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tract
우리는 세상을 인식한다. 감각기관을 통해 세상을 인식한다. 감각기관 중에는 시각을 통한 감각 작용이 가장 활발할 것이다. 가장 직접적인 대상에 대한 인식 기관이기에 가장 섬세하고 예민한 반응을 일으킨다. 시세포가 있는 망막에 빛이 들어옴으로써 우리는 사물을 인식할 수 있는데, 색상, 밝기, 거리감(공간감)을 판단할 수 있기에 대상의 외형적 특징을 거의 그대로 인지할 수 있게 된다. 우리가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자유롭게 하는 것도 그것의 물리적인 실제를 인지하고 경험할 수 있는 시각 덕택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것들을 느끼고 경험할 수 있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기관이 시각이지만 이것만으로는 세계의 전체를 이해하기에 부족하다. 실존하는 대상에 대한 전체적이고 온전한 경험은 추가적인 감각기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다섯 개의 감각기관 중 시각에 다른 감각 일부의 조합을 통해 만들어진 각종 문화 콘텐츠 마케팅을 살펴보자. 마케팅 캐치프레이즈를 선보일 때, “풍성한 체험이 있는 전시”, “공감각적 체험이 있는 공연” 등의 문구가 사용되는 것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인간은 느낄 수 있는 감각의 가짓수가 많아질수록 풍성한 체험을 했다고 느낀다. 그래서 복합적인 감각을 느낄 수 있는 체험형 문화공간들에 대한 호소가 강조되는 것이다. 이제 관람객은 보는 것만으로 즐기는 수동적 위치에 머물지 안는다. 만지고, 맛보고, 냄새를 맡고, 귀로 듣는다.
우리가 즐기는 문화 매체에서 이러한 융합적인 접근은 매우 자연스러워졌다. 시각 분야에서의 예술인 미술, 청각 분야에서의 예술은 음악이다. 이 두 가지는 우리가 향유할 수 있는 가장 대표적인 예술의 형태일 것이다. 이 두 가지 요소에서의 조합을 통해 여러 형태의 예술의 발전이 거듭되었다. 몸으로 직접 표현하는 연극, 그리고 필름으로 찍은 사진을 기계로 연속으로 재생하여 움직이게 만든 영화 등, 예술은 분화와 발전을 거듭하여 종류가 다양해졌다. 또한 다양한 감각기관들을 즐겁게 해줄 수 있는 복합적인 문화 장르로도 발전했다. 오페라나 뮤지컬, 공연 및 음악적 요소가 첨가된 전시 등이 많은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있다.
나만의 공간은 여러 방으로 구획되어졌다. 이제 그 각각의 목적성에 맞는 정체성을 부여할 차례가 되었다. 공간이 그 본연의 목적성을 달성하기 위한 필수적인 실존의 장이라고 했을 때, 그것을 가능할 수 있도록 갖춰야 할 조건들이 있다. 이 조건들은 나의 방이 그 목적대로 사용될 수 있는 조건으로 제시하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이 세상의 많은 공간들이 그 각자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아래에 제시되는 사항들로 검토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1. 그 공간은 무엇을 하는 곳인지 시각적으로 현저히 드러나야 한다.
지금은 구체적인 도구와 물건들에 대한 언급은 삼가고자 한다. 그러나 내가 제시한 나만의 주요 방 3개 각각의 성격과 목적성을 드러내는 핵심적인 요소에 대해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작업, 쉼, 그리고 글쓰기를 위한 공간을 만들고자 했다. 생계유지를 위한 공간을, 이제부터 작업실이라고 부르자. 그 공간에는 긴 테이블과 PC, 그리고 각종 자료가 정리된 큰 책장이 있다. 이 공간에 들어선 사람들은 최소한 이곳이 술을 마시는 바, 혹은 연회 장소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쉼이 필요한 공간은 거실이라고 부르겠다. 이 공간에는 긴 소파가 있다. 공부를 위한 테이블이 아닌 소파에서 쉬면서 사용하기 편리한 낮은 테이블이 하나 있다. 주변에는 화분을 비롯한 각종 식물을 다수 배치했다.
사유와 글쓰기를 위한 공간을 꾸미는 작업은 매우 단순하다. 내 신체 구조에 맞게 설계된(혹은 기성 제품이라면 직접 재서 구입한) 책상과 의자이다. 그 책상 위에는 여러 필기구와 노트가 올려져 있고, 작업을 할 수 있는 노트북 한 대가 있다. 이곳을 이제부터 서재라고 부를 것이다.
