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말끔한 곳

by moment books

Brick 6. 호텔



언제나 말끔한 곳


다른 나라와 같은 먼 곳으로 떠날 때는 익숙하지 않은 요소들과의 마주침에서 불편함을 느낀다. 사람, 언어, 거리, 교통수단 같은 것들 말이다. 제한된 시간과 재화를 가지고 가장 필수적인 일들만 빨리 처리하고 황급히 다음 목적지로 이동하기 바쁘기에, 어떤 때는 여행을 왔을 때도 분주함으로 가득하기 일쑤이다. 여행의 동반자가 있다면 서로 간의 취향과 기호에 맞는 음식과 방문지를 협의 가운데 결정해야 하는 번거로움도 있다. 물론 이 모든 과정이 여행에서만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출장으로든 여행으로든 그곳에 며칠간 머무르게 된다면, 일정을 마친 후 정해진 숙소로 들어와야 할 것이다. 숙소. 그 작은 사각형 방 내부로 들어섰을 때 비로소 자기만의 시간과 공간을 갖게 된다. 짐을 풀고 침대에 앉는 순간부터, 밖으로부터 차단되어 혼자만의 시간을 만끽하게 된다.


숙소에는 여러 형태가 있다. 여기서는 여러 시설들이 복합적으로 잘 갖춰져 있는 가장 편리한 곳, 글의 논지에 가장 맞는 공간이 될 호텔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호텔은 말끔한 곳이다. 언제나 항상성을 유지하는 곳이다. 제주도 여행에서 만족스러운 일정과 편안한 숙박을 보낸 한 사람이 일 년 후에 다시 똑같은 호텔을 예약했다고 가정해보자. 다시 방문한 그 호텔의 외관과 내부 로비와 방의 구조와 어매니티까지 이전과 동일한 모습으로 그 사람을 반길 것이다. 바로 그 ‘똑같음’이 중요하다.


예측 가능한 편리함. 사실 생전 처음 방문하는 호텔이라도 호텔 예약사이트에서 제시하는 호텔의 등급을 통해 우리는 그곳을 아주 익숙한 곳으로 받아들인다. 언제나 동일하게 말쑥하고 비슷한 구조와 서비스가 예측되기 때문에 마음에 편안함을 가져다준다. 어느 생소한 지역으로 방문을 했더라도 마음에 안심이 있을 수 있는 것은, 이 모든 일정을 끝내고 들어갈 호텔은 내가 이전에도 자주 와본 바로 그런 호텔일 것이기 때문이다.


호텔은 여러 사람들이 이용하는 곳이다. 그러나 특별히 그 사람들에게 신경을 쓰는 데 정력을 소모할 필요가 없다. 많은 사람이 이용하지만 개인적인 공간으로서의 의미가 더욱 강한 곳이다. 타인과의 마주침과 간단한 대화가 있을 수 있는 곳은 로비와 식당 정도일테다. 숙박이 목적이 아닌 콘퍼런스와 같은 비즈니스 미팅으로 온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숙박으로 어떤 호텔에 예약한 사람이라면 거의 철저히 자기만의 시간과 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




호텔은 도시적 라이프스타일을 축약시킨 편의적 공간에서 다소간의 여유와 사치를 누릴 수 있는 공간이다. 일상에서 누렸던 생활을 어느 정도 영위 가능함과 동시에, 일반적인 집에서 경험할 수 없는 편의시설까지 더해서 이용할 수 있다. 라운지, 레스토랑, 수영장, 산책로와 같은 인프라는 일상에서 쉬면서 쉽게 누릴 수 있는 공간이 아니다. 가정과 같은 편안함과 약간의 사치스러운 생활이 가능하기에 특별하고 만족스럽다.


어느 한 호텔에 오랜 기간 투숙을 하게 되었다고 하자. 대략 2주일 정도 같은 방에서 머무는 것이다. 이제 청소 한 번 하지 않아도 언제나 잘 꾸며진 쾌적한 환경이 2주일 내내 유지되는 공간에서 머무는 혜택을 누리게 된다. 언제나 말끔함이 유지되는 항상성이, 언제나 관리 없이 편안함을 유지할 수 있다는 그 항상성이야말로 호텔이 주는 진정한 즐거움 중 하나이다.


