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ick 4. 미술관
앞서 글에서 미술관에서의 구획짓기를 연역 · 귀납적인 방식의 두 가지 형태로 정리해봤다. 그러한 방법론적 구분도 일종의 분석적 틀을 위해 예시로 든 것으로서, 미술관의 구획짓기란 결국 그 공간에 대한 개념을 정의하는 주체가 설정한 정언명령에 따라 일관된 내용으로 조화를 이루게 된다는 사실은 변함없다. 미술관이라는 공간을 기획하는 사람은 작가의 작품에 내재되어 있는 메시지의 절대성, 공간적 한계, 행정적 내규, 마케팅적 이슈, 개인의 철학과 기호 등의 각종 요인들이 버무려진 상태 가운데 ‘반드시 그러해야 함’의 실마리를 찾음으로써 공간과 그것을 메우는 콘텐츠를 분명하게 결정해야 한다.
미술관에서의 작품 배치는 이러한 물리운동과 비슷하다 - 최초 설정한 어떤 개념(공간의 주제)이 원자처럼 공간 중심에 위치해 있다. 그 원자의 중력에 의해 요소(작품)들은 다른 곳으로 이탈하지 않고 그 영역 주위를 운동한다. 작품 자체에 개성이 존재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전체를 아우르는 특정 주제’라는 원자의 중력 영향력 안에서 발휘되어야 하는 “구획지어진 개성”인 것이다. 우리의 개별적인 행동들이 아무런 맥락 없이 발생하는 것처럼 보여도 결국 개인의 신념이라는 정언명령의 분명한 영향을 받아 표출되는 것처럼 말이다.
미술관은 개성과 주제 사이에서의 긴장을 포괄하는 공간이다. 개성은 작가의 작품이 만들어졌을 때 태생적으로 내재하고 있는 그 작품만의 유일성, 독자성이다. 그리고 그 작품을 자유롭게 감상하는 개인의 해석도 개성이다. 모든 사람은 자신의 삶과 그것으로부터 정립한 특정 관점, 그리고 지적 배경을 기반으로 작품을 감상할 것이다.
반면 주제는, 공간을 구획짓고 작품을 새롭게 배치함으로써 새롭게 창조된 개념이다. 전시 기획자나 큐레이터가 그 공간 내 작품 전체가 ‘OO는 이런 것이다’, ‘이것은 OO라고 불려야 한다’라는 정언명령에 의해 기능하도록 특정 역할의 옷을 입히는 것, 새로운 규칙이 부여된 것이 곧 주제이다. 개성과 주제라는 두 요소는 중력과 자유운동이라는 서로 다른 힘으로 동시적으로 대립하며 긴장감을 발생시키지만, 거시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는 하나의 영역 속에서 조화와 어울림을 달성한 것처럼 보인다.
관람객은 어떻게 미술관에 접근하는 것이 좋을까. 방문한 미술관이 주제와 개성 사이의 긴장감을 적절히 조율하여 구획짓기에 성공한 곳이라면, 전시가 기획된 의도를 파악하고 전시의 흐름을 좇는 방법이 괜찮을 것이다. 구획짓기가 제대로 된 미술관이라면 하나의 정의된 개념대로 공간이 형성되었을 것이고 그에 맞추어 공간 안에 작품들은 재배치되어 전시 공간의 주제가 주는 원동력으로 생동하고 있을 것이다. 하나의 규칙이 그 영향력을 충분히 발휘하는 공간이어야, 작품(작가)-미술관(공간/기획자)-관람객(경험자) 간의 의미 소통의 가능성이 열리고 미술관은 새로운 경험의 장이 된다.
큐레이터와 기획자의 전시 공간과 작품에 대한 해석은 미술관 안에서 정언명령이 된다. 관람객은 자유롭게 움직이며 감상할 수 있는 충분한 자율성이 보장된 상태이지만, 그 공간을 지배하는 개념이 무엇인지에 대해 기민하고 냉철한 관찰을 끊이지 않고 감상하는 내내 유지해야 한다.
보다 깊은 사유와 관찰력을 지니고 미술관이라는 브릭을 향유하는 관람객이라면, 그 공간의 구획짓기가 과연 일관된 규칙 안에서 이뤄진 것인지 자체적인 판단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미술관의 구획짓기의 원리를 간파한 관람객은 그 공간 안에서 미노타우로스의 미궁 속에 빠진 불행한 인물들처럼 방향성을 잃고 정처 없이 헤매지 않을 것이다. 개념-작품이 정확한 상관관계 속에서 적절한 공간 구획이 된 곳에서는 길을 잃을 염려가 없다. 설령 동선의 복잡함으로 길을 잃더라도, 그 공간의 일관성이 주는 메시지와 작품들이 조력하여 내는(혹은 그렇게 하도록 역할을 부여받아 내는) 한목소리를 듣고 금세 올바른 맥을 찾아 감상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