어떤 특성을 현저히 드러내는 물건들, 그 물건들이 내포하는 상징성이 일종의 시각적 기호처럼 작동하여 우리는 그 공간의 정체성을 일차적으로 머릿속에 떠올리게 될 것이다. 이것은 상식적인 선에서 큰 이견이 있을 수 없는 조건들이다. 우리는 어떤 공간에 들어서자마자 우리의 관습과 경험에 미루어 시지각으로 인지한 기호학적 물건들을 통해 가장 상식적이고 자연스러운 정의를 그 대상에게 내린다.
2. 그 공간은 그 방만의 정체성을 개성있게 드러내야 한다.
색채와 프레임은 공간을 돋보이게 만든다. 그것이 어떤 공간의 실재성에 있어서 필수적인 것은 아니겠지만, 한 존재의 얼굴이나 느낌, 분위기 같은 것이 되어 그것을 멀리서도 실루엣만으로도 단번에 알아볼 수 있게 만드는 장치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무엇보다 나 자신을 위한 일이기도 하다. 그 공간을 사용하고자 하는 나의 감정, 나의 사고에 영향을 미칠 정서적인 영역을 위해 꾸미는 것이다.
나는 작업실을 흰색과 검정색으로 도장했다. 그 공간에서 다른 딴 생각에 빠지지 않는 무난함을 보여주기 위해서이다. 또한 사회적인 생존과 의식주 해결을 위해 독립적이고 진지한 작업을 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색채로 골랐다. 공간 내부에 있는 주요 가구들의 색채도 회색과 검정색, 흰색 계통으로 맞추었다. 하나의 작업에 오롯이 집중하기 위해 최대한 무채색의 가구와 벽체를 선택했다.
거실에서는 옅은 갈색을 선택했다. 마음에 안정이 되고 균형 감각을 유지하는 색채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식물들도 많이 있기 때문에, 서로 간의 어울림을 고려한 도장이 필요해서 초록색은 피했다. 벽체에는 미술 작품도 걸어놓았다. 가구들은 대부분 통일된 종류의 원목 가구를 사용하여 공간을 꾸몄다.
서재에서는 파란색으로 도장했다. 사유 행위와 그것의 결과를 기록하는 작업은 얼마간 차분히 침전된 분위기가 필요하다. 그러면서도 냉정함과 신중함이 유지될 수 있는 분위기여야 한다. 글을 작성할 책상과 의자만 원목으로 사용하고, 나머지 벽체는 편안한 파란색 계통의 색채를 둘렀다.
3. 그 공간은 자극을 통해 어떤 특성을 체험하는 공간이다.
어떤 일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준비가 갖춰짐을 다양한 감각 기관으로 체험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다른 감각 기관을 통해서 그 공간의 정체성을 더욱 견고히 구축하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각각의 공간에 한 가지 이상의 감각적 요소를 첨가하기로 결심했다.
작업실에서는 후각의 요소를 첨가했다. 은은한 향기가 지속적으로 퍼져나가 공간을 채우면 한 가지 연구에 집중하는 일에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아로마 디퓨저와 같은 간단한 준비물을 준비하여 긴 테이블 위에 올려 놓았다.
서재에서는 촉각적 요소를 고려했다. 가장 편안한 의자와 부드러운 원목 책상, 그리고 큰 창문 하나가 나 있도록 설계했다. 창문을 열어두면 숲에서 전해오는 부드러운 바람이 얼굴을 가볍게 스치며 방안으로 들어온다. 가장 풍성한 사유를 통한 글쓰기는 공감각적 체험의 도움이 절실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거실에서는 청각의 요소가 사용되었다. 음악이라는 것은 그 음계와 리듬, 전개되는 방식에 주의를 기울여 따라가다 보면 다른 일을 동시에 진행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종종 경험한다. 그래서 쉴 수 있는 시간에, 다른 어떤 일에 반드시 집중하지 않아도 되는 그 공간에 청각을 즐겁게 하는 요소를 가미하고자 결심했다. 어떤 음악을 선택할지도 찬찬히 고려해보았다. 그리고 이제, 청각적 요소가 가장 중요한 공간에 대해 좀 더 깊이 생각해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