의 발전 과정을 이것만큼 일관적이고 객관적으로 일정한 공간 안에서 드러낼 수 있는 방법은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작품에 대한 이러한 기본적인 이해와 분석 작업이, 마치 매일의 습관처럼 간단히 해치울 수 있는 그런 단순한 일은 아니다. 어떤 ‘전형성’을 띤 전시라 할지라도, 각 공간별로 구획화된 작품들의 분류 기준, 그리고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강약 조절은 전적으로 그 전시를 구성하는 기획자에 달려 있다.
나는 전시관에 갈 때마다 각 공간별 입구에 구성된 전시 서문 등의 텍스트를 주의 깊게 읽어본다.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대중적인 작가라 할지라도 전시마다 적혀 있는 그 내용은 언제나 다르고, 또 달라야만 하는 것이다. 큐레이터가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작품을 해석한 방법론적 틀, 그리고 감상에 의한 영감에 따라 새로운 해석이 가능해진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그 이야기가 기존의 작가와 작품에 대해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를 전해야 한다는 법칙이 있는 것은 물론 아니다. 그러나 본 기획전시의 성격과 지향성에 맞추어, 곧 그 ‘개념’에 맞추어 작품과 작가의 분석을 위한 관점의 부분적인 변화와 “다른 방식으로 보기”(미술 이론가 존 버거의 표현대로)는 필수불가결한 요소가 된다. 큐레이터의 이런 활동으로 작품의 폭과 넓이는 더해지고, 알지 못했던 영역들이 새로이 개척되는 작업의 가능성이 열린다.
다수의 작가가 포함되어야 하는 전시가 있다. 특정한 사회적 담론에 따라 화풍이나 시대적 배경이 서로 다른 작품들을 선정하여 새롭게 재분류해야 하는 경우의 전시이다. 여기에서의 큐레이터의 역량과 퍼포먼스는 앞선 경우보다 더욱 중요해지고, 전시의 질과 흥미의 정도도 차이가 발생하게 되는 것 같다.
이제 우리들에게도 ‘2년마다’라는 의미를 지닌 비엔날레 전시를 방문한 관람객이 많아져서 익숙해진 시기에 접어든 것 같다. 비엔날레와 같은 전시는 하나의 대주제와 담론을 설정한 후, 그에 맞추어 수많은 기획자와 작가가 서로 씨름하여 거대한 공간을 하나의 예술체험을 위한 공간으로 탈바꿈하고 관람객과 소통의 장을 형성한다. 이러한 거대한 프로젝트에서는, 아마도 추측이지만 여러 생각들의 충돌과 갈등이 불가피할 것이다. 어떤 기준으로 작품을 제작할 것인가. 그리고 어떤 기준으로 공간을 구성하고 작품을 배치할 것인가. 이런 생각들이 그 거대한 브릭 안에서 자유 운동을 하며 부딪히고 융합되고 조화될 것이다.
회사에서 제안서를 쓸 때, 나는 연역법적인 방법이 정석적인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떤 주제나 컨셉에 대한 내용 확정이 있으면 바로 아래로 여러 카테고리가 생겨난다. 그 뒤를 이어 텍스트와 이미지, 실질적인 실행 방안과 일정 등이 덧붙여 이어나가면 된다. 누군가는 이러한 방법론에 대해 다른 주장을 들고 나왔다. 자신이 쓰는 입찰 제안서는 귀납법적인 방식으로 작성한 것이며 이것이 훨씬 효율적인 방법이라는 것이다. 물론 입찰 제안서이기 때문에 용역이나 사업건의 대주제는 이미 정해져 있을 것이다. 이것은 분명 고정적인 것이나, 세부 내용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는 얼마든지 순서를 뒤바꿀 수 있다.
세부적인 자료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각각의 항목들을 상위 항목에 따라 분류하기 이전에 원재료가 되는 정보들을 분석해본다. 그럴 때 생각지도 못한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때 그 아이디어 기반으로 상위 항목을 구성해 보면, 해당 과제 수행에 있어 더욱 신선한 방안들을 만들어내어 제안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결국 ‘소싱’하는 자료들이 풍성하고 양질의 것일수록 유리하다는. 그것들을 분류할 수 있는 방안들은 여러 갈래로 파생될 가능성이 생기고, 더욱 번뜩이는 아이디어와 실행 방안으로 무장된 제안서가 나올 수 있다. 그럴듯한 이야기였다.
앞에서 서술한 전시 구성원들의 미술관 구획짓기의 과정은, 대주제가 설정된 상태에서 그 하위 주요 주제들을 세분화하여 작품을 배치하는 구획짓기 형태가 될 것이다. 하지만 위 회사 팀장의 입찰제안서를 쓰는 방식처럼 귀납식으로 정리하며 전시 공간을 구성하는 방식도 유효하게 작용할 때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특정 주제가 대주제로 정해진 상태에서 그 주제에 맞는 세부 콘텐츠들을 정할 수 없는 문제에 봉착할 때가 있다. 분명 이 작가에게 이런 주제의 기획전을 선정하면 기가 막힐 정도의 절묘함과 적합성이 보장되는 안정적인 전시 연출이 분명한데, 여러 가지 조건에 의해 그렇지 못한 경험을 하게 될 때도 있다는 것이다.
그 이유로는, 세부 주제에 적합한 개별 작품들이 확보되지 못해서일 수도 있다. 그 주제에 맞는 작품을 선정했으나 그것이 모든 것을 보장하지 않는다. 또 다른 세부 주제에서 포함될 여타 작품들과 비교하면 그 작품들이 그리 뛰어나지 않거나 크게 부각되지 못할 작품인 경우, 혹은 임대할 작품의 미술관 사정으로 확보 불가능한 경우도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럴 경우, 내 손 안에 있는 작품이나 콘텐츠에서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것이다. 미리 정해놓은 주제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역으로 콘텐츠의 분석을 통해 구획짓기 작업을 하는 것이다. A라는 작품이 B라는 작품과 조우했을 때, 그 결합은 큐레이터의 “다른 방식으로 보기”에 의해 또 다른 의미를 만들어낸다. 작품에 대한 새로운 정의는 새로운 공간에의 정의로 이어진다. 공간은 새롭게 재구성되고 서로 다른 의미의 옷으로 갈아입는다. 벽체의 수와 동선의 형태가 달라지고, 공간은 이리저리 가감되고 서로 다른 내용물을 수용함으로써 새로운 의미를 관람객에게 전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