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실은 우리의 실존에 관련된 공간 중 하나이다. 실존(자아의 실현이든, 경제활동이든)을 위한 구체적인 작업의 성격을 설정하고, 그 기능을 잘 수행할 수 있도록 잘 구획되어진 공간. 이 공간은 우리 존재의 가치를 증명하는 공간이다. 무엇을 만들어내는 곳, 무언가를 만들기 위해 사유적 행위와 비판적인 사고가 거듭되어야 하는 곳, 그리고 아이디어를 행동으로 옮기는 과정이 실제로 일어나는 곳이다.
사실 다소 추상적일 수 있는 이런 정의를 넘어, 우리의 작업실은 분명하게도 우리 삶의 영위를 위한 직접적인 경제활동을 위한 공간임을 우리는 경험을 통해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작업실은 생계를 위한 경제적 행위를 하는 곳이다. 그것이야말로 실존을 위한 공간으로서의 작업실을 가장 명확하게 정의내리는 표현이 될 것이다.
코로나가 압도하고 있는 현 시국에서 우리의 일터를 돌아보면, 일할 수 있는 곳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얼마나 그것이 지닌 의미와 가치가 큰지 매우 크게 체감하고 있다. 어떤 이들은 몇 달째 실직 상태에서 이전까지 경험하지 못한 곤궁함과 싸우고 있다. 어떤 이들은 빠듯한 기존 연봉에서 또 삭감된 급여로 기약 없는 기간 동안 생활을 꾸려나가야 하는 처지에 놓여있다. 어떤 이들은 아예 가게 문을 열지도 못한 채 매달 너무도 정직하게 나가는 임대료만 지불하며 하릴없이 상황이 나아지기만을 속타는 마음으로 기다릴 뿐이다.
작업실로 나가 일한다는 것은 내가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행위이다. 그래서 이 애증의 공간에 매일 나가고 싶어한다. 육체적 고통, 정신적 스트레스와 온갖 부조리가 도사리고 있음을 명확히 인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살기 위해 작업실에 나간다.
개인의 자아실현, 혹은 사회적인 기준에서 무형의 가치를 만들어내는 일을 하는 곳도 우리는 작업실로 명명할 수 있을 것이다. 생계와는 관련없는 이런 곳을 어째서 ‘작업실’이라고 명명하느냐고 묻는다면, 답은 간단하다. 그 공간은 내 실존을 증명하는 모든 일을 ‘진지하고 꾸준하게’ 해내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당장의 경제적 가치를 발생하지는 않지만, 거시적인 차원에서는 그의 실존과 삶의 영위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공간이라고 분명히 말할 수 있다.
어떤 일을 시작하고 그것을 계속 이어갈 수 있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경우 그러한 지속성과 진지함을 가지고 하는 일들은 생계유지를 위한 일들일 것이다. 경제적인 활동을 위한 차원에서의 작업실로 우리의 일터의 중요성을 격하하거나, 그것이 그릇되었음을 말하고자 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자신의 곤궁한 삶의 영위를 위해, 이렇게 코로나처럼 예상치 못한 환경적 요인으로 인해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하는 무형의 가치를 추구하는 일을 놓치고 있다면, 그것은 진실로 우리 군상들이 직면한 삶의 비극임을 말하고 싶을 뿐이다. 어느 누구도 먹고사는 문제의 해결이 전제되지 않은 이상 우리의 작업실에서 돈을 만들어내는 일 이상의 고상한 차원의 가치에 시선을 두기란 결코 쉽지 않은 것이다.
우리는 반복되는 일상에 매몰되어 살아가다 삶의 권태를 깊이 느끼고, 실존의 문제에 슬며시 시선을 향하게 되는 순간을 마주할 때가 있다. 기존에 우리가 삶이 의미 없다고 느끼는 이유 중 하나는, 우리가 잉여의 시간 동안 풍족한 자기활동과 창의적인 일들에 흠뻑 빠져드는 경험을 갖지 못하기 때문이다. 권태로움은 여유가 있고 창조적인 삶의 영위를 한창 하고 있는 때에 오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일에 무비판적으로, 그리고 어쩔 수 없이 수동적으로 하고 있을 때 발생한다. 당장의 생산성을 위해서 우리는 분명 열심히 일을 해내야겠지만, 우리의 일생을 거시적으로 두고 봤을 때 더 깊이 있고 멀리 나아가고자 한다면, 바로 그 잉여의 시간을 언젠가는 반드시 확보해야 한다. 당장 돈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닌 다른 이유로 작업실로 찾아갈 수 있는 시간을 말이다.
잉여의 시간을 활용할 수 있는 곳이 우리의 진정한 작업실이 될 것이다. 그 공간에서 사유의 시간, 끊임없는 회의와 비판적 사유를 이어가는 일은 매우 훌륭할 것이다. 언뜻 탐문해보고 싶은 하나의 사건에 열정적으로 빠져들 수도 있다. 악기 하나를 배워보는 장소가 될 수도 있다. 방문한 공간들에 대한 기억과 회상을 위한 사진과 자료 정리의 장소가 될 수도 있다. 보다 직접적으로 눈에 보이는 어떤 수제 물건을 만져보고 만들어보는 공간이 될 수도 있다. 위에서 언급한 여러 가지 일들 두 가지 이상이 복합된 형태로 이뤄지는 공간이 될 수도 있다.
그 공간이 자신이 특정 시공간에 온전히 ‘살아있음’을 증명할 수 있는 기쁨과 즐거움이 될 수 있는 브릭이 맞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