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콘서트홀을 찾아가게 된 어느 날, 그 공간에서 드는 어떤 생각에 주의를 기울이게 되었다. 콘서트홀에 갈 때마다 드는 독특한 느낌 때문이었다. 바로 그것은 떨림이었다.
공연장에 들어설 때마다 언제나 긴장이 된다. 내가 직접 공연하는 사람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연주하는 사람들이 지금 눈앞에서 정해진 순서에 따라 틀림없는 연주를 해야 하며, 동시에 구성원간 호흡에 맞춰 정확한 퍼포먼스를 행해야 한다는 사실 자체를 떠올렸을 때 긴장이 된다. 거기에는 조금의 틀림도 없어야 할 것 같다.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보통의 평범한 사람들이 아닐 것 같다. 그들은 머릿속에 음표를 가득 기록하여 원하는 순간에 있는 그대로 끄집어낼 수 있는 사람처럼 느껴진다. 콘서트홀은 마치 수십 개의 톱니바퀴를 정교한 매커니즘을 통해 작동시키는 시계 공간 속처럼 느껴진다.
실시간으로 이뤄지는 사건이며, 진행자-관람자의 구도로 전개된다는 점에서 콘서트홀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여타 비슷한 예술 장르와 비교하는 시도를 우선 해보고자 한다. 연극이나 스탠딩 쇼와 같은 장르 말이다.
전자는 엄격하고 전통적인 희곡 문화의 기반 가운데 연계 발전한 예술 장르이다. 연극은 긴장과 완화, 희극과 비극의 감정이 교차하며 진행자-관람자가 원작품이 전달하고자 하는 주제와 감정에 대한 교류가 발생하는 예술 장르이다.
진행자는 최대한 원작자의 주제의식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고자 엄정한 캐릭터 분석을 통해 맡은 역할을 성실히 연기한다. 그 성실함에 더하여, 배우 자신의 캐릭터 분석과 퍼포먼스의 극적 효과라는 개인적 역량에 따라 풍성한 감정 전달이 가능할 것이다. 막이 내리고 극이 종료되고 커튼콜 때 배우들이 인사를 위해 나온다. 배우에서 현실에서의 역할로 돌아와 관람자에게 인사하기 전까지, 배우들은 정해진 각본이 지정하는 범위 내에서 관람객들과 소통할 수 있다. 극적 효과를 위해 애드리브를 통한 돌발적인 행동으로 관람자에 영향을 미치는 방법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도 큰 각본의 흐름 속에서의 소소한 위트 정도로 볼 수 있다.
내가 연극에서 관심 갖는 부분 중 하나는, ‘스테이지’라는 분리된 공간에서 관람자에게 물리적 · 심리적으로 전달되는 긴장감이다. 관람자들은 스테이지 위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정해진 순서와 규칙에 따라 일어나는 ‘허구의 사건’이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다. 그러나 그 허구의 사건이 정해진 규칙에 따라 얼마만큼 실수 없이 효과적으로 ‘만들어지는지’ 진행자-관람자 모두가 인지하고 있는 상태에서 벌어지기 있기 때문에 긴장이라는 요소가 발생한다. 진행자는 대사와 행위를 통해 어떤 표현을 하는데, 그것은 성대가 만들어내는 소리와 몸으로 만들어내는 제스처라는 물리적인 형태로 관람객에게 전달된다. 바로 그 물리성 또한 실질적으로 관람객에게 전달된다는 측면에서 긴장감을 발생시킨다.
그리고 어떤 특정 부분을 정확하게 소화했는지에 따라 진행자와 관람자는 순간적이고 즉흥적인 평가를 실시간으로 내린다. 이를테면, 『햄릿』 3막 1장에서의 유명한 그 독백("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은 진행자-관람자가 모두 너무나 정확히 알고 있는 대목이다. 그들은 이 부분이 얼마만큼 정확한 캐릭터 분석을 통해 퍼포먼스 되었는지를 평가하여 그 성공 여부를 결정한다. 만약 그 퍼포먼스가 기대했던 바를 충족시키는 것이었다면 진행자와 관람자는 ‘안도’할 것이다. 이러한 심리적 차원에서의 보이지 않는 긴장감은 진행자-관람자간에 끊임없이 소통됨으로써 연극의 중요한 요소로 기능하게 된다.
스탠딩 쇼는 훨씬 직접적인 형태로 관람객과 소통을 하는 사건이다. 진행자는 이야기할 주제의 내용을 맥락과 분위기에 맞게 전달하고 관람객의 반응을 이끌어낸다. 중간중간에 공연을 집어넣는데, 이것은 쇼 전체로 봤을 때 자칫 지루하거나 단조로워질 수 있는 상황을 방지하고 전체의 흥과 분위기를 상승시키는 보조적인 역할을 한다.
스탠딩쇼가 연극과 구별되는 점은, 스테이지 위에서의 퍼포먼스-관람자간 실질적 상호작용이 매우 긴밀하게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연극에서도 관람객의 반응과 몰입도의 정도가 스테이지 위에서의 퍼포먼스에 간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지만, 스탠딩쇼는 이보다 적극적인 진행자-관람자의 소통이 있는 사건이라는 것이다. 오히려 얼마간 관람자의 공감과 호응을 이끌어낼 수 있느냐 하는 점이 쇼 전체의 성공과 완성을 결정짓는 요소가 된다. 스테이지의 당시 환경 속에서의 상호작용이 가장 중요한 퍼포먼스인 셈이다.
