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분의 방

by moment books

Brick 5. 작업실



여분의 방


공간의 문제는 시간의 잉여를 확보하는 것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공간도 잉여가 필요하다. 바로 그 공간은 순전히 쉴 수 있는 공간이 될 수 있고, 아니면 나만의 아지트처럼 사용하는 공간이 될 수 있다. 지금 이 단락에서는, 이 여분의 공간을 작업실로 상정하고 싶다. 가장 잉여로운 공간에서 새로운 물건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그렇다면 그 공간은 어떻게 확보해야 할까. 부동산적인 접근으로는 매우 어려운 문제가 될 것이다. 합법적으로 보자면 아주 극적인 사건, 이를테면 로또가 되었거나 비트코인 같은 투기성 강한 금융 요소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당장 내가 가진 집에서 여분의 방을 추가시킬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평소 하던 대로 꾸준하고 착실하게 돈을 모아 더 넓은 집으로 이사해야겠지만, 나는 여기서 그런 재테크나 부동산적인 이야기는 지양하겠다. 우리가 지금의 재화와 환경 속에서 얻을 수 있는 작업실들을 한번 살펴보기로 했다.


작업실을 확보하기 전에, 여기서 말하는 ‘작업’의 간단한 기준부터 짚고 넘어가기로 하자.


1. 반드시 금전적인 생산성을 목적으로 하는 일이 아니어도 괜찮다.
2. 독립적인 공간이 가장 좋지만, 공공의 건물이라도 내 일에 몰두할 수 있는 환경이라면 괜찮다.
3. 다른 기능을 위해 존재하는 공간이지만, 온전한 몰두를 위해 작업을 할 때에는 오로지 그 일만을 할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한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은 90년대 TV에 나오던 미국 중산층의 빌리지도 아니고, 한남동 개인주택도 아니다. 그렇기에 작업실을 찾는 과정에도 수고스러움이 따른다. 그래서 현실적으로 우리에게 익숙한 그런 공간들의 몇몇 예시를 일부러 집어 넣고 작업실이 될 수 있는 공간에 포함시켰다.






아마도 독립한 2, 30대의 미혼 청년들은 방 3개 이상 갖춰진 곳에서 지내는 경우가 거의 없을 것이다(서울에서의 이야기이다). 보통 하나의 방을 침실로 사용하고 있다면 다른 한 방의 용도 정도는 결정할 수 있을 것이다. 바로 그 방이 당신의 작업실이다.


그 방은 오락적인 요소를 갖춘 복합적인 공간이 될 수 있다. PC나 노트북이 있는 공간일 수 있고, 보다 노골적인 오락활동을 위해 TV나 게임기가 있는 공간이 될 수 있다. 가능한 한 후자의 기기들은 이 공간에 두지 않는 쪽으로 해야 한다. 그 작업이 무엇이 되었든 이런 기기들은 우리에게 잉여의 순간들을 가져다주기보단 즉흥적이고 자극적인 오락에의 맹목적인 집중과 중독을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가정집에서 할 수 있는 작업의 종류는 그다지 많을 것이다. 기름과 목재, 망치와 톱이 있을 만한 공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주 안전한 종류의 작업물들이 놓일 것이다. 테이블과 노트북, 간단한 필기구나 간단한 디자인 작업을 위한 준비물 정도가 갖춰질 수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 스스로가 하나의 방을 독립적인 활동을 위한 공간으로 만들 의지가 있느냐 하는 점이다. 이것은 누가 강제하는 것도 아니고 그야말로 필수적인 생활 공간이라고 할 수도 없다. 일반적인 한국의 중산층 가정집에서 어떤 식으로 각각의 방들이 가족 구성원들에게 할애되고 있는지 생각해보자. 자녀들이 쓰고 있는 방은 그 방이 곧 공부방이자 침실이고, 편안히 오락활동을 하는 쉼의 장소이다. 사람 한 명에게 주어지는 방 그 하나가 복합적인 공간이 될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여분으로 쓸 수 있는 작은 방이 하나라도 확보될 수 있다면, 그 자체로도 굉장히 축복받은 환경이다. 물론 그 방을 자신만의 독립적인 잉여 공간으로서, 온전히 자기만의 창의적인 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쓴다는 전제 아래 말이다.


어떤 사람들은 여러 방이 있는데, 그 방 중 작은 방 하나를 드레스룸이라는 탐탁지 않을 만치 사치스러워 보이는 공간으로 쓴다고 한다. 내키지는 않지만, 이런 쓰임새를 두고 뭐라고 할 권리가 내게 있지는 않다. 그저 방이 여러 개가 있어서 일상생활에 필수적인 공간으로 다 할애하고도 여분의 공간이 하나 정도 남는 정도의 여유가 있는 사람이라면, 무언가를 만들어 볼 수 있는 공간 하나 정도는 집에 마련해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만 있을 뿐이다.


미싱 작업을 할 수 있는 방이라도 훌륭하다. 소박한 글을 쓰는 작가 한 명을 탄생시킬 기대로 그 방을 꾸며도 좋다. 본인이 수집하는 어떤 물건들을 진열하고, 분석하고, 더 나은 버전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계획과 수행이 있는 공간도 좋다. 우리에게 아쉬운 것은, 정확한 자신의 기호를 발전시킬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의 여유가 없다는 점이다. 이럴 때는 TV 속 미국인들의 삶이 조금은 부럽다. 그들의 리빙룸과 차고와 작업 공간이 부럽다. 하루 종일 낙엽을 쓸거나 멀쩡한 기계를 뜯어고칠 수 있는 환경, 그 잉여의 활동들이 부러운 것이다.



브릭 5. 작업실.jpg <원본 이미지 출처: Shutterst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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