호텔이 주는 또 다른 이점은, 이곳이 나를 일상에서 벗어나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준다는 것이다. 출장이나 혼자만의 여행을 위해 먼 타지의 어느 5성급 호텔에 머물게 되었다고 해보자. 나는 이 호텔 예약을 위해 사이트에 접속하고 결제하는 것, 그리고 예약한 호텔과 관련된 정보를 이리저리 검색해보는 일련의 모든 일들에서 이미 큰 기쁨을 느낄 것이다. 자기만의 방은 다른 곳에 있지 않고 바로 여기에 있던 것이다.


호텔은 항상 안락한 곳이다. 그곳에서 사용할 가구들이 고급이어서만은 아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즐길 각종 편의시설이 훌륭해서만도 아니다. 내게만 오롯이 집중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가장 그러하다. 예약한 방이 가격 때문에 크기가 아담한 ‘스탠다드 룸’이어도 상관없다. 그 공간은 예약한 기간 만큼은 온전히 나만의 공간이고, 거기서 혼자만의 시간을 보장 받는다.


호텔에서는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자기만의 활동을 하고 싶다는 유혹을 쉽게 느낀다. 바에 내려가서 술을 마실 수도 있고, 근처 산책로나 해변으로나 나아가 생소한 환경과 자연이 주는 운치를 즐길 수도 있다. 호텔 방 중앙에 우두커니 서서 바깥 창으로 보이는 곳을 바라보며 사색에 잠기기도 한다. 침대에 두 다리를 올리고 편안하게 앉아 컴퓨터로 이리저리 들어가서 보고 싶은 사이트를 들락거리고 쓰고 싶은 글에 집중해볼 수 있다. 이 모든 작은 일탈들이 가능한 이유는 그곳이 물리적으로 가정과 일상에서 이탈된 곳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충동적인 심정으로 자기만의 루틴과 기호에 맞는 행동으로 저녁 늦은 시간을 알차게 보내고 싶은 유혹을 느낀다. 일상에서는 침대에 눕는 시간만이 쉬는 시간인 경우가 많다. 그러나 호텔에서는 저녁에 나를 위해 사용하는 거의 모든 시간들이 쉼을 위한 시간이다. 어떤 때는 잠자리에 드는 시간이 아깝게 느껴질 때가 있다. 여행지에서 보내는 5성급 호텔에서의 마지막 날 밤, 피곤함에 끈질기게 저항하다가 어쩔 수 없이 생리적인 불가항력에 항복하고 눈꺼풀을 억지로 감는다. 체크아웃 시간을 얼마 남겨두지 않고 일어나 아쉬움 가득한 마음으로 짐정리한다. 이러한 일이 자주 있는 것은 아마도 호텔에서의 저녁 시간이 너무나 아쉬워서일 것이다.


언제나 말끔한 곳이기에 부자연스러움이 존재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언제나 친절한 호텔 직원들의 서비스, 비슷한 방 구조, 커피 포트와 미니 바, 차분하고 적막이 흐르는 객실 복도, 언제나 일정하게 진행되는 체크인 · 체크아웃 시간, 비용을 쓰는 만큼 더 많은 혜택을 누릴 수 있는 ‘합리적인’ 자본주의 시스템, 이 모든 것들이 항상 여전하고 똑같은 공간이다. 대부분의 미국 호텔에서 항상 발견할 수 있는 『기드온 바이블』처럼 말이다.


호텔다움의 항상성은, 잦은 출장과 업무상 해외 투숙이 많은 사람에게는 또 다른 권태로 작용할지 모르겠다. 각자의 형편에 따라 개인적인 공간을 배정받아 임시적인 점유가 있는 곳, 그렇게 권태로운 정의로 다가온다. 언제나 똑같아야 자기만의 시간 활용을 계획할 수 있을 것이기에 때문에 어느 정도 권태의 요소를 가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브릭 6. 호텔.jpg <원본 이미지 출처: Shutterst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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