콘서트홀은 분명 연극처럼 스테이지가 마련된 공간에서 진행자-관람자의 구도 속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성격을 같이 한다. 그런데 이것은 소리가 있는 퍼포먼스이다. 아니, 소리가 다른 어떤 표현의 수단보다 중요한 퍼포먼스이다. 연극이 문학적이고 수사학적인 표현을 통해 긴장감을 전달하듯이, 콘서트홀은 악보상 음율과 리듬에 기반한 정확한 연주와 감정적 전달이 어떻게 이뤄질 것인가의 긴장감을 공간 전체로 전달한다.
결국 콘서트홀은 물리적 · 심리적 차원 모두에서 떨림이 있는 공간으로 설명하기 가장 적합하다. 콘서트홀에 들어서면서 관람객들은 어떤 공연이 펼쳐질 것인지 기대와 설렘이라는 ‘떨림 계열’의 감정을 가지고 입장한다. 조금 미리 콘서트홀에 들어와 자리에 앉았다면, 연주자들이 공연 전의 긴장감을 내면화하고 차분히 연주를 준비하는 과정을 지켜보게 될 것이다. 공연 직전 기악 파트의 연주자들은 ‘A’ 음에 맞추어 악기의 조율 상태를 점검한다. 바로 그 A 음이 동시다발적으로 여러 악기에서 들리는 순간부터 공기의 떨림은 본격화되기 시작한다. 모두가 그 행위를 마치고 관람객들로 객석이 전부 차면, 문이 닫히고 불이 꺼짐으로써 긴장의 정도는 최고조에 이른다.
공연이 시작되면 수학적인 정밀함이 있는 떨림이 공간을 지배한다. 위대한 아티스트의 공연은 거의 틀림없이 본래의 악보대로 연주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그것은 우리의 평범한 귀로 들었을 때 그렇다고 할 수 있겠다. 사실 이곳에서는 단 한 번일 수밖에 없는, 유일무이한 공연이 펼쳐지고 있다. 모든 연주회는 연주 장소와 연주자에 따라 각기 다른 이름을 부여받고, 조금씩 다른 옷을 입고 관람객과 마주한다.
모든 연주 퍼포먼스가 기계처럼 정확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똑같은 음악이더라도 어떤 지휘자의 연주인지, 어떤 오케스트라 연주단의 연주인지에 따라 모두 제각기 조금씩 다른 개성을 선보이게 된다. 이 부분에도 떨림이 있다. 새로운 조합과 합주에서의 떨림이다. 악보는 공통이지만, 그것을 다루는 것은 언제나 큰 변수와 자율적인 선택의 기회를 활용할 줄 아는 인간 연주자의 몫이다. 소리의 질감과 힘, 감정선을 타고넘는 기교는 언제나 달라질 수 있기에 거기에 떨림이 있다.
대본을 바탕으로 한 수사학과 연기를 통해 무언가를 표현하는 연극보다 엄격한 기준이 콘서트홀이라는 공간에 적용된다. 연기에서의 작은 실수는 배우의 자연스러운 애드리브와 임기응변적 연기를 통해 조치될 수 있다. 그리고 대부분 자연스러운 사람의 행동처럼 여겨지기에 상대적으로 큰 어색함 없이 다음으로 넘어간다.
하지만 예민하고 엄격한 귀를 가지고 있는 음악애호가들 콘서트홀에서 비슷한 종류의 실수가 일어나는 상황을 용납하지 않는다. 자신의 절대음감을, 혹은 음악적 지식을 과시하고 싶은 사람은 연주자의 약간의 실수에도 민감하다. 사실 연주가 조금이라도 정해진 박자와 음계에서 벗어나게 되면 평범한 사람조차 이상한 점을 발견하게 된다. 청각적인 실수는 더욱 예민한 거부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이러한 태도는 사실 자연스러운 것이다.
약간은 억지스러운 평가를 받을 때도 있다. 음악 자체에 대한 절대성 평가가 아닌, 그 외부적인 환경에 의한 평가이다. 오케스트라의 규모나 인지도에 대비하여 연주의 수준을 평가하는 경우가 꽤 있는 것 같다. 음악에 대해 아는 체하기 좋아하는 두 사람이 공연을 감상하고 나오며 이런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쉽게 상상해볼 수 있다.
“오늘 연주회 어땠어요? 작년 정기 공연에 비해 레퍼토리가 좀 더 풍성해진 느낌이에요.”
“음, 전 생각보단 별로였어요. 역시나 작은 시립 오케스트라단의 연주가 가진 한계 같은 것이겠죠.”
객관적인 오케스트라의 수준과 연주회의 성격, 그리고 지휘자와 연주자의 성향과 그날의 컨디션에 따라 제각기 다른 연주를 들려준다는 그 변수. 바로 그것이 콘서트홀을 만연히 채우고도 남는 긴장감의 주된 요소임이 분명하다. 공기의 파동을 통해 우리의 청각이라는 감각기관을 자극하는 예술 장르의 특성이다. 연주회는 우리에게 언제나 지금 여기에서, 새로운 연주의 ‘떨림’으로써 콘서트홀이라는 브릭을 가득 채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