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ick 4. 콘서트홀
음악에 대한 관심은 지금까지 꾸준했다. 취향과 기호의 변화가 몇 차례씩 있었지만, 몇 가지 사항만큼은 처음 음악에 관심을 가졌던 때부터 지금까지 공통적이었다. 나는 내 기호를 설명하기 위해, 좋아하는 음악의 특성보다는 어떤 식의 음악을 싫어하는지를 설명하는 편이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아이돌 음악. 가벼운 연애에 관한 노래. "질질 짜는" 음악.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결코 관심 갖지 않았던 장르이자, 언제나 들을 때마다 괴로움을 느끼는 음악들이다(보통 이 세 가지 요소 중 두 개 이상의 요소가 겹쳐서 진정한 최악의 소리를 낼 때가 있다). 세상에는 이런 노래들을 듣지 않아도 들을 만한 노래, 꼭 들어봐야 할 노래들이 넘쳐난다. 이상한 노래를 찾아서 들을 바에야 좋은 노래를 죽기 전에 몇 번이라도 더 듣는 습관을 들여보자. 우리의 귀와 정서적 건강과 안위를 위해서 좋은 음향과 울림을 가려서 듣는 지혜도 필요한 법이다.
어린 시절에 팝송을 처음 접했다. 여기서 ‘팝송’은, 어린 시절 통용되었던 의미 그대로 ‘외국말로 부르는 노래’를 뜻한다. 무슨 말을 하는지 결코 알 수 없고 익숙하지도 않지만, 평소에 듣지 못했던 신선하고 흥미로운 멜로디에 끌려서 그런 음악들을 찾아 듣기 시작했다. 조금 커서 내가 어떤 음악을 좋아하고 처음 들었는지 조사해보니 이것은 ‘브릿팝’이라고 불리는 장르였다.
자연스레 가사를 찾아보고 영어 해석을 시도해봤다. 저절로 영어 공부를 하게끔 만드는 기막힌 방법이었다.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정확하게 해석할 만한 실력이 못 되었기 때문에 가사 단어 일부를 보고 내용을 어림짐작하는 경우가 많았다. 확실한 것은, 내용 자체가 사회비판적이며 자아성찰적이며 쓸쓸하다는 것이었다. 반면에 멜로디는 아름답고 서정적인 경우가 많아 아주 역설적인 형태로 만들어졌다. 정확히 내가 원하는 스타일이었다.
클래식은 성인이 되고 나서부터 들었던 것 같다. 학부 교양수업 중에 ‘서양음악의 이해’와 같은 수업이 있었다. 순전히 음악적 관심으로 선택한 것이었는데, 나는 점차 음성학, 기초이론 같은 여타 음악 관련 교양수업을 들으면서 클래식에 대한 기초적인 지식을 얻을 수 있었다. 아직도 기억나는 것은, 우리가 흔히 들어온 기악음악의 거장들의 시대가 대략 바로크-클래식-낭만주의의 세 단계에 걸쳐 발전해왔다는 사조의 이야기였다. 여전히 이런 식의 배경지식이 음악감상에 유효한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나는 학교 공강 시간에 학생회관 건물에 있는 클래식 감상실에 가끔씩 가서 음악을 들으며 쉬곤 했다. 클래식 동아리에서 운영하는 공간이었는데, 대략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 정도까지 그날그날의 프로그램에 따라 음악을 선곡하여 좋은 스피커로 음악을 재생하는 공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공간 내부에 편안한 소파가 여럿 비치되어 있었고, 다른 사람을 최대한 덜 신경쓰게끔 높은 등받이가 있고 의자의 방향을 전부 앞을 향해 배치된 형태였다.
그때는 지금처럼 그렇게 스트레스를 받을 때가 아니었다. 지금의 악몽 같은 비생산적인 야근과 단테 『신곡』의 지옥 13층 같은 기분의 프로젝트나 팀 단톡방 같은 것에 시달리지 않은 천국 같은 시기였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때 나름의 삶의 노곤함이 있었다. 혼자만의 쉼의 공간이 필요했다. 동아리방에 가서 사람들과 수다를 떨면서 쉬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하지만 아무래도 아무런 대화 상대가 없는 혼자만의 공간 같은 곳도 절실했다. 그래서 그 클래식 감상실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잘 알지 못하는 아티스트의 음악이 나오더라도 상관없었다. 그저 감미로움과 노곤함에 시간을 태워 보내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클래식이 지루하고 답답하게 느껴지는 것은 음악적 구성에 대한 이해가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마치 우리가 미술관을 처음 접할 때의 상태와 비슷하다. 그림은 아는 만큼 보인다. 작품과 작가에 대한 이해, 그리고 작품들이 만들어진 당시대의 흐름과 양식을 뜻하는 ‘사조’에 대한 지식이 그림을 보는 시야를 넓힌다. 전체적인 틀을 볼 줄 알아야 디테일도 보다 쉽고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는 원리이다.
학부 때 클래식 음악을 구성하는 다양한 요소들을 알게 되면 더욱 흥미로게 즐길 수 있다는 사실을 배웠다. 이를테면 소나타의 구조, 악장간 기능, 주제 선율, 악기의 효과, 화성학 등에 대한 지식 말이다. 결국 음악도 아는 만큼 들리는 것이었다. 나는 음악 취향을 확장 · 발전시켰다. 즐겨 듣는 아티스트의 범위를 확장시키면서 음악에 대한 세부적인 기호도 발견하게 되었다.
브릿팝은 브릿팝대로의 생태계가 구축되어 있어서 끊임없이 좋은 아티스트들을 새롭게 찾아낼 수 있었다. 영어 실력이 좋아질수록 듣고 있는 음악의 맛을 더욱 진하게 느낄 수 있는 흥미로운 체험이 가능했다. 클래식은 태평양과 같은 넓은 바다였다. 한 명의 위대한 아티스트의 작품 세계는, 넓은 바다 속 하나의 국지적인 영역과 같다. 그런 작은 바다들을 탐색하다 보면 결국 또 다른 물길을 만나게 되고 더 드넓은 바다가 펼쳐진 것을 마주하는 흥분과 기대감이 있다. 물길을 따라가다 보면 성격이 다른 바다, 즉 오페라와 현대 클래식 음악 같은 곳도 만나게 된다.
많이 더 배우고, 더 많은 공연장을 방문했다.
많이 들으면 들을수록 더욱 풍성한 소리가 느껴졌다.
마치 영어 공부를 할 때와 비슷하다. 처음에는 익숙한 인사말이나 관용어구만 잘 들린다. 그러다가 실력이 더해지면 문맥에 따라 전체의 문장이 한 번에 들리는 경험을 하게 된다. 마지막 단계에서는 다소간 복잡하거나 틀린 문장을 말하더라도 각각의 전치사나 관사 하나도 알아차릴 수 있는 수준이 될 것이다. 음악도 하나씩 하나씩 더욱 세세한 부분이 들리게 되며, 이는 결국 그 곡 전체의 아름다움과 완성도를 온전히 경험할 수